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밤

La Noche Oscura del Alma

1

어느 어두운 밤에

사랑에 타 할딱이며

좋을씨고 행운이여

알 이 없이 나왔노라

내 집은 이미 고요해지고

2

변장한 몸, 캄캄한 속을

비밀 층대로 든든하이

좋을 씨고 행운이여

캄캄한 속을 꼭꼭 숨어

내 집은 이미 고요해지고

3

상서로운 야밤중에

날 볼 이 없는 은밀한 속에

빛도 없이 길잡이 없이

나도 아무것 못 보았노라

마음에 속타는 불빛밖엔

4

한낮 빛보다 더 탄탄히

그 빛이 날 인도했어라

내 가장 아는 그분께서

날 기다리시는 그곳으로

아무도 보이지 않는 그쪽으로

5

아, 밤이여 길잡이여

새벽도곤 한결 좋은 아, 밤이여

굄하는 이와 굄받는 이를

님과 한몸 되어버린 괴이는 이를

한데 아우른 아하, 밤이여

6

꽃스런 내 가슴 안

오로지 님 위해 지켜온 그 안에

거기 당신이 잠드셨을 때

나는 당신을 고여드리고

잣나무도 부채런 듯 바람을 일고

7

바람은 성 머리에서 불어오고

나는 님의 머리채 흩어드릴 제

고요한 당신의 손으로

자리게 내 목을 안아주시니

일체 나의 감각은 끊어졌어라

8

하릴없이 나를 잊고

님께 얼굴 기대이니

온갖 것 없고 나도 몰라라

백합화 떨기진 속에

내 시름 던져두고,

-십자가의 성 요한, 어둔밤

사족

십자가의 성 요한’(San Juan de la Cruz, 1542–1591)은 스페인의 가톨릭 신비주의자이자 시인이며, 카르멜회 수도사로 활동했다. 특히 ‘영혼의 어두운 밤’(La noche oscura del alma, Dark Night of the Soul)이라는 개념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개념은 개인이 영적 성숙에 이르기 위해 겪는 깊은 고통과 영적 황폐의 시간을 뜻한다.

핵심 개념 요약

1. 영혼의 어두운 밤 (La Noche Oscura del Alma)

신과의 깊은 합일에 이르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내적 고통의 시기.

외적·내적 모든 위안이 사라진 상태로, 신은 침묵하고, 인간은 버려진 듯 느낀다.

그러나 이 어둠은 ‘정화의 불’이며, 자아를 태워버리고 신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만 남게 만든다.

2. 삼단계의 영적 길

정화 (Purgation): 감각적 욕망과 자아를 정화하는 시기.

조명 (Illumination): 신의 뜻과 자아의 조화를 통한 깨달음.

합일 (Union): 신과의 일체감, 사랑의 완성.

3. 시와 상징의 언어

성 요한은 자신의 신비 체험을 주로 시로 표현했으며, 이후 자서전적 해설을 붙였다.

주요 시편인 『영혼의 어두운 밤』,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살아 있는 불꽃』 등은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언어를 쓰면서도 영혼과 신의 결합을 상징한다.

그가 끼친 영향

테레사 성녀와 함께 스페인 신비주의 운동의 대표자.

후대의 신학자, 시인, 정신분석가(예: 라캉, 융)들에게 깊은 영향을 줌.

특히 칼 융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개별화 과정의 필수적 시련으로 보았고, 자기(Self)로의 통합 여정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상징적 죽음으로 이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