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단어에 빠져들었던 시절

by 스테파노

‘⌜부상(扶桑)⌟이란 단어를 아십니까?’

라고 물으면 사람들 대부분은 모른다고 답할 것이다.


모르는 게 정상이다.

또 모르는 것이 하나 이상할 리가 없다.

오히려 아는 것이 이상하다.


사전의 구석 벽진 데에 있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중학교에 다닐 때

⌜부상(扶桑)⌟이란 단어를 신줏단지처럼 모시듯 했다.


책상 위에 부상이란 단어를 붙여 놓고

나 혼자만이 있는 포근한 세상으로

어려울 때면 늘 그곳에 피해 있었다.


⌜부상(扶桑)⌟이란 단어는

나만의 피안(彼岸)의 세상이었다.


피안의 세상!

‘피안’은 사전의 의미로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으로 생각해 낸 현실 밖의 세계’라는 뜻이다.


부상은 어쩌면 사전에 나오는 피안이란 단어 설명에 꼭 맞게

현실을 피하는 나만의 단어이었다.


나는 부상이라는 단어를

지금은 오래전 이야기라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무슨 책인가 읽다가 발견하였다.


사전을 찾아보니 뜻이 괜찮아

부상이란 단어에 푹 빠져들었다.


부상의 사전적 의미는

‘동쪽 바다의 해가 뜨는 곳에 있다는 신령스러운 나무

또는 그 나무가 있다는 곳‘이다.


왜 부상이란 단어를 좋아했을까?

그때는 중학교에 다닌다고 가족과 떠나 인근 도시에서

홀로 유학했을 때였다.


친척 집이라 하지만 왠지 불편하였다.

마음 붙일 것도 없어서

나만의 이상향을 꿈꾸며

그런 세상을 찾고 있었고 또 몹시 동경했었다.


반찬의 차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설움을

한 밥상에서 당하면서

차별이란 단어가 가지는 서러운 면을

몸으로 진하게 느낄 때이다.


그러던 중 책을 보다가 ’ 부상‘이란 단어를 보면서

나는 마음의 지표이자 내 마음이 가 있는 곳을

상징하는 단어로 여겼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이 아는 상상의 땅!


신령스러운 나무가 있고

그래서 더욱 신령스러운 땅으로

마음속으로 지향하는 피안의 세상으로는

그보다 나은 것이 없었다.


한동안 부상이란 단어를 책상 앞에 써놓고

나만의 해가 뜨는 곳,

나만의 신령한 나무가 있는 곳을

상상으로 그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내 마음이 편안하고

신령한 기를 받아 내 마음이 더 높은 곳을 향해

용솟음치는 기분을 나 혼자 느끼면서

그곳으로 피해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헤르만 헷세에 푹 빠져들었다.

스스로 노력으로 꿈은 가꾸어진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부상이라는 허망한 세상과 작별하였다.


새알의 껍질을 내 힘으로 스스로 깰 때

새 세상은 열린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또 부상이란 허망한 곳에서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알면서.


여하튼 나는 중국의 전설 나부랭이를 껴안고

한동안 피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피안의 세계로서는 그보다 좋은 것이 없으나

망상의 세계임을 알고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지금도 이따금 부상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나는 ’왜 그 시절 허망한 단어에 심취해 있었는가?‘

를 생각하면서.


또 내 마음속에 ’ 부상‘이란 이상향을 꿈꾸는,

그런 세상에 몸을 맡기는 이상한 속성이

내 몸 기저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하면서.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직장 생활할 때도

춘풍도(2022년 10월 10일, 브런치 글 내용 참조) 방을 마련해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장소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상향을 그리는 성향이

마치 DNA처럼 내 안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성향을 심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그런들 어쩌겠나?

그런 성향이 몸속에 흐른다고 몸을 부정할 수도 없으니.

그저 긍정적인 방향으로,

좋은 방향으로 나를 키운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극기(克己)⌟란 용어를 붙잡으면서

부상이란 피안의 세상에서 탈출했듯이,

이상향을 그리는 성향에 빠지다가도

또 새로운 단어를 붙잡고 탈출하면서

그렇게 생을 가꾸는 수밖에.

이전 11화화살처럼 빠른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