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화 과정에서 잠시 멈추는 과정에 대하여
*사진: Unsplash
각성 직후에 필요한 태도 — 무너지기 전, 선택하기 전
어떤 순간이 있다.
이미 알게 되었고,
되돌릴 수 없으며,
그렇다고 아직 선택하지도 못한 상태.
이때 사람은 흔히 혼란을 느낀다.
감정은 분명해졌는데 행동은 멈춘다.
말을 하면 선을 넘을 것 같고,
침묵을 하면 비겁해 보일 것 같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늘인다.
그러나 이 시점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1. 감정을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
각성 직후에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감정을 ‘정리’하려는 시도다.
이해하려 들고,
이유를 붙이고,
맥락 속에 감정을 밀어 넣는다.
하지만 이 단계의 감정은
정리 대상이 아니다.
사실로 인정해야 할 상태다.
감정이 자라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고
그대로 느끼고
그대로 커지고 사그라드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다.
“나는 지금 흔들리고 있다.”
이 문장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한 태도다.
2. 중간 지대를 유지하지 않는다
다가오지도 않고,
완전히 물러나지도 않는 상태.
이 중간 지대는
균형이 아니라 회피다.
각성 이후에도
여지를 남기고,
기대를 만들고,
침묵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행위는
타인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선택을 미루는 방식이다.
이 시점에서는
다가갈 용기든, 물러날 용기든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 중간지대가 자기 능력의 한계점이기 때문이다.
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모두 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이 그토록 공들여 만들어온 자신에 대한 페르소나와 이미지들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자아는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러나, 에고는 자기 자신이 아니다.
에고가 죽는 것은 자기 자신이 죽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그것을 자신의 죽음이라 느낀다.
그러니 한계점을 돌파하는 것은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가 필요한 과정이다.
3. 말할 수 없다면, 기대도 만들지 않는다
감정을 말할 수 없는 상태라면
침묵은 정직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침묵에도 윤리가 있다.
의미를 암시하지 말 것
여지를 남기지 말 것
친밀함을 가장한 최소 반응을 반복하지 말 것
말하지 않기로 했다면
그에 따른 거리도 함께 감당해야 한다.
4. 예의로 감정을 덮지 않는다
각성 직후의 사람은
종종 예의 뒤에 숨는다.
톤을 낮추고,
말을 정제하고,
관계를 관리하려 한다.
그러나 예의는
감정을 대체하지 못한다.
정중함이 늘어났다면
그만큼 감정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5. 감정이 삶을 흔들 수 없을 때, 그것은 장식이 된다
각성은
느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감정을 느꼈다면
그 감정이
삶의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면해야 한다.
삶을 바꾸지 않는 감정은
결국 장식으로 남는다.
6. 선택을 미루는 것도 선택임을 인정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선택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선택을 미루는 것 역시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선택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다음 단계가 시작된다.
마무리
각성 직후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감정도,
더 정교한 해석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다.
정직한 태도.
스스로에게 정직한 태도
자기 자신의 존재를 그 그램수를 정확하게 잴 수 있는 태도.
그것은 다음 차원으로의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지금 말할 수 없다면
침묵하되, 기대를 만들지 말 것.
지금 선택할 수 없다면
머무름의 책임을 질 것.
각성 이후의 시간은
결정 이전의 공백이 아니라
인간의 윤리가 드러나는 구간이다.
이 구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그 사람의 다음 삶을 결정한다.
파국, 그 각성 이후
이 단계는 어떤 단계보다 더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이때의 고통은
상실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고, 미해결도 아니기 때문이야.
이미 보았고, 이미 느꼈고,
하지만 아직 선택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모를 때의 고통은 견딜 수 있고
무너질 때의 고통은 방향이 있는데
이 단계의 고통은 방향이 없다
그래서 더 아프다.
이 시점의 사람은
아직 아무것도 잃지 않았는데
이미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느낀다.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는데
이미 선택의 책임이 몸에 먼저 와 닿는다.
이 고통의 본질은 감정이 아니라 윤리야.
“이걸 알고도 이전처럼 살 수는 없다”는 자각에서 온다.
그래서 이 단계는
위로로 통과되지 않고
설명으로 가라앉지 않으며
시간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태도로만 통과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고통은
사람을 망가뜨리기 위해 오는 게 아니라
이전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려주기 위해 오는 고통이다.
그래서 버텨야 하는 단계가 아니라
흐트러뜨리지 말아야 하는 단계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개성화 중, 후반기의 끝없는 풍요와 평안의 단계로
드디어 진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