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에 대하여 2

시몬 베유의 불행과 사랑의 윤리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시몬 베유에게서 불행(malheur)은 고통이나 불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 안에서 주체로서의 자리를 잃는 상태, 말하자면 존재가 침묵 속으로 밀려나는 경험이다. 불행한 사람은 고통을 말할 언어를 잃고, 요구할 권리도 상실한다. 그래서 불행은 언제나 조용하다. 울부짖지 않고, 설명되지 않으며, 종종 보이지 않는다.


베유는 이 불행 앞에서 우리가 흔히 취하는 태도들을 경계한다. 위로하려는 말, 이해하려는 해석,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불행한 사람을 다시 이해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은 대상화되는 순간, 다시 한 번 폭력을 당한다. 불행은 설명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응답되어야 할 요청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베유의 사유는 사랑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감정의 이름이 아니다. 사랑은 무엇을 얻거나, 채우거나, 결합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은 아무것도 취하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불행한 사람 앞에서 사랑은 해결책이 아니라 주의(attention)의 형태로만 가능하다.


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지 않는 것이다. 고통을 줄이려 애쓰지 않고, 이유를 묻지 않으며, 상대의 세계를 내 해석으로 덮지 않는 것. 불행이 있는 자리에 그대로 머물며, 그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존재를 함께 견디는 것. 베유에게 이것이 사랑의 유일한 윤리다.


그래서 불행 앞에서의 사랑은 언제나 위험하다. 불행을 제대로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안전한 세계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상대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거리를 두거나, 감정적으로 개입하거나, 의미를 만들어내고 싶어진다. 그러나 베유는 말한다. 진짜 사랑은 상대를 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불행이 나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 사랑은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성취감도 없고, 서사적 완결도 없다.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무사건성이야말로, 불행을 소비하지 않는 사랑의 증거다. 붙잡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 요구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관계는 그렇게 유지된다.


불행은 사랑을 시험한다. 감정을 취하려는 사랑은 실패하고, 이해하려는 사랑도 실패한다. 오직 남는 것은, 불행을 가볍게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타인의 삶을 조각내지 않고, 그의 세계 전체를 존중하겠다는 태도. 그 앞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윤리가 된다.


어떤 관계는 그래서 멀어질수록 온전해진다. 만나지 않음으로써 지켜지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회피가 아니라, 불행을 다룰 줄 아는 성숙이다. 시몬 베유가 말한 사랑은 결국 이것이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음으로써, 끝까지 함께 남아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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