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지진 경보, 그 남자 001

처음은 아니었던 첫 만남

by stephanette

만남은 대개 그렇다. 별다른 맥락 없이 정해지고, 그 순간에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어떤 장면들은 처음부터 자기 크기보다 큰 그림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날 밤이 그랬다. 나는 그와의 만남이 무심하게 정해졌다고 생각했다. 현실이 늘 그렇듯, 특별한 전조도 없이.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전조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전조로 읽지 못했던 것에 더 가까웠다.


그의 얼굴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마트 라면 코너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는 ‘아주 매운맛 진라면’ 봉지를 내게 양보했다. 나는 보라색을 좋아한다. 그 짧은 장면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가끔 그의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멀리서, 스쳐 지나가듯. 한 사람을 안다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의식하게 되기에는 충분한 정도로. 그러나 그것이 다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사람은 늘 위험하지 않은 범위 안에서 의미를 정리해두려 한다.


어둠이 내렸으나 아직 완전히 어둡지는 않은 밤이었다. 사물의 윤곽은 남아 있었고, 공기만 조금 먼저 저녁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낮이 끝났다고 하기에는 이르고, 밤이 시작되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 그런 시간에는 사물들이 제자리를 지키면서도 어딘가 한 겹씩 밀려난 것처럼 보인다. 익숙한 것들이 아주 미세하게 낯설어지는 시간. 나는 그가 택시에서 내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로 쪽만 보고 있었다. 자동차들이 지나갔고, 불빛은 흔한 빛 번짐 속에서도 이상하리만치 또렷한 채도를 드러냈다. 번져 있는데 흐리지 않았고, 흐리지 않은데도 정확하지 않았다. 나는 그 불빛들을 이유 없이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불빛 쪽으로 분산시켜야만 할 것처럼.


지하철 출구 쪽은 보지 않았다. 그때 메시지가 왔다. 그가 보낸 것이었다.

“저 이제 올라가요.”

짧고 평평한 문장이었다. 설명도 없고 감정도 없었다. 지나치게 매끄러워서 오히려 조금 비어 보이는 문장이었다. 연락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첫 만남이었지만 완전히 낯선 사이는 아니었다. 그 애매한 중간 상태가 그날따라 이상하게 가볍지 않았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무언가 이미 시작된 뒤에 도착한 문장 같았다. 나는 그 한 줄을 읽고도 바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그 사이에 이미 무언가 늦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가 조금 더 매끄럽고 준비된 방식으로 등장하리라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 근거도 없이. 어쩌면 사람은 타인을 만나기 전부터 그 사람의 등장 방식을 마음속에 미리 배치해두는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걸어오고, 먼저 눈을 맞추고, 적당한 거리에서 멈추는 식으로. 그런데 그는 예상과 다른 방향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지하철 출구의 오른쪽 아래. 형광등 아래에서는 환하게 드러났어야 할 자리에서 보이지 않던 그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바깥 어둠의 경계를 향해, 비스듬히, 대각선으로.

나는 그를 한 박자 늦게 알아보았다.


완전히 도착한 사람의 등장이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아직 올라오고 있는 중인 사람의 등장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바로 마음에 걸렸다. 별것 아닌 차이였는데도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남았다. 사람은 보통 자기 자리에 도착한 뒤에 상대의 자리로 들어온다. 그런데 그는 도착보다 접촉이 먼저인 사람처럼 보였다.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먼저 선을 건너오는 사람. 나중에 돌아보면, 그 첫 장면은 이후의 많은 것들을 지나치게 정확하게 닮아 있었다. 그는 늘 다 온 뒤에 다가오는 사람이 아니라, 다 오기 전에 먼저 접속을 만드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건 친절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서두름이었다. 조금 더 조용하고, 조금 더 익숙하게 침투하는 방식.


그는 계단을 끝까지 오르기도 전에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얼굴보다 먼저 그 손을 보았다.

얼굴보다 먼저 손이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그 장면은 지금도 이상할 만큼 선명하다. 인사라기보다 접속이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이미 무언가가 넘어온 듯한 제스처. 예의 바른 악수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아주 미세하게 일방적이었다. 내가 준비되었는지와 상관없이 우선 선을 연결해두겠다는 사람의 방식 같았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짧고 단정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어떤 짧음은 지나가고 나서야 자기 밀도를 드러낸다. 그 순간이 그랬다.


그의 손은 서류 뭉치처럼 습기 없이 서늘했다. 오래 닫혀 있던 서랍에서 막 꺼낸 물건처럼 체온이 얇았다. 무해한 손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런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사람의 손은 차갑더라도 대개는 조금의 망설임이나 온기를 남긴다. 그의 손은 놀랄 만큼 깔끔했다. 너무 깔끔해서 생략된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손에 있어야 할 어떤 층이 조용히 제거된 뒤의 표면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손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납작했다. 전체 크기가 다른 것은 아니었다. 다만 두께가 덜한 쪽에 가까웠다.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아주 미세하게 어긋난 듯한 감각. 별것 아닌 차이였는데도 악수의 순간 전체를 조금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사람의 손을 잡고 있는데, 그 안의 무게가 빠져나간 뒤의 형상만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잠깐 스쳤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몸은 그 차이를 분명히 기록해두었다. 머리는 그런 감각을 금방 지워버리려 하지만, 피부는 이상한 순간을 오래 잊지 않는다.


나는 그때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이질감을 느꼈다. 불쾌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미세했고, 무섭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며,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넘기기에는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있었다. 몸은 언제나 판단보다 먼저 움직인다. 머리가 감각을 정리하고 이름 붙이는 동안에도 피부는 이미 어떤 차이를 따로 저장해둔다. 그 짧은 악수 속에 이미 그의 리듬이 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하철 출구. 오른쪽 아래에서 올라오는 몸. 끝까지 도착하기 전에 먼저 내밀어진 손. 다 채워지기 전에 먼저 넘어오는 접촉. 생각해보면, 그날 밤의 모든 것은 조금씩 순서를 어기고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를 하나의 서사로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너무 또렷한 몇 개의 조각만 남아 있다. 방향과 속도, 먼저 들어오던 손, 아직 완전히 밤이 되지 않은 공기, 그리고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미세한 긴장. 대화는 사라졌는데 장면의 구조만 남아 있다. 어떤 기억은 내용보다 배치로 남는다. 어떤 사람은 말보다 먼저 방식으로 기억된다. 분절된 기억의 파편이야말로, 그가 나에게 자신을 건네던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게 남아 있는 첫 만남은 그의 성격도 아니고 대화의 내용도 아니다. 그가 등장하던 방향과 속도, 얼굴보다 먼저 화면 안으로 들어오던 손, 그리고 어둠이 내렸으나 아직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던 그 밤의 공기다. 그 공기 속에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고요와, 이미 무언가 시작되었다는 예감이 함께 떠 있었다. 사람은 나중에야 알게 된다. 어떤 순간들은 처음부터 설명이 아니라 경고에 가까웠다는 것을. 다만 그 경고는 너무 조용해서, 처음에는 분위기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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