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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민 큐레이터 Nov 21. 2016

에르메스 <빠리지앵의 산책>

런던의 원더랜드, 빠리 후 서울가다

역사적인 오브제와 현대적인 디지털 이미지가 섞여있다. 그라피티가 뒤섞인 방을 지나고 빠리의 작은 거리 속 벤치에 앉고 싶다.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전시장에 갔다기보단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엘리스가 된 기분이든다.  런던의 사치 갤러리에서 2015년 여름 전 열렸던 전시의 제목은 <Wanderland>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제목은 <빠리지앵의 산책>


이상한 나라를 영어로 쓰면 "Wonderland"가 되지만, <Wanderland>라고 쓴 이유가 있다. 배회하다는 뜻을 가진 wandering을 응용한 산책자들의 세상을 말한다.


이 플라너어 (Flaneur)는 지극히 빠리지앵적인 개념이다. 19세기 중반 빠리의 시인 보들레어는 빠리 도시 자체를 주목했다. 그리고 플라너어는 모던한 아케이드를 여유롭게 걸어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문화를 정립했다. 그리고 까페에 앉아 빠리의 변화된 도시를 주목하는 부르주아의 시선을 상징하기도 하는 한편, 고독을 즐기는 보헤미안을 칭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근대적 자유시민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들은 프랑스대혁명 후에 봉건적 시민 아닌, 그들만의 심미적 감각을 가진 빠리의 구성원이자 지금 동시대의 세상을 관조하는 산책자들이다.

 

열한가지 룸을 거닐며 관객들은 곳곳에 숨겨진 산책자를 만난다. 열열한가지 룸을 거닐며 관객들

그들의 신분은 숨겨져있는 오브제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방에서는 영화 속 산책자들이 우리를 맞는다. 우리가 익숙한 영화 아밀리에의 오들리 토투도 정겹다.



두번째 방은 5가지 18세기의 지팡이들이 있다. 이는 모두 에밀 에르메스 소장품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촛불이 켜지는 지팡이, 누르면 혓바닥을 메롱 하고 내미는 말 머리의 지팡이 등 이들의 기능은 함께 전시되는 작은 모니터 속 영상을 통해 알 수

이어 옷장의 모양을 한 거대한 문을 열면, 관객이 지나가는 복도 앙쪽을 마치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왼쪽편에는 켈리백을 수집하고 각양각색의 에르미스 스카프가 가득한 이 방의 여주인의 소장품들이 보인다. 오른쪽 편은 스포츠광인듯한 그녀의 남편의 각종 스포츠용품 (물론 에르메스)들이 있다. 마치 홍해를 가르듯 반토막난 방은 커플이 말다툼을 한 듯 나눠져 있고 이를 암시하는 전기톱이 남자의 방 테이블 위 놓여있다. 부부싸움 후 전기톱으로 방을 갈랐다는 전제는 무시무시하지만, 사실 그 힌트 조차 은밀해 오히려 위트가 있다.


이 전시는 자세한 설명이 없다. 그냥 수수께끼와 같은 분위기와 힌트들만 있을 뿐.


샴페인 글라스를 엮어 만든 촛대, 느닷없이 나타난 우체통, 그 옆에 놓인 버지니아 울프가 "수신자"로 적혀진 편지 봉투, 까페에서 카드게임을 하다 자리를 막 떠난 듯한 테이블...


그런데 두고간 카드 게임을 하다 불현듯 자리를 뜬 것 같은 그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은 아마 화가였나보다. 그 화가가 쓰던 팔렛트가 (마치 유리구두 처럼 단서를 남기는 듯) 테이블에 놓여있다.

하지만 그냥 팔렛트만 남겼다면 재미없다.

물감 팔레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빨렛트 안의 파란색 물감속엔 2인치의 조그만 바다가 영상으로 펼쳐진다. 페인터의 눈에는 물감 파란색은 변화무쌍한 바다였나보다.  


이러한 오브제가 영상과 결합된 전시기법은 반복되어 재미를 더한다. 테니스채 모양의 엔틱 스타일의 약통 악세사리가 놓여진 테이블 위에 함께 놓여진 병을 들여다보면 테니스 코트가 영상으로 나타난다.


전시를 보고 Midnight in Paris를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 이다.


마네의 그림 <튈르리 정원의 음악> 도 생각난다. 내일 가서 봐야겠다.

http://iskaiart.com/press/auditorium-may-2013-manet-music-in-tuillerie-garden-written-by-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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