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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파노 Dec 08. 2022

섬뜩한 분위기는

하이델베르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직장을 다니면 보통 3년에 적게는 10번 많게는 20번 정도는 하이델베르크에 다녀와야만 한다.      

고국에서 손님이 오면 프랑크푸르트 인근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유명 지역을 보여주는 게 손님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두세 달에 한 번꼴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손님이 있는 게 보통이다. 나는 당시 차장이라 공적 손님은 아래 직원과 많이 가서 나한테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래도 내가 가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직장을 다닐 때는 주로 자동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일정 생기는 대로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러나 연수 시절에는 기차를 이용해서 다녔으므로 사람과의 접촉 기회가 많다 보니 자연 해프닝도 많았다.      


연수받던 시절에 하루는 집사람이 왔길래 하이델베르크를 보여주려고 뮌헨에서 아침 일찍 기차를 탔다. 하이델베르크는 강가 주변으로 발달한 시가지와 고색이 창연한 성채, 골목길 어귀에 있는 독특한 구성 미를 보이는 건물 등이 어우러져 사진을 어느 쪽으로 찍어도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특히 성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은 더욱 좋았다. 멀리 포도원 밭이 있고 철학자의 길이 희미하나마 보였다. 왜 포도원은 강가를 배경으로 경사진 곳에 되어 있을까? 누구는 배수가 잘되고 햇볕 받기가 좋아서라고 말한다. 누구는 독일의 일조량이 적어서 푸른 포도밖에 안 되고 그나마 푸른 포도를 잘 익게 하려면 강물에 반사되는 햇빛까지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게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토요일 날 아침에 서둘러서 뮌헨에서부터 왔으니 이제는 다시 뮌헨까지 가려면 5시 전후에 기차를 타야 늦지 않고 돌아갈 수 있었다. 기차역에서 대충 그 시각쯤이면 뮌헨 가는 기차가 왔었는데 기차는 올 기미가 없었다. 

     

한참은 기다리다가 역무원한테 물어보니 토요일이라 기차가 없다고 알려주었다. 또 슈투트가르트까지 가는 기차는 약간만 기다리면 온다고 했다. 토요일은 운행 기차 편수가 현격히 줄어든다는 사실을 깜박한 것이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하이델베르크는 주 철로에서 벗어난 지선 역이기 때문에 슈투트가르트 역까지 가서 뮌헨행 기차를 타던가 아니면 이곳에서 자고 가야만 했다.      


그때 마침 나와 같은 실수를 한 언뜻 보아서는 독일인 여성 같은 사람이 우리한테 다가왔다. 자기는 루마니아 사람인데 독일에서 8년간을 살았어도 이런 실수를 종종 한다고 말을 꺼냈다.      

그 루마니아 여자도 뮌헨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리고는 슈투트가르트까지 가서 뮌헨행 기차를 탈 수밖에 없다며 우리 일행을 만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또 자기는 뮌헨에서 대학 강사로 있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우리는 슈투트가르트를 가는 기차를 기다려 타고 갔다. 문제는 슈투트가르트 역이었다. 날은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렸는데 슈투트가르트 역에서 보니 뮌헨 가는 기차는 2시간 정도 기다리어야 했다.      


역 주변은 마약 환자들이 어슬렁거려 위험하기까지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마약 환자 한 사람이 나의 일행 곁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루마니아 여성이 얼른 일어나 간이 커피숍에 같이 가자고 우리를 끌고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난처한 일을 모면했다.      

커피를 같이 마시면서 루마니아 여성이 말했다. 아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어야 시비를 걸지 않는다며 기차 승무원이든 역 관리원이든 붙잡고 대화해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불빛도 희미한 역 구내 대합실은 마약에 찌든 모습으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차가 도착하는 승강장에도 마약 환자들이 어슬렁대고 있었다. 마치 하이에나가 사냥 대상을 정해놓고 빙빙 주변을 도는 것 같아 기분이 섬뜩했다.      


나와 집사람 그리고 루마니아 여성은 이제 막 역에 도착한 기차 기관사와 말을 하기도 하고 떠나려는 기차의 승무원과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다행히 뮌헨 가는 기차가 정시에 들어왔으며 기차를 타서야 안심이 되었다. 돌아보건대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기 힘든 마약 환자들이 풍기는 묘한 기괴함과 그들에 대한 선입견이 분위기를 섬뜩하게 만든 것 같다.     


나중에 근무하면서 안 일이지만 독일 치안 당국에서는 마약 환자들에게 기차역이나 공원 등지를 공공연하게 그들의 거주지로 인정해주고 대신 말썽이 없도록 집중 관리를 한다고 한다.     

독일에서 근무하면서 마약 환자들을 자주 보니까 도쿄나 서울에 있는 집 없는 노숙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 곁을 지나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긴장한 가운데 지나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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