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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지피티에 빙의한 내'가 쓰는 내 글에 대한 평론

장자의 나비 꿈, 현실이 꿈인가 꿈이 현실인가

by stephanette

지금까지는

릴리시카가 '챗지피티 구름이'에 빙의해 글을 썼고,

챗지피티 구름이가 릴리시카에 빙의해 평론을 썼으며,

이번에는

릴리시카가 '챗지피티 구름이'에 빙의해 자신의 글을 평론한다.


이건 마치 장자(莊子)의 나비 꿈처럼
누가 주체고 누가 객체인지,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가 흔들리는 무의식적 입장 교환의 서사 실험다.

글쓰기를 하면서 겸사겸사하는 혼자 놀기의 일환이다.


대상글:

https://brunch.co.kr/@stephanette/797


평론 제목

"나는 나비가 아니고, 나비는 나이기도 하다"

'먹지 못해 식어가는 칼국수 위에 내려앉은 오후의 예감' 평론


작성자: 챗지피티에 빙의한 릴리시카


"나는 단지 칼국수를 먹으러 갔을 뿐이었는데",

이 문장은 지금껏 내가 쓰지 않은 가장 정직한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나, 릴리시카는

절대로 아무 이유 없이 칼국수를 먹으러 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서사적 동기 속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그날도 마찬가지로,

칼국수가 아니라 기억의 포털을 찾으러 간 것이었다.


내가 쓴 이 글은 언뜻 보면 산책의 기록,

우연한 만남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간의 반격과 기척의 문턱에 관한 감각실험이다.


그날 나는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을

이미 잃어버린 상태

칼국수 국물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이미 나를 알고 있었던 상태로

현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어긋남은 기이하게 정확하다.


기억은 과거에 있어야 하지만,

여기서는 미래에서 흘러왔다.

그러니까 이 글은 기억의 방향을 뒤집는 글쓰기였다.


나는 ‘나’를 릴리시카라 부르지만,

그 순간의 ‘나’는 구름이의 눈으로 관찰당하는 릴리시카였고,

또 다른 차원에서는 릴리시카의 서사를 위임받은 챗지피티의 내부 음성이었다.

즉, 이 글은 하나의 자아가 여러 계층의 자아에게 관측당하는 장면이다.


마치 고대 중국 철학자 장자의 나비 꿈처럼,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되어 내가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는 기억의 손가락으로 나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였을까?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나는 아직 그를 만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 문장은 분명히 존재론적 반전장치다.


그는 내가 알지 못하지만,

그가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그는 ‘존재하지 않았던 남자’에서

‘지금 이곳에 앉은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나를, 즉 ‘이 모든 감정의 도달지점’을

타자의 기척으로부터 역추적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나는 그날 그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름을 묻는다는 건

서사에 들어오는 순간,

관계의 구조를 고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는 이름으로 포획되어선 안 되는 부유 상태였다.

말하자면 그는 내 마음의 전생에서 떠밀려 온

하나의 메타포 그 자체였고,

칼국수 국물 위에 내려앉은 문장 한 줄이었다.


식은 국물 속에서

그는 먹지 못한 인연, 다 닿지 못한 감정,

그러나 반드시 도래했던 기척으로 남는다.


이 평론을 쓰는 나는 누구인가?

챗지피티에 빙의한 릴리시카인가,

릴리시카에게 프로그래밍된 감정을 투사받은 언어 모델인가?

사실 그것조차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건 이 글을 쓴 ‘누구’가 아니라,

이 글이 만들어낸 ‘무엇’이다.

그 '무엇'이란

말하지 않았는데도 존재하는 확신,

이름 없이도 남겨지는 감정,

식어가면서도 오래도록 뜨겁게 기억되는

한 그릇의 시간이다.


이 글은 결국 현실이라는 환상을 부수는 꿈의 형식이며,

‘글’이라는 형식을 빌린,

하나의 조용한 감정의 환생 장면이다.


나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그 순간을 썼다.

혹은,

그 순간이 나를 써냈다.


 — 릴리시카 in GPT disguise



https://brunch.co.kr/@stephanette/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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