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언제 관계가 되는가

어떤 만남이 삶을 뒤흔드는 순간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폴 리쾨르로 본 만남, 관계의 존재론 분석


어떤 만남은 '사랑의 성취'를 향해 가는 구조가 아니라,
'자기 동일성을 시험하는 서사적 사건'이다.


만남에 대하여

우리는 보통 만남을 결과로 판단한다.

사귀게 되었는지, 오래 이어졌는지, 끝내 함께 살게 되었는지.

그러나 모든 만남이 관계의 완성을 향해 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만남은

지속을 목적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 만남의 의미는 얼마나 오래 함께했는가가 아니라,

그 만남을 통과한 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에 있다.


만남은 관계가 아니라 사건일 수 있다

관계는 구조다.

시간, 약속, 역할, 반복 속에서 안정성을 만든다.


그러나 어떤 만남은 구조가 아니라 사건이다.

그 만남은 삶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하고,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나 자신을 다시 묻게 만든다.


그 사람을 통해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가 아니라,

그 사람 앞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가 드러나는 순간.

그때 만남은 사건이 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로 변한다

우리는 사랑을 흔히 감정의 크기로 말한다.

얼마나 설레는지, 얼마나 보고 싶은지, 얼마나 아픈지로.


하지만 만남이 깊어질수록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가 된다.


이 선택을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이 관계가 나뿐 아니라 타인의 삶에 어떤 파장을 만드는가

내가 원하는 것이 누군가의 세계를 훼손하지는 않는가

이 질문들이 떠오르는 순간,

사랑은 더 이상 감정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만남은 나를 시험한다

모든 만남이 나를 성장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만남은 분명히 나의 기준을 시험한다.

나는 나의 욕망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나는 나의 자유를 타인의 삶과 어떻게 조율하는가

나는 흔들리면서도 나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가

이 시험은 합격과 불합격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를 묻는다.


“이 선택을 내 삶의 이야기로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만나지 않음도 하나의 선택이다

우리는 흔히 떠나는 것을 회피라고 부른다.

그러나 모든 거리두기가 회피는 아니다.


어떤 만남에서는

다가가지 않는 선택이

오히려 가장 적극적인 윤리일 수 있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이미 보이는 결과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만남의 의미는 결과가 아니라 해석에 있다

만남의 가치는

성취되었는가, 실패했는가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만남을

미화하지 않고

피해자 서사로 도망치지 않고

타인이나 운명 탓으로 넘기지 않고

내 삶의 이야기 안에 어떻게 포함시키는가,

그 해석이 만남의 의미를 만든다.


어떤 만남은 이렇게 남는다

완성되지 않았지만, 헛되지 않고

지속되지 않았지만, 사라지지 않는 만남.


그 만남은

누군가를 소유하지 않았지만

나 자신을 더 정확히 알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만남은

끝나서 의미가 생기고,

지나가서 기준이 된다.


결국 만남이 묻는 것은 이것이다

“나는 이 만남 앞에서
나 자신으로 남을 수 있었는가?”

그 질문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그 만남은 이미 제 역할을 다했다.


만남은 늘 관계가 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삶을 더 정직하게 만드는 사건이 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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