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만남이, 시간의 주름을 따라 기억의 입자처럼 반짝일 때
*이 글은 '동막해수욕장 가는길, 그날의 칼국수'라는 글에 대한 변주곡이다.
나는 오늘 아침, 세탁기를 돌렸다. 물에 젖은 천들이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진동 속에서, 나는 나의 흔들림을 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반복적 노동이 아니라, 존재의 결을 고요히 따라 내려가는 명상이었다. 빨래는 더러워서가 아니라, 정화의 리추얼처럼 세탁이 필요했다. 오염된 것은 천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으므로.
나는 어떤 예감과도 접속되기 전, 이미 그 예감의 중심부에 있었다. 감각은 나보다 먼저 움직였다. 손끝의 물방울 하나가 중력의 규칙을 거슬러 맺히는 순간, 나는 알았다. 오늘은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안쪽에서 전체 구조가 바뀌는 날일 것이다. 그런 날은 있다. 외부의 사물은 고요하되, 영혼의 판이 이동하는 날.
차를 탔다. 어디론가 간다기보다는, 어디에나 있으려는 태도로. 방향성은 직선이 아니라 파동에 가깝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은 실제가 아니라 기억이었고, 나는 그 기억에 다시 호명되는 존재였다. 도착지로 불린 것이 아니라, 기억의 자리에 다시 소환된 것이다.
동막해수욕장. 물의 기척이 오래 머무는 이 구역. 공간이 아니라 차원 사이의 균열. 나는 그 틈새에 발을 들였고, 바다는 말없이 나를 맞았다. 말이 없다는 건, 전언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대화가 끝났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나는 그 끝의 침묵에 기대어 조용히 주막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은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풀리는 장소였다. 의자에 앉는 순간, 나는 내 육체의 밀도를 느꼈고, 바깥의 공기가 바뀌었다. "칼국수 하나 주세요." 이 말은 식사의 주문이 아니라, 존재의 확인이었다. 나 여기 있습니다. 내가 나에게 요청합니다. 오늘도 살아 있기를.
그리고, 그가 들어왔다. 그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형태 너머의 에너지였다. 기척이라는 말보다 더 정밀한 단어가 필요하다. 그는 '인지된 적이 있는 파장'이었다. 아직 만나지 않았으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파동의 반복.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나는 아직 그를 만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는 순서를 다르게 인식하고 있을 뿐, 동일한 맥락 안에 놓여 있었다.
그는 나를 보았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 시선은 응시가 아니라, 열림이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서 나 자신을 보았다. 그것은 눈빛이라기보다는, 거울이었다. 국수는 나왔다. 그릇 안에는 육수와 조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인연의 메아리가 담겨 있었다. 나는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허기는 사라졌고, 감각은 포화되어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장소를 다시 찾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은 내 안에 있다. 언제든 닿을 수 있는, 기억과 현실의 경계에 떠 있는 미세한 결.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다음 생이 아니라, 다음 의식의 층위에서. 그는 다시 올 것이다. 시간이 아니라 진동을 따라. 그리고 나는 그를 다시 인식할 것이다. 더 깊은 차원에서.
그것이 내가 살아 있는 이유다.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곧, 대화이고, 응답이고, 귀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