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비엔날레에 가는 이유 1
올해로 57회를 맞는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는 <아르떼 비바 아르떼 (Arte Viva Arte)>다. 직역하자면 “예술 만세, 만만세”라고 할까?
격년제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은 매회 바뀐다. 올해는 폼피듀센터에서 수석 큐레이터를 지낸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rcel)이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총감독으로 선정됐다. 지난 비엔날레에선 ‘최초 흑인 감독’이란 수식어로 세상을 놀라게 한 오쿠이 엔위저가 이목을 모았는데, 올해는 또 다른 최초가 등장하며 미술계에 큰 파란을 몰고온 것.
베니스 비엔날레에 관해 알만 한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 있다. 개막하기 전 3일은 ‘VIP/Press’ 오프닝 기간으로 미술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다 모인다는 것. 그래서 이때를 놓치지 않는 미술계 인사들도 많다. 미술계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이 기간은 어떤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순간이며, 명망 높은이들이 모이는 그 자리에서 어떤 인연을 만나 어떤 대화를 하게 될지 모른다. 그만큼 베네치아는 호텔비도 평소보다 훨씬 높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물론 미술계 스타와 개인 경 비행기를 타고 오는 세계 최고의 컬렉터들까지 붐빈다. 하지만 가장 놀랄만 한 사실은 뾰족 구두를 신고 택시에서 내리는 유명 인사가 아니라, 국가관 앞에 서 있는 긴 줄이다. 올해는 나이지리아 등 4개국이 새로이 참가하여 총 86개의 국가관이 선보인다. “미술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이유 중 하나가 전 세계의 최고 미술을 한 곳에 볼 수 있고, 각 국가관이 황금사자상이라는 소위 “금메달”을 위해 경쟁하기 때문이다. 국가관의 전시가 얼마나인기가 있는 지를 보는 척도가 국가관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관객 수와 대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라는 수식어를 등에 업은 마셀이 기획한 본 전시는 9개의 <파빌리온>으로 이뤄져 있었다. '예술가와 출판', '기쁨과 공포', '전통', '색체', '공유지대', '지구', '영매', '디오니소스', '시간과 영원'이라는 파빌리온으로 나눠짐은 관객이 보다 편안한 관람을 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웃음을 자아내는 작업도 많아서 현실에 대해 잠시 잊을 수 있을만큼 즐겁기도 했다. 마치 2년 전 나이지리아 출신 최초의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가 내세웠던 <모든 세계의 미래>전의 고발적인 정치 사회적인 전시에 반작용인 듯 '예술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마셀의 기획에 보는 이들은 덜 피곤할 지 모르지만 예술만을 위한 예술이 휴머니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금 마셀의 주장을 '안이하다' 비난하는 비평가도 많았다. 가디언지의 아디리언 실(Adrian Searl)은 이 시기에 그녀가 태평하게 ‘낮잠을 자고 일어났느냐’ 비꼬았고,뉴욕타임즈리뷰의 홀란드 커터(Holland Cotter)는 그녀의 큐레이팅이 현정서와 ‘out of sync’라 비난했다. 그도 그럴 듯이 보는 이들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섬과,브렉시트에 대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시리아 난민 문제는 전 유럽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관에서 이러한 시기성을 다루는 전시가 많았다. 언론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한 튀니지관의 작품은 인상적이었다. ‘The Absence of Paths’라는 아티스트 그룹이 작은 키오스크를 설치해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인주를 찍고 비자를 발행하는 관객 참여 형 작업었는데, 뻔한 형식이라 생각하며 비자를 신청한다고 하니 파란색 여권 모양의 책자에 손도장이 찍게 했다. '저쪽으로 가면 튀니지아 관이 있어요' 라는 설명을 들으며 무심코 연 여권에는 여러 내용이 담겨있었다. ‘320만사람들이 현재 난민의 상태’라는 믿기 힘든 사실부터 ‘독일여권은 176개국에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다’는 국가 권력에 대한 이야기까지. 보이지 않는 듯한 국권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이토록 무시무시하다니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론 필자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전시는 독일관의 작품들이었다.
안네 임호프 (Anne Imhof) 작업은 날카로운 이빨과 매서운 인상의 도베르만 두 마리가 철장에 둘러쌓인 전시장을 지키는 것을 보며 시작된다. 전시장에 들어가자 유리로 되어 있어 불안했다. 게다가 그 아래는 절대 일어설 수 없는 약 1미터 높이의 공간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 낮은 공간에 '갇혀있는' 퍼포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두운 표정의 그들은 기어다더니, 다른 통로로 나오기도 한다. 고개를 들면 5미터 보다 더 높아보이는 윗 층 난간과 같은 공간에 목줄을 맨 사람이 서있다. 위협적으로 혹은 위태하게 서있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것만 같았다. 가득찬 이 공간에 다른 방을 보면 상의 탈의한 여자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작은 방을 왔다 갔다 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 곳은 정신병원인가? 유리 바닥을 밟으며 다른 쪽으로 가보니 원래 벽과 문이 있었던 공간이 통 유리로 막혀져있고 그 유리 벽을 통해 감옥을 연상케 하는 작은 방 구조도 보인다. 여기서기괴한 상상을 했다. 갇혀 있는 건 그들인데, 나도 이곳에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누가 날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이 피해망상적 상상은 미술의 파빌리온일 수도, 어떤 기관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국가를 바라보는 개념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정신병을 앓고있는 것으로 보이는 퍼포머를보며 상상했다. “진짜 미친건 그일까? 혹시, 미쳐버린건 내가 아닐까?”
베니스라는 아름다운 도시에 2년에 한 번씩 모이는 수백명의 작가들의 작품 속 또 한번 길을 잃지만, 그리고 안이해 보일 수 있는 잠시의 도피를 혹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 보다 더 강한 충격을 주는 이 곳에 나는 올해 또 왔고, 다음에도 또 올 것이다.
김승민 큐레이터 (www.iskaiart.com 이스카이 아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