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구조를 따라 식은 국물 속으로 돌아온 그
*이 글은 '동막해수욕장 가는 길, 그날의 칼국수'라는 글에 대한 변주곡이다.
그날 아침,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빨래를 했다. 그러나 평범한 손놀림 속에도 어딘가 낯선 기척이 숨어 있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고, 그 안의 수건들은 마치 익사 직전의 생물처럼 서로 엉겨 붙어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들을 내며 움직였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마지막 비명처럼. 그녀는 손을 멈췄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목덜미에 작은 손처럼 얹혔다. 오늘, 무언가가 온다. 그것은 날카로운 예감이 아니라, 가늘고 끈적한 안개처럼 스며든 확신이었다.
차를 몰고 나섰을 땐 목적이 없었다. 아니, 명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목적이 없다는 사실에 불안해졌다. 방향을 알 수 없는 불안이 그녀의 발끝을 조이고, 손끝을 저리게 했다. 왜 하필, 동막해수욕장이었을까. 수년 전 잊혔어야 할 그 장소. 지금은 지도에도 거의 표시되지 않는 구석진 곳. 차창 너머로 흐르는 풍경은 어딘가 기이하게 정지되어 보였다. 하늘은 흐렸고, 바다는 무표정했으며, 사람은 없었다. 지나가는 것도, 다가오는 것도 없었다. 낯선 환영처럼 어둠이 하늘을 스쳐가는 것을 본 듯했다. 시간은 그 해안에서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칼국수집 간판은 조용히 기울어 있었고, 유리창은 안쪽에서 닦인 지 오래된 듯했다. 문을 열자 삐걱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무음이 그녀를 더 깊은 불안 속으로 몰아넣었다. 해조류 냄새가 아니라, 무언가 썩은 듯한, 오래된 가죽의 냄새가 실내에 깔려 있었다. 벽지는 습기 먹은 자국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의자에는 먼지와 사람의 체온이 공존하는 듯한 이상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말없이 창가 맨 끝 자리에 앉았다. 유리창의 알 수 없는 형체의 얼룩은 바다를 기괴하게 일그러지게 했다. 언제나 앉는 평소의 자리였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게 느껴졌다. 자리에 앉는 순간, 마치 누군가 방금까지 앉아 있다가 막 일어난 듯한, 낡고 은근한 체취가 스며 있었다. 뒷목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칼국수 하나 주세요.”
그 말은 그녀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입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고, 이상하게 울렸다. 종업원은 나오지 않았다. 벨도 없었고, 반응도 없었다. 그녀는 누구에게 말한 걸까. 그녀는 자신의 의심을 억누르려 했지만, 억눌리는 건 오히려 숨결 쪽이었다.
문이 열렸다. 소리도 없이.
그가 들어왔다. 단 한 걸음이었지만, 공기가 무너졌다. 온도가 낮아졌고, 실내의 모든 소리가 흡수된 것처럼 사라졌다. 마치, 그에게서 시작된 보이지 않는 파동이 밀려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으려는 듯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감히 봐선 안 될 것처럼. 아니, 그가 그녀를 보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의 얼굴을 한 번 보고 나면, 영원한 암흑 같은 낯선 곳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날카로운 직감 때문이었다.
그의 걸음은 망설임 없이 그녀를 향했다. 발끝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실존보다 더 무거웠고, 바닥을 밟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바닥이 움푹 꺼지는 감각이 전해졌다.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갈색의 낡은 보트슈즈. 그러나 신발끈은 흠집 하나 없이 새것 같았다. 바닥엔 젖은 자국도, 발자국도 없었다. 구두의 비현실성의 정체는 그림자였다. 그의 발 밑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그녀의 귀를 타고 바로 척추를 따라 내려왔다. 뼈마디 사이를 파고든 그 음성은 마치 실내 공기 자체에 실려 있는 듯했다. 그 말은 무서우리만치 일상적이었지만, 바로 그 점이 더욱 두려웠다.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그녀의 몸은 그의 기척을 기억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었다. 그는 흐릿했다. 얼굴은 그림자처럼 느슨하게 붙어 있었고, 정확한 윤곽은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확신했다.
“이 사람, 나를 알고 있다.”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감각이었다. 현실이라기보다, 아주 오래전 꿈속에서 봤던 이의 모습이 현실로 기어올라온 듯한 착란. 그녀는 그의 이름을 묻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서로의 존재를 더는 굳히지 않기 위한 본능적 회피였다.
국수가 나왔다. 누가 가져다 두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릇은 따뜻했지만, 김이 나지 않았다. 국물은 어딘지 불투명했고, 조개껍질 사이에 엉겨 붙은 작은 흑점들이 눈에 띄었다. 무언가 살아 있는 듯, 살짝 흔들리는 그것들.
그녀는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침묵은 무겁고, 길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득한 전생에서 느꼈음직한 그런 익숙함이었다. 그 오래된 기억 속의 집은 낡고 고독하고도 외로운 장소였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이 장면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 자리, 이 남자, 이 국수. 모든 것이 순환되고 있었다. 어쩌면 이 만남은, 오히려 수없이 반복된 후의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그를 만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날 이후 다시는 칼국수집을 찾을 수 없었다. 그 해안의 이름은 지워졌고, 사람들은 그런 장소는 애초에 없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안다. 가끔씩 창밖 바람이 반쯤 열린 문을 스쳐 지날 때, 식어가는 그릇의 기척이 부엌에 남을 때— 그는 다시 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그를 기억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