성숙은 '포기할 수 있음'에서 시작된다.
*사진: Unsplash
1. 애도와 멜랑꼴리
애도는 잃은 대상을 현실로 인정하는 작업이다.
멜랑꼴리는 잃지 않기 위해 자기 안으로 대상을 삼켜버린 상태이다.
모든 것을 다 갖기 위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배반하는 상태는
멜랑꼴리적 구조이다.
잃지 않으려다 자기 일부를 잃는 것.
이때 상실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내부에서 발생한다.
그러니, 상실은 병리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2. 성숙은 '포기할 수 있음'에서 시작된다.
성숙한 자아란
모든 욕망을 실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실현 불가능한 욕망을 견디는 능력이다.
시간의 지연은
미성숙의 언어다.
포기하지 못해서
시간을 저당 잡히는 상태.
3. 선택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인간은 행위(action)를 통해서만 자기 자신이 된다.
행위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말은
중립이 아니다.
행위하지 않기로 선택한 상태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비용은
항상 타인의 시간으로 지불된다.
4. 선택을 미루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말한다.
앙가주망(engagement)은 책임을 동반한 선택이다.
자기기만(mauvaise foi)은 자유를 회피하며 상황을 탓하는 태도다.
선택의 지연은
자유를 조건 뒤로 숨기는 언어다.
그러니
선택의 주체는
상황의 피해자가 아니라
자유를 유예한 주체이다.
그래서 선택의 윤리는
정치의 문제이기 전에
관계의 문제다.
5. 소유하려는 사랑은 반드시 잃는다.
성숙한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 방식이다.
소유하려는 순간,
관계는 불안과 통제로 변형된다.
모든 것을 다 갖고 싶다는 욕망은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불안 관리 전략이다.
그래서 가장 안전해 보이는 선택이
가장 큰 상실로 귀결된다.
6. 잃음은 실패가 아니라 배치의 전환이다.
기존의 배치가 무너지는 순간은
다른 질서로 다시 자리를 잡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
잃는다는 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배치를 종결하는 것이다.
질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고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잃을 각오가 필수이다.
7. 마무리
성숙이란
더 많이 갖는 능력이 아니라
덜 가져도 무너지지 않는 능력이다.
잃지 않으려는 자는 결국
자기 자신을 잃는다.
언제 어디서나 유용하고도
선명한 기준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가이다.
"관계에서 중요한 건 수가 아니라
투명성이다."
- The Ethical Slut, 도시 이스턴
"집착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의 형태이다."
- Against Attach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