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에 대하여

시몬 베유가 말하는 '주의'와 '비자기화'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사랑이란, 타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채
그가 있는 그대로 존재하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 시몬 베유


사랑에 대하여: 주의와 비자기화

사랑은 흔히 감정의 문제로 오해된다.

얼마나 강렬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 얼마나 헌신적인가 같은 질문들.

그러나 시몬 베유에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였다.


그녀는 사랑을 소유의 형태로 이해하지 않았다.

사랑은 누군가를 차지하거나, 이해하거나, 구원하는 행위가 아니다.

사랑은 오히려 아무것도 취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주의(Attention): 개입하지 않는 집중

시몬 베유가 말한 ‘주의’는 흔히 말하는 집중이나 몰입과 다르다.

그것은 노력이나 의지의 결과가 아니다.

주의란, 자기 욕망을 앞세우지 않은 채 타인을 바라보는 능력이다.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상대에게서 의미를 뽑아내려 하지 않는 것이며,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것이고,

상대의 말과 침묵을 해석으로 덮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사랑에서의 주의란 이렇다.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느끼는지를 먼저 확인하지 않는다.

그가 지금 어떤 존재 상태에 있는지를 판단 없이 바라본다.


이때 사랑은 행동이 아니라 중지된 개입의 형태로 존재한다.


비자기화(Decreation): 나를 덜 중심에 두는 선택

비자기화는 시몬 베유 사유의 가장 급진적인 지점이다.

이 개념은 자기부정이나 자기희생이 아니다.

그녀가 말한 비자기화는 자아의 철수에 가깝다.


사랑에서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내 마음은 왜 고려되지 않는가.”

“나는 어떤 위치인가.”


비자기화는 이 질문들을 잠시 내려놓는 행위다.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지 묻는 선택이다.


이때 사랑은 더 이상 교환이 아니다.

감정의 균형을 맞추는 협상이 아니다.

사랑은 상대의 세계를 존중하기 위해

내 자아의 부피를 줄이는 윤리적 결단이 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시몬 베유의 사랑은 낭만적이지 않다.

기대도 없고, 약속도 없으며, 미래에 대한 설계도 없다.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다.


그 사랑은 단지 침범하지 않는다.

상대의 삶을 재배치하지 않고,

그가 이미 책임지고 있는 세계를 흔들지 않는다.


주의는 타인을 붙잡지 않게 하고,

비자기화는 나를 앞세우지 않게 한다.


그래서 이 사랑은

무언가를 원하지 않지만,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맺으며

시몬 베유에게 사랑이란

함께 무언가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망치지 않은 채 존재하는 일이었다.


사랑은 감정이 커질수록 위험해진다.

그 위험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더 조심스럽게 존재하는 것이다.


주의와 비자기화는

사랑을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을

폭력이 되지 않게 하는 최소 조건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All Sou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