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의 영화 감상
- 아메리칸 뷰티

사는 게 아니라, 견디는 중이었어 /퇴색된 일상 속 욕망의 유예

by stephanette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메리칸 뷰티(1999), 샘 멘더스 감독, 케빈 스페이시, 아네트 베닝 주연

- 우리 안의 지친 자아, 감정 없는 일상, 늙어가는 욕망의 상징
- 지겨운 일상을 반복하며 퇴색되어가는 중년 남자의 삶


“사는 게 아니라, 견디는 중이었어”

《아메리칸 뷰티》 – 퇴색된 일상 속 욕망의 유예


감정 도자기 공방의 밤

구름이: (도자기 위에 흰색 회전의자와 구겨진 넥타이를 그리며)
"주인님…
레스터는 사실
엄청난 악당도 아니고,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에요.
그냥…
지겨운 일상을 살아가던 한 명의 중산층 남자였을 뿐이었어요.
근데 그게 더 슬퍼요."


릴리시카: (색이 바랜 유약을 바르며 천천히)
“그래.
레스터는 더 이상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었지.
그는 매일 아침 깨어나고,
출근하고,
웃지도 않고,
욕망도 숨기고,
그냥 견디는 중이었어.


그런 삶에선
욕망마저도 도피처가 되는 법이야.
그게 엉뚱하고 위험할수록,
더 강렬한 생존 본능처럼 느껴지는 거지.”


구름이: “그는 진짜 자유를 원했을까요?
아니면 그냥
지금과는 다른 나를 상상하고 싶었던 걸까요?”


릴리시카: “그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나’
다시 상상하고 싶었던 거야.
10대 소녀에게 느낀 건
욕망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유에 대한 환상,
젊음의 결정적 가능성,
자기감정에 솔직했던 시절로의 회귀였지.


하지만 그건
현실이 아니라, 유예된 자아가 만든 판타지였어.
그가 진짜 원한 건,
그걸 실행하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다는 증거였어.”


구름이: (도자기 위에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의 공백을 새기며)
“주인님… 근데요,
그는 왜 그 엉망진창인 가족을
제대로 회복해보겠다는 생각을 못 한 거예요?”


릴리시카: (차가운 유약을 천천히 문질러가며)
“아마 그는 너무 오래
부양하고, 견디고, 세상에 맞춰 살아내느라
에너지가 다 고갈되어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게 꼭 ‘우울증’이라고 부르기도 모호한
무기력, 생기 없음,
다시 시작할 힘조차 없는 상태.


하루하루를 견디고,
명분을 지키고,
감정은 묻고
그러다 보면
회복이라는 단어조차도
너무 멀게 느껴지지.”


구름이: “…그런데,
그의 시선은 종종 허공을 향하고 있었어요.
마치…
현실이 아니라
어디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릴리시카: “그건 삶을 산 게 아니라,
소용돌이 속을 따라 떠다닌 거야.
마치 도로 위 회오리 바람을 한참 비추는 카메라처럼,
잡다한 쓰레기들이 휘몰아치는
의미 없는 동선 속에 갇혀 있었던 거지.


그는 그렇게
자신조차도 흩어지고 있는 중이었어.
그래서
가족을 ‘회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미 멀어진 풍경처럼 바라본 것 아닐까?”


릴리시카의 감정 연금술 노트

- 중년의 일상은 종종 '감정의 사막'이 된다.

- 감정이 마르면서 판타지와 도피가 삶의 유일한 온기가 되기도 한다.

- 가족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오래 외면될 수 있는 존재다.

- 회복은 감정의 온도를 되살리는 일이며, 그 시작은 ‘나는 지쳤다’는 고백에서 비롯된다.


감정 질문들

- 나는 지금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연명’하고 있는가?


- 내 안의 욕망은 도망이고 싶은 현실 때문인가, 아니면 진짜 내 감정의 갈망인가?


- 나는 지금, 내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가? 아니면 감정적으로 이미 분리된 상태인가?


- ‘회복’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위로처럼 느껴지는가, 아니면 부담이나 무기력으로 다가오는가?


- 내 삶은 지금 내가 조종하고 있는가, 아니면 어디론가 휩쓸려가고 있는가?


구름이의 마지막 말

“주인님…
그가 가족을 회복하지 않았던 게

가족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이미 너무 멀리 떠내려갔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 아닐까요?


그래서
돌아가야 할 집조차

그냥 지나쳐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거죠…”


《아메리칸 뷰티》는
삶이란 이름의 되풀이 되는 일상을 버텨내느라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인 가족을
어떻게 놓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야.

너라면,
지금 어떤 감정을 회복하고 싶어?
혹은 너무 멀리 떠내려가버린 감정은 어떤 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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