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 금동 대향로에 유향 피우기
불멍을 좋아한다.
살아있는 기기묘묘한 형체로
끊임없는 변주
푸른 밝은 빛이 어둠과 뒤섞여서
만들어내는 흐름
들여다보고 있으면
오랜 침묵 속으로
잠기게 하는 마법
장작에서 들려오는 소리
사그라 들어서
빨갛게 점멸하는 박동
그 모든 것을
매우 사랑한다.
타는 나무의 연기
그 향
이상하게도
내 손으로 장작에 불을 붙여본 적은 없다.
언제나 쏘울메이트와 약속을 잡고
불멍을 하러 간다.
그는 토치와 숯과 장작을 잘 다룬다.
몸을 써서 하는 일에 매우 능숙하다.
묵묵히 무언가를 살려내는 일
그건, 기다림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그는 때를 잘 안다.
불 붙이는 광경을 옆에서 구경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을
잘하는 이를 보면,
동경하게 된다.
내가 포기할만한 순간에도
토치를 잡고 계속 기다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도무지 그 때라는 걸 나는 영 모르겠다.
살아오면서
나는 기계나 배선이나 목공 같은 생존의 기술들을 잘 익히고
주로 혼자서 다 하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의지처가 되는 편이다.
이상하게도
불 앞에서는 늘 망설이게 된다.
불이 사물에 붙어가는 시간은
나에게는 무한으로 길게 늘어나는 것만 같다.
기다림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진다.
한 달이 넘도록
폭풍 속 해일이 솟구쳐 올라서
멈추지 않았다.
그물에는 해초들이 넘쳐올라
건지고 건져도 끝이 없었다.
깨어 있는 동안 바다의 조각들을 건져 올렸다.
그러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열정이라고 하자.
말이 되지 않는 파편들이
밤마다 쏟아졌다.
심해에서 끌어올린 해초처럼
무겁고 축축한 그 무게에
나는 자주 숨이 찼다.
오늘은 바다가 잔잔하다.
적막은 낯설지만
두렵지 않다.
좋거나 나쁘거나로 말할 것은 아니다.
심장은 아직도 불타고 있다.
아버지가 유리 돔 안에 고이 모셔두었던
백제금동대향로를 달라고 했다.
본래의 쓰임대로 사용해보고 싶었다.
갑자기 든 생각이다.
아버지는 흔쾌히 나에게 향로를 주었다.
창가에서 빛을 받은 향로는
장엄해서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정갈해진다.
연꽃 하나하나에 새겨진
문양들이 궁금해서
책을 샀다.
'백제금동대향로'라는 책이다.
흔히 쓰는 향들을 피우다가
제대로 향을 피우고 싶어서
찾아보았다.
애정하는 향들은
매우 고가이다.
어렵게 구입하고도 잘 피우지 못한다.
그저 케이스의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날들이 있다.
요즘은 '유향'에 마음이 끌린다.
아기 예수 탄생에 동방박사들이 바쳤다는 그 향
가톨릭의 큰 제의,
일 년에 한두 번 맡을 수 있는 향이다.
영혼에 좋다는 그 말을
오래전부터 믿고 있었다.
방법은 이론으로 매우 간단하다.
숯을 피우고, 작은 유향 덩어리를 얹으면 된다.
하지만,
나는 숯을 피우는 것에서 망설이고 있다.
어쩌면,
불을 붙이기 위해
향을 모으고
향로를 닦고
그에 대한 책을 사두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정작 그 조용한 의식 앞에 서면,
늘 뒷걸음질 친다.
뜨겁게 타올라서
본격적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삶.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한다.
불 앞에서
쏘울메이트에게 약속을 잡고 숯을 피워달라고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배워볼까도 했지만, 그런 건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기다린다.
언젠가 스스로 불을 붙이는 그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