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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파니 Apr 13. 2024

포르투 대성당에서 시절인연에 대해 생각하다

40일간의 배낭여행 열한 번째 행선지

1. 어느새 40일간의 여행도 끝이 보이고 있었다. 끝에서 두 번째 종착역은 포르투. 혼자 하는 배낭여행이지만 이번 여행지에선 특별히 친구들이 합류하기로 했다. 


보스턴이 집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역시 사람들 덕분이었다. 가족처럼 여겨지는 사람들이 그곳엔 있었고 그중 한 명이 A와 J였다. '그들의 출신인 파리를 증명이라도 하듯 가벼운 불평은 그들의 취미였고 패션과 술과 음악이 그들의 주식이었다.'라고 멋지게 포장하고 싶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재수는 좀 없어도 알고 보면 술 잘 마시고 착한 애들이라는 기막힌 공통점으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을 거다. 


포르투는 A가 1년 정도 에라스뮈스(범 유럽 교환학생 제도)를 했던 도시였다. 보스턴에 있을 때도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마다 “뭐 예쁘긴 한데, 그래도 포르투보단 아니지”라는 말을 달고 살던 A를 보면서 포르투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보스턴에서 내가 유럽여행 계획을 말하고 다니며 유럽에서 온 친구들에게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A는 포르투의 풍경, 예쁜 상점, 맛있는 패스츄리샵과 와인바를 친절히 구글맵에 찍어줬고 그것도 모자라 이렇게 말했다. “너 언제부터 언제까지 포르투에 있을 거라고? 그때 나도 갈래.” 사실 나를 핑계로 포르투에 다시 가고 싶었던 것 같지만, 동행자를 구하게 되어-그것도 함께 있으면 너무나 즐거운-나는 너무 기뻤다.


사실 인스타엔 좋은 모습만 올라갔지만 A와 나는 포르투에서 속된 말로 뒤지게 싸웠다. A는 포르투를 아주 잘 알았고, 나는 포르투가 처음인, 포르투에서 14시간 떨어진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었다. A는 로컬들이 가는 ‘히든젬’을 고집했고, 나는 관광객들이 가는 뻔한 관광지-예를 들어 해리포터 기숙사의 모티브가 된 렐루서점이라든가, 아줄레주 타일이 온 벽을 수놓은 오래된 기차역이라든가-도 가보고 싶었다. 렐루서점 앞에 늘어선 긴 줄을 보고 그는 본인이 가봐서 아는데, 진짜 별거 없고 시간 낭비라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날 혼자라도 가려고 다시 그 서점을 찾았지만 공교롭게도 딱 그날부터  일주일 휴업에 들어갔다.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언니가 추천해 준 강가 와인바를 꼭 가보고 싶어 “여기 어때?” 라며 애들에게 구글맵을 보여줬고 친애하는 내 친구는 딱 한마디 했다. “touristy.”


아마 친구는 내게 관광객은 쉽게 하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아는척하는 걸 좋아했고 그런 점 덕분에 우리는 매번 정말 다양한 주제로 많은 토론과 대화를 나누곤 했기에 그 점은 전혀 싫거나 낯설지 않았다. 친구가 데려간 로컬 바와 음식점 역시 정말 훌륭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과 달리 관광객이었고, 그 지점에서 자주 부딪쳤다. 중간에 낀 J만 진땀을 흘렸다.




여기에 인종차별까지 더해졌다. 어디든 그렇겠지만 대도시일수록 인종이 다양해 비교적 인종차별이 덜하고, 소도시일수록 ‘이방인성’이 강해진다. 특히 뉴욕, 보스턴 같은 리버럴 다인종 사회에 있다가 유럽으로 넘어왔을 때 그 점을 더 자주 느꼈다. 이곳에선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꽤 쉽게 자각할 수 있었다. 뉴욕보다 파리에서 더, 바르셀로나보다 포르투에서 더. 


인종차별은 자기 검열의 시작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대놓고 ‘고백투유어컨트리 유옐로몽키’라고 면전에 소리 지르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게 인종차별인가 의심하게 되는 기분 나쁜 마이크로 어그레션은 한국 밖을 나가는 순간 쉽게 겪을 수 있다. 점원의 묘하게 불퉁한 태도에 ‘아니야, 내가 예민한 걸 거야. 저 사람은 그냥 오늘 별로인 하루를 보내고 있나 보지’,라고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려 하지만 내 뒤의 백인에겐 한없이 햇살 같은 미소를 보내는 걸 목격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그런 거. 내가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인종차별이 맞다.


길을 걸을 때 나에게만 온갖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로 말을 걸려는 사람들이 포르투엔 있었고, 친구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이 정말 몰라서 그래, 그냥 너에게 인사를 하고 싶은 것뿐인걸. 그냥 알려주면 돼. 


아무리 스몰톡이 일상화된 서구권이라고 해도 보통 지나가는 사람들 굳이 불러 세워서 ‘안녕’ 하지 않는다. 아시안 젊은 여자는 만만하니까, 심심한데 말이나 좀 걸어볼까라고 생각하는 거다. 백인은 평생 겪을 일 없는 그런 일들. 더군다나 난 선생님이 아니다. 내가 왜 무례에 친절한 가르침으로 대응해야 하는 거지? 


걸으면서 셀 수 없이 니하오를 들었다. 


사실 별 말 같지도 않은 이런 일들에 기분이 상해 하루를 망쳤다라든가, 역시 한국이 제일 좋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웃기게도 난 혼자 걸을 땐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을 끼고 있어 그들이 뭐라 하든 잘 들리지도 않고, 일일이 신경 쓰면 타지에서 살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들린다고 하더라도 크게 마음 쓰진 않는다. 하지만 나를 무력하게 한 것은 생판 모르는 타인의 니하오보단 나를 이해할 수 없어하는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난 니하오에 보통 가운뎃손가락으로 대꾸했고, 친구는 내가 과민반응 한다고 생각했다. 인사에 욕으로 응하다니, 너네 동방예의지국 아니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고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난 선생님이 아니기에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야 백인들… 그냥 조용히 해'로 대꾸할 뿐.


너무도 사랑하는 친구지만 불쑥불쑥 드는 양가감정을 포르투에선 정말 어쩔 줄을 몰랐고 보스턴에선 그런 일이 일어난 적도, 일어날 수도 없었기에 이전에는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는게 우리의 변명이었다. 기분 좋게 여행까지 와서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 끝이 안 좋게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 마저도 이 여정과 우정의 일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모로 공원의 노을과 버스킹


2. 우여곡절 많았던 포르투지만 그만큼 즐거운 일도 많았다. 리스본에서 절친한 친구가 된 A가 포르투로 넘어와 우리는 다 같이 상주앙 축제에 갔고, 잔디밭에서 와인과 모히또 그리고 맥주를 들이키며 노을을 바라봤던 순간은 여전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포르투를 결국 ‘그래도 정말 즐거웠던 곳’으로 만들어준 결정적인 이유는 친구들과 잠시 떨어져 혼자 다닌 마지막 날 갔던 장소와 만났던 사람들 덕분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혼자만의 시간에, 우선 가고 싶던 빈티지샵들에서 쇼핑을 하고 (포르투 빈티지샵들 컬렉션이 정말 좋다!), 갑자기 아시안 음식이 먹고 싶어 쌀국숫집에 갔다. 

점원은 열다섯 쯤 되어 보이는 앳된 베트남 소녀였는데, 지금까지 내가 본 서버 중에 가장 친절하고 살가워 마치 아는 동생 같았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질문에 한국이라고 대답하자 너무너무 좋아하던 귀여운 친구를 뒤로하고 이것저것 쓸어 담아 엉망이 된 가방을 대충 정리하고 쌀국수를 먹고 있는데, 짐정리하느라 테이블에 올려둔 책을 보고 누군가 말을 걸었다.


그 책은 <Crying in H Mart>였다. 전 세계적으로 화제였던 한국계 미국인 미셸 자우너의 에세이로, 한국에도 번역되어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표지를 보고 나에게 말을 건 사람들은 이스라엘 뮤지션 커플이었다. 포르투에 여행을 와 아름다운 도시에 반해 쭉 여기서 살고 있는 이 붙임성 좋은 사람들은 나에게 한국인이냐고 물었고, 우리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민 2세대로서 엄마와의 갈등,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모국과 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인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에는 한국음식이 번역 없이 그대로 써져 있는데, 이 때문에 음식 이름이 나올 때마다 구글에 하나씩 쳐보느라 다 읽는데 오래 꽤 걸렸다며 그들은 머쓱하게 웃었다. 여행 중에 만난 아시안 친구들은 이미 애진작에 다들 읽었기 때문에 책을 들고 다닐 때마다 그들과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매우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우연히 좋은 기회로 한국인 디아스포라 그리고 잡채와 설렁탕에 대해 비아시안과 이야기하는 경험도 매우 새로웠다. 


가게를 나와 다음으로 향했던 플리마켓에서도, 아는 언니의 추천으로 갔던 작은 카페에서도, 날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사람들이었다. 결국 이번 여행의 테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사람 때문에 힘들고 스트레스받지만 날 웃게 하는 것 역시 사람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진리에 굴복하며 난 숙소로 향했고, A,J와 포르투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함께했다. 몇 달 동안 매일 봐왔기 때문에 서로가 익숙했던 탓인지 작별인사를 하는 그 순간에도 마지막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일 년이 조금 지난 지금 돌아보면 후회가 많이 남는다. 비록 돌아가도 우리는 여전히 자주 싸우고 하루가 멀다 하고 삐져대겠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법을 비롯하여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준 친구가 요즘 정말 보고 싶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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