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자대에서 무슨 화생방 교육인가 하는 교육 시간이었다. 중대장의 서슬 퍼런 소리가 실내 교육장을 울렸다.
“이 줄 5열에 있는 병사”
“넷, 일병 000”
“눈에 힘이 없다, 썩은 동태 눈알처럼, 앞으로 나왔”
“넷”
그저 교육받으러 온 0 일병은 영문도 모르고 앞으로 불려 나왔다. 그리고는 중대장은 전 중대원을 향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0 일병은 교육받을 자세가 안 되었다. 눈에 힘이 빠진 병사는 0 일병처럼 오늘 교육을 받지 못한다.”라고.
실내 교육장에 모인 병사들의 긴장 상태는 아니 정확히 말해 눈을 부릅뜨고 교육에 집중하는 상태는 한층 엄숙해졌다. 중대장의 하이-톤의 목소리에 비례해서. 드디어 중대장은 교육장 분위기를 최대한도로 끌어올리려는 듯이 핏대를 세워 외쳐댔다.
“0 일병, 교육장 밖으로 나갔.”
마치 사극에서 전쟁을 앞에 두고 출정식 할 때 ‘기필코 싸워 이기자!’라고 전투를 독려하는 대장군의 목소리처럼.
중대장이 그날 회심의 마지막 스피치를 하던 순간, 0 일병은 기운이 빠져 낮은 목소리로 “넷….” 하고 교육장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정말로 눈에 투지가 없는 듯 처량한 모습으로. 중대장은 대원들을 한번 휘휘 둘러보고 흐뭇한 듯이 교육을 시작했다.
중대장이 교육에 집중시킬 수 있는 고요하면서도 엄숙한 상태 즉 숙연(肅然)한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으로 꽉 찬 순간, 쫓겨난 0 일병은 무슨 생각에 젖어 있었을까? 0 일병은 그 순간 ‘하필 왜 나만 지적을 당했을까?, 정말 눈에 힘이 안 들어갔을까?’라는 생각에 처량하고 씁쓸한 기분을 털어버리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나는 남들에게 눈에 힘이 없다고 지적을 받아서는 안 되겠다.‘, ‘싸우듯 그렇게 눈을 부릅뜨고 남들로부터 업신여김 받는 짓을 하지 않겠다.’ 등의 다짐을 하면서. 0 일병은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며 가뜩이나 고된 군대 생활을 더욱 힘들게 했다.
0 일병, 아니 나는 그날 이후로 눈에 힘을 주고, 하루도 편치 않게, 싸움하듯이, 긴장하면서 그렇게 생활했다. 그런 각박한 생활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제대하고 난 후 직장 생활에서도 삭막하고 메마른 나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직장에서 하루는 좋아하며 따르던 선배로부터 지나가는 말로 충고에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000 씨는 매사에 너무 긴장하면서 사는 것 같아, 좀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사는 것도 필요해.”라고. 나는 강한 스트라이크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작은 거울을 2개 사서 하나는 집 책상에, 하나는 사무실 책상에 두고 매일매일 나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반성했다. 여태껏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는 듯이 생생한 눈빛으로 부릅뜬 나의 모습은 내가 보아도, 정말 애꿎을 정도로, 많이 일그러졌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해 버려도 되는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살아왔다. 교육 분위기 조성을 위해 희생양을 고르던 중대장에게 그 병사는 아니 나는 재수 없게 그냥 찍힌 것뿐이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교육 분위기를 위해 희생양이 되었을 것이다. 눈의 힘 하고는 아무런 관계없이.
그렇지만 나는 ‘왜 눈이 썩은 동태 눈알처럼 힘이 없을까?’ 또는 ‘천분의 일의 확률이 하필 나에게 떨어지다니, 재수도 더럽게 없지.’하고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세상을 탓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교육장에서 쫓겨난 그 순간, 나는 하나뿐인 존귀한 자신을 무엇보다도 앞자리에 놓고 생각을 다스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를테면 ‘그래, 기막힌 기회구나, 교육장 밖에서 여유롭게 나를 살펴볼 절호의 기회를 얻었구나, 교육장 안에서 화생방 어쩌고 하는 교육을 안 받았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라면서 여유로움 속에 나를 놓아두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나는 교육을 받던 그 당시만 해도 전체를 위해서는 의당 하나는 희생될 수도 있다는 중대장의 논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군인 특유의 전체주의적 논리인데도. 또 ‘하나’를 존중하지 않는 중대장의 얄궂은 행동을 그냥 ‘그러려니’, 아니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그러나 나는 직장 선배의 조언 덕으로 책상용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뜯어보면서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마음을 고쳐먹는 것은 마음의 주인인 나에게 달렸다는 것을.
그때 이후로 나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볼 때마다 열도, 백도, 천도, 만도 ‘하나’가 출발점이 되었기에 존재할 수 있다고 확신하곤 했다. 또 ‘하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전체는 사상누각처럼 쉽게 무너진다고 ‘하나’ 즉 ‘내’가 귀한 존재임을 가슴으로 밝히며 드러내려 했다.
이제는 거울을 보면서 나는 존귀한 존재인 ‘하나’를 인정하지 않는 중대장의 몰가치적 군인정신을 껄껄거리며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전체를 위해서는 ‘하나’는 언제라도 마땅히 희생되어야 한다는 중대장의 생각을 곱씹어도 곱씹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