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연애소설이 아니다
달달한 연애소설을 쓰고 싶기는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표면 장르를 벗겨낼수록, 전혀 다른 엔진을 드러낸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한 남자가 아니라 감각의 구조 재편이다.
이 작품을 쓸 때 내가 염두에 둔 것은 감정의 고백이 아니라
영화 연출과 미장센이었다.
인물의 내면은 어떻게 외부로 드러나는가.
하나의 장면, 하나의 구조, 하나의 이동, 그리고
그 배경이 품고 있는 질감들을 통해 감각 재현의 구조를 설계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감정을 직접 진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모듈로 해체한다.
감각의 입력, 일상 시스템, 침입 변수, 그리고 구조 재편의 결과.
이 네 가지가 작품 내부에서 다시 하나의 시스템 모듈로 재조립된다.
이 해체와 역설계의 과정에서 불필요한 정서 과잉은 삭제된다.
자칫 불필요해 보이는 수많은 사물의 등장은 그래서 필수적이다.
그것들은 장식이 아니라 감정의 증거물이다.
감정의 노이즈를 제거하고,
물질이라는 신호만 남긴 것이다.
작품은 서로 다른 차원의 개념들을 구조적으로 접속한다.
사랑은 감각 구조의 재편으로,
문자 간격은 시간 체계의 교란으로,
일식집은 회복 장치로,
상실은 대체물 운용으로,
보라색 라면 봉지는 촉매로,
심장은 시스템의 핵심부로 변환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흔한 의미의 서사가 아니다.
주인공처럼 보이는 한 남자는 중심부에서 제거된다.
남자가 원인이고 화자가 반응이라는 기존의 위치성은,
화자 시스템이 본체이고 남자는 교란 변수라는 방식으로 전복된다.
이 전복을 통해 권력 배치는 달라지고, 중심은 새롭게 재설정된다.
초반부의 화자는 예민하고 과도하게 감각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05화를 통과하면 반전이 일어난다.
그 화는 이미 정보의 불균형 상태에서 이루어진 첫 물리적 만남의 감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05화 이후, 01화부터 04화까지의 모든 감각은 다시 읽히고 다시 해석된다.
이때 독자는 비로소 이 작품이 표면적인 연애소설이 아니라,
감각과 구조의 재배치에 관한 텍스트였음을 알게 된다.
결국 이 소설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해킹에 가깝다.
대화 자체는 독립적인 의미를 잃고,
문자 자체는 내용보다 간격의 리듬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이 작품은 흔들림의 기록이 아니라,
흔들림이 어떻게 구조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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