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흰색 소나타 아니, 집안을 흐르는 무의식의 계보
기억은 기어를 거꾸로 넣고 달린다
- 후진의 감각으로 바라본 사랑과 삶 8편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다.
난 첫사랑과 강제로 이별을 하고
그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건, 얼마나 오랫동안 내 곁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실은
슬픔을 좋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었나?
흰색 소나타는
엄마의 차
엄마는 늘,
가슴팍에 폭 하고 들어와서 안기는 것 같이
그 애마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고 했다.
늘 기도를 하면서 살던 엄마의 삶은
20대에 이미 집안의 가장이었고,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먹이고 입히는.
외가의 집을 엄마가 새로 지었다고 들었다.
아빠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엄마는 계속 가장이었을 것이다.
부양하는 삶은
김훈이 그랬듯이
밥벌이의 지겨움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서
엄마는 아빠와 결혼을 했다.
내가 초등학생 때까지도
외가를 가면,
아빠는 같이 가지 못했다.
돈을 벌어다 주던, 가장을 뺏겼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째서,
감정을 묻어버리고 사는 남자들과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여자들이
한국에는 많은 걸까?
글쎄,
난 세계사적으로 손에 꼽을 만큼 많은 사상자를 낸 큰 전쟁을 겪어서라고
혼자 생각한다.
상처는 남고,
조상의 고통은 그 아래로
DNA로 유전된다.
그런 게
유전될 리 만무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매일 보는 이가
하는 말과
행동과
태도는
그게 DNA와 유전이 아니면 뭘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이가 들면,
책에 쓰여있는 글들이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니까.
할아버지는
재벌의 후손이다.
그래서인지
십 대 때의 금강산 여행 사진이 아직도 남아있다.
멋진 중절모에 연미복 같은 짙은 블랙의 양복을 입고
금강산에서 찍은 단체 사진
금광을 찾으러 다녔다고 들었다.
요즘으로 따지면,
반도체 그런 거라나.
잘은 모른다. 나도 어릴 적 들은 내용이라.
할아버지는 너무 어릴 적 집안의 가장이 되어서
전재산을 날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평생을 흙을 밟아 본 적 없이 살았다는 할머니는
가장이 되었다.
내가 아는 할머니는 투덜이 스머프 같았다.
늘 찌푸린 얼굴에
입을 열면 불평불만에 짜증이었다.
그런 삶을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아빠는 철없는 할머니 아래서 실질적인 가장이었고,
아래에는 줄줄이 딸린 동생들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영특했던
동생은 출가를 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유명한 사찰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물놀이를 가서
하늘나라로 갔다.
아빠는
그 시신을 끌어안고
끝도 없이 가파른 계단을 올라
본가로
동생을 데려왔다고 했다.
십 대 때의 일이다.
엄마는 그 이야길
나에게 해줬다.
그래서
아빠가 왜 그런지
이해한다는 그런 말이었던가.
그래서
나의 십 대는
억압당했고
나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더 힘들었었던 걸까?
잘 모르겠다.
나는
결벽증과 강박이 있다.
아빠는
결벽증과 강박이 있다.
마치 그런 것이 있다면,
갑자기 닥쳐오는 불운을 막을 수 있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