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내 글의 독자는 거의 남성일까?
'브런치 북'은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통계치를 보여준다.
그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5편 이상 수록된 경우 조회수 1000회 이상이라고는 한다. (정확한 기준이 아니다.)
전체 글의 노출률(제목, 이미지 등이 가진 매력)과
평균 체류 시간 등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이것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통계치도 전체누적이 아닌 듯 하나, 자세히 통계치를 알아볼 방법은 없다.
'외부 유입'의 경우는 통계에서 세부 내용을 수집할 수 없다.
처음 통계치 알림이 온 그 이후로도 가끔 통계치가 알림으로 뜰 때가 있다.
작가에게 주기적으로 통계치를 보여주는 것은
'글을 더 쓰라는 브런치 측의 유인작전' 정도 된다고 생각 중이다.
궁금한 건,
내 글의 독자들의 대부분은 남성이다. 그것도 특정 연령층이다.
어째서 내 글을 남자들이 더 많이 읽는지 자세히 알고 싶지만, 알 방법이 없다.
스레드에서 글을 시작해서 받은 좋아요나 댓글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대부분의 나의 글은 여성들이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는 동생이 "언니는 안에 남자가 들어앉았잖아."라고 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상당히 아니무스가 발달한 편이다. 아니마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비주얼적인 측면을 말하는 건 아니다.
최근의 개인적인 화두는 '연약함'이다.
살면서 강인하게 키워지고,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왔다.
어째서 그렇게 살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다.
아니무스를 대면했을때, 그는 매우 분노하고 있었다.
그 뒤로 다시 만나러 가지 않고 있다.
조금 진정이 되고나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화가 난 이유는
과도하게 아니무스 남성성을 발현시키고 살아서라고 생각한다.
과도한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좋지 못하다.
나의 본성은 매우 연약하다고 생각한다.
잘 부서진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세상의 모든 촉감을 선명하게 느낀다는 의미이다.
바람도, 말도, 표정도, 시선 하나에
그 모든 것을 직감으로 섬세하고 예민하고 생생하게 느끼는 편이라
그대로 받아들이면, 너무 깊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깊게 느낀다고 해야하나.
사람마다 다 다를텐데 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그리고, 강인함과 용기를 갖고 남성성을 과도하게 키우면서
연약함을 무시하고 살았다.
"나 혼자 다 할 수 있어."라고 말하던 나는
그 말을 통해 나를 억압하고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굳이 갑옷을 입고 살 필요는 없다.
연약하면 좀 어떤가.
딱히 강해야 잘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건강한 아니무스와 아니마를 만나는 날이 오면 좋겠다.
*아니마와 아니무스에 대한 이야기는 판타지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내 안의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특성을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달리 뭐라 해야하나 싶어서 쓴 말이다.
내면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조화로워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