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상속을 중단하고,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 자의 의식
기억은 기어를 거꾸로 넣고 달린다
- 후진의 감각으로 바라본 사랑과 삶 11편
새벽에 꿈을 꾸었다.
애마를 잃어버리고
난, 내 마음 속 애정하는 차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애정하는 차들이
얼마나 우아하고 고귀한지
그런 글을 쓸거라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무의식 '솜사탕'은 상당히 위협적이다.
나의 글은
결국
나의 꿈으로 돌아간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는
캐리어 아줌마가 끌고 사라진
그 캐리어처럼
엄마와 그 주변의 모든 여성들이 갖고 있던
그 많은 짐들을
그 캐리어에 넣어서
잃어버렸다.
집단무의식이라고 하자.
집안을 따라서 흘러내려오는 DNA라고 해야하나.
한국 사회를 따라
아니 온세상의 여성들을 따라
내려오는
'유전'
이라고 해야겠다.
그게 맞는 말이잖아.
그걸 잃어버렸다.
언제?
오늘 새벽에.
그러니,
축하주를 해야하는 날이다.
난 말벡을 마시고 있다.
와인을 마셔서 하는 말은 아니다.
어째서
삶은 고통인가
어째서
그 고통에
또 고통을 더해야하는가
어째서 당장
그 고통을
끝낼 수는 없는가
쏘울메이트가 그런 말을 했다.
강제로 당장 끝내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한다고.
진실을 말하는 이는
밉다.
그게 진실이다.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왜
자꾸 다시 환생을 하며
이 고통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무슨 미련이 남아서
강렬한 자유
그 첫사랑과의 재회라도 바래서인가
아니면,
완전히 이상적인 아니무스의 현현을 만나서
끝간데 없는
환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글쎄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의 시뮬레이션 속 옵션에 체크를 할 때에는
그 전 생에 내가 겪어보지 못한
그런 경험들을 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래서 이것 저것
고심 끝에 체크를 하고
이 생에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내가 출발했던
완전한 그 세계에서는
경험
불완전성을 가진 이로서 겪을 수 있는 그 경험을 하지 못하니
지루하고 할일없고 그러던 나는
하릴없이
그래, 이제 나는 완전함에서 떨어져나와서 경험을 하겠어
그것도 강렬하고 찐하고 생생한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지구별의 물체가 되었던 것도 같다.
어쨌든,
오랫동안
엄마는
관상기도에 흠뻑 젖어있는 엄마는
오랫동안,
천주교의 구마팀의 일원이었던 나의 대모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래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조상들을 위해서 늘 기도를 했다.
아마도 조상들에게서 내려오는
'유전'
을 끝내기 위해서 였을까?
새벽의 꿈
나는
캐리어를 잃고
그 캐리어를 옮기던 나의 애마를 잃고
그 캐리어이자 엄마의 여성 동지였던 그 사람도 잃고
엄마도 사라졌다.
모든 영향력이 다 사라지고
난
횡하니 바람이 부는
사거리 한복판에 서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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