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성요한 어둔밤에 대한 에세이
1
어느 어두운 밤에 / 사랑에 타 할딱이며 / 좋을씨고 행운이여 / 알 이 없이 나왔노라 / 내 집은 이미 고요해지고
‘어두운 밤’은 신과 단절된 것 같은 내적 황무지를 상징하지만, 여기서는 ‘사랑에 불타’ 이를 자발적으로 통과합니다.
‘알이 없이 나왔다’는 말은 자아(ego)의 통제 없이, 신적 부름에 순응했다는 뜻.
‘내 집은 고요해지고’ → 감각, 욕망, 외적 자아의 활동이 멈춘 상태. 침묵 속에서 영혼은 출발합니다.
2
변장한 몸, 캄캄한 속을 / 비밀 층대로 든든하이 / 캄캄한 속을 꼭꼭 숨어 / 내 집은 이미 고요해지고
‘변장한 몸’은 수도복을 의미하기도 하고, ‘세상적 자아를 숨긴’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영혼은 비밀리에, 외적 자각 없이, 오직 내면의 부름에 따라 깊은 어둠 속을 지나갑니다.
3
상서로운 야밤중에 / 날 볼 이 없는 은밀한 속에 / 빛도 없이 길잡이 없이 / 나도 아무것 못 보았노라 / 마음에 속타는 불빛밖엔
빛도, 길도, 도움도 없이… 하지만 ‘내 마음에 속타는 불빛’, 곧 사랑의 불꽃 하나로 길을 갑니다.
신은 부재하지만, 사랑은 내 안에 살아 있습니다.
4
한낮 빛보다 더 탄탄히 / 그 빛이 날 인도했어라 / 내 가장 아는 그분께서 / 날 기다리시는 그곳으로 / 아무도 보이지 않는 그쪽으로
외적 빛은 없지만, 내적 사랑의 빛이 ‘한낮보다 더 정확히’ 나를 이끕니다.
그 길은 ‘아무도 모르는 그분의 거처’,
즉 신과의 합일을 위한 내면의 궁극적 장소입니다.
5
아, 밤이여 길잡이여 / 새벽도곤 한결 좋은 아, 밤이여 / 굄하는 이와 굄받는 이를 / 님과 한몸 되어버린 괴이는 이를 / 한데 아우른 아하, 밤이여
이 밤은 이제 공포가 아닌 축복입니다.
‘님과 한몸이 되는 괴이한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 이 밤은 혼인, 합일의 밤입니다.
"굄"은 “귀여워함” 혹은 “기댐”의 의미를 가진 옛말로,
영혼과 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데 쓰입니다.
6~8
육체적 감각과 구분할 수 없는 에로스적 사랑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신과의 영적 결합을 상징하는 신비적 에로티시즘입니다.
“잣나무도 부채런 듯 바람을 일고”, “백합화 떨기진 속” 등 자연과 감각이 조용히 사랑의 도구가 되는 순간,
모든 감각은 멈추고, 오직 존재와 존재가 서로를 흡수하는 침묵과 관조의 상태로 진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