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 Jan 04. 2021

새해 다짐

다짐이 없는 2021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11월부터 다음 해 준비를 시작했다.


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았던 나는 다이어리를 적는 것이 습관이었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은 물론 순간순간의 감정들, 아이디어들, 그리고 추억까지도 모두 하나의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것이 즐거웠다. 11월이 되면 한 해 동안 했던 프로젝트들이 마무리가 되었고, 새로운 다이어리를 구입하며 한 해를 정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한 해를 맞을 준비를 했던 것이다.


새로운 다이어리에는 늘 새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들을 적었었다. 목표는 주요 목표와 가벼운 목표로 분류했다. 주요 목표는 목표 달성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거나 혹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나의 삶의 방향을 변화시킬만한 것들이었다. 가벼운 목표는 간단한 시간과 노력만 들이면 쉽게 이룰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주 간단하게 부모님과 여행 가기, 매월 독립영화나 공연 보기 등등이었다.


다이어리를 정리하면서 한 해 동안 이루었던 목표를 체크하고, 이루지 못한 목표도 체크하고, 또 계획하지 않았으나 내가 얻었던 것들을 체크하면서 다음 해에는 어떤 것들을 해 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나는 11월부터 새해를 살고 있었다.


2021년이 되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다이어리를 구매하지 않는다.


목표를 세분화해서 세우지 않은지도 2년째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주요 목표가 몇 년째 동일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직장을 그만둔 후부터는 24시간이 다 휴식시간인 동시에 작업시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재작년 상담을 받고 번아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더더욱 목표를 세울 생각이 없어졌다. 목표를 세워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 했던 지난 시간들이 어쩌면 내가 나의 몸과 마음을 돌아보지 않고 나 자신을 버려두었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목표를 세우고, 조금은 고생스럽게 무언가를 이루어가는 것이 좋다고 모두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떤 삶을 위해서 그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일까? 지난 몇 년 나는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질문을 직접적으로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지만, 목표를 이루면서도 괴롭고 힘들었던 이유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과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어가는 것은 성취감과 자존심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일 것이다. 그리고 결과가 내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 목표를 세우고 있는 것일까? 즉, 그 목표를 이루어내면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는가? 그 삶이 내가 바라는 삶인가? 그것을 이루면 내 삶은 만족스러운가?


나는 요즘 내 목표의 밑바닥을 보고 있는 중이다. 어떠한 욕망들이 나의 목표들을 만들었던 것일까? 그 목표들을 다 이루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모습일까? 나는 과연 그것을 알고 그 목표들을 세우고 노력해왔던 것일까?


그래서 2021년에는 목표가 없다. 그냥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갈 생각이다.


내 삶을 다시 돌아보고, 내가 진정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깨닫고, 한 해의 목표를 정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면서까지 지금의 고통을 참아내고, 목표를 이루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각자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각자가 그려가는 삶이 있다. 그러니 굳이 꼭 남들처럼 목표를 세우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통을 참을 필요도 없다. 더 나은 미래는 어떤 미래인지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각자가 꿈꾸는 더 나은 미래도 다를 테니.


각자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남들이 보았을 때 올해의 나 역시 게으르겠지만,

그리고 나 자신도 예전의 나를 여전히 버리지 못해 스스로 게으르다고 책망하는 시간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를 살아보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 천~~천히 움직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