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다시 흰색 소나타
기억은 기어를 거꾸로 넣고 달린다
- 후진의 감각으로 바라본 사랑과 삶 9편
엄마가 결혼식을 할 때,
아빠는 전국을 수소문해서 할아버지를 찾았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지냈는지는 모르나
결핵 환자였고,
당시에는 요양병원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빠는 산 아래 땅에
집을 짓고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당시 나는 어렸으니까
이유도 모른 채
할아버지의 방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를 듣고 살았다.
그래서였을까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은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쏘울 메이트를 처음 봤을 때,
할아버지 생각이 났었던 것도
오랜 시간 쏠메와 알고 지내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글쎄 30대였을까
그때의 엄마는
매일 집안의 모든 그릇을 열탕 소독을 하고
500평이 넘는 밭을 관리하고
- 아픈 할아버지의 소일거리 삼아 만들어둔 땅에
농사라고는 모르는
그저 씨앗을 심고 키우던 그런 땅이었다.
어린 나는
여름이면,
옥수수를 따오라고 하면
옥수수를 신나게 따서 들통에서 쪄낸 옥수수를 먹던 기억이 난다.
아빠가
일본 주택 잡지를 보고
설계한 일층 양옥집은
예상보다 더 많은 돈이 들었었다.
뼈대를 만들고 콘크리트를 붓다 보니 그랬다고 들었다.
아빠가 30대에 지은 그 집의 옥상에서
난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삶은 어째서 이러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왜 다섯 살도 안된 어린 나이에 그랬는지는 모른다.
어서 빨리 하늘의 저 뭉게구름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동생이 태어나고,
돌봐야 할 세 자녀
그리고
집에는 닭, 토끼, 고양이
손이 갈 곳은 많았고
엄마는 혼자서 그런 것들을 다 해냈었다.
가끔 엄마가 뒷 산의 무덤가에 가거나 그러면
왜 그런지
어린 나는 잘 몰랐다.
글쎄,
내가 30대였다면
그걸 감내할 수 있었을까.
가끔 새벽에 언니를 픽업해 주고
당시에는 과속카메라도 없던
한국의 아우토반 자유로를
엄마가 혼자 질주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 심정을
지금의 나로서는 온전히 알 방법은 없다.
그래서,
흰색 소나타를 엄마는
매우 애지중지했다.
할아버지는 중풍으로
엄마는 십수 년의 병간호를 하고
따로 살던
할머니의 암으로
또다시 십수 년간 병간호를 했다.
그 삶을 다 봤던 나로서는
지금도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할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