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와 복수의 시학
-카뮈, 박찬욱의 복수3부작

의식하라, 그리고 끝까지 살아내라.

by stephanette

박찬욱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한국사회의 특징에 대해 '부조리'라고 대답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삶은 과연 살만한가?" 그는 인간이 의미를 갈망하는 존재인 반면, 세계는 침묵한다고 본다. 이 부조리한 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바로 이 질문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 특히 그의 복수 3부작이라 불리는 작품들 속에서 낯설게, 그러나 집요하게 되풀이된다.


『올드보이』는 이유 없는 고통으로 시작된다. 오대수는 15년간 감금되고, 그 이유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 밝혀진 진실은 말 한마디의 우연한 파급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부조리다. 인간의 말과 행동은 의미를 지닌 듯 보이지만,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는 우연적이며 무자비하다. 카뮈는 이러한 상황에서 도피하거나 신에게 의탁하지 말고, 오히려 부조리를 직시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오대수는 자신의 운명을 이해하고자 하지만, 그 어떤 구원도 그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끝내 바위를 굴리는 시지프처럼, 무너진 정체성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 앞에 선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이 부조리가 더욱 날것으로 드러난다. 복수는 더 이상 도덕이나 정의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고통은 고통을 낳고, 피해자와 가해자는 끝없이 교차한다. 등장인물들은 복수의 동기를 갖지만, 그 동기는 언제나 왜곡되고 흔들린다. 이 모든 비극은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과 '의미를 주지 않는 세계'의 충돌 속에서 일어난다. 카뮈의 시선으로 본다면, 이 영화는 부조리의 냉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초상이다.


『박쥐』에서는 윤리적 틀 자체가 붕괴된다. 인간을 구하고자 했던 신부가 흡혈귀가 되어 죄와 욕망의 회로 속을 방황한다. 선과 악, 신성과 욕망의 경계는 해체되고, 남는 것은 '살아있음' 그 자체뿐이다. 이 역시 부조리한 세계다. 하지만 박찬욱은 이 안에서조차 사랑과 자멸 사이의 끈질긴 선택을 그려낸다. 카뮈는 말한다. "우리는 시지프를 행복한 사람이라 상상해야 한다." 복수와 쾌락, 죄책감과 자유의 격투 속에서도 인물들은 스스로의 바위를 굴린다. 그것이 유일한 인간다운 저항이기 때문이다.


카뮈와 박찬욱의 세계는 다르면서도 닮았다. 철학자는 침묵하는 세계 앞에서 인간의 자각을 요구했고, 감독은 폭력의 미장센 속에서 감정의 진실을 파헤쳤다.


그들의 질문한다.

'의미 없는 세계 속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 대답은 이것이다.

'의식하라. 그리고 끝까지 살아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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