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 소리야?
군대 시절.
자유 시간에 할 일이 없으니 내무반 끝 쪽에 있던 책장의 책들을 모조리 읽은 적이 있다. 아마도 100권 정도 되는 걸로 기억하는데, 그중의 절반 이상이 자기계발서였다. 그런데, 주제는 달라도 마치 깔때기와 같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저자들의 공통된 메시지는 바로 '관점을 바꾸라'였다. 너무나도 심심했던 시절이었기에 결국 다 읽어내고 말았지만, 입으로는 '또 그 소리야?'를 계속해서 읊조렸던 기억이 난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이 아니었다만 나는 애진작 책을 덮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차오르면 차오를수록,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거나, 멘토링을 할 때에도 그러한 메시지를 전한다. 꼰대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옛 시절 책을 덮어버릴 충동을 느꼈던 것처럼, 누군가도 나의 조언에 귀를 닫았다가 언젠간 깨닫게 될 것이다.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답이 나오지 않을 땐, 질문을 바꾸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곧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시점을 알려주는 순간이다. 그렇게 해서 삶의 어려움을 많이도 헤쳐왔다.
관점을 바꾸란 말은 무조건 모든 걸 부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것도 잘못된 건 아니다. 그것을 깨부수거나 뒤로 숨기라는 것이 아니라, 넓혀야 한다는 말이다.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말은 반발심을 얻기 딱 좋지만, 실제 상황이나 문제를 접하고 문제를 경험한 사람들의 깨달음의 끝엔 항상 그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직장에서 못된 상사를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상사를 바꾸거나, 그렇지 못한다면 나를 바꾸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해서,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거나 내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데 어느 쪽이 쉬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결국, 내가 바뀌어야 상황이 바뀔 가능성이 더 높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자신도 모르게 보지 못하는 것도 많다.
"고릴라 보셨어요?"
"네? 뭐라고요?"
1997년 하버드대의 젊은 심리학자 두 명은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으로 유명세를 탔다.
'사람은 자신이 보려 하는 것만 본다'는 명제를 실험을 통해 간단하고도 명쾌하게 증명해낸 것이다. 이 실험은 인지심리학의 대표적인 실험이 되었고, 이 실험을 설계한 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는 각각 유명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실험은 한 영상과 함께 진행되었는데, 그 영상은 1분 여 정도였다.
영상에는 몇몇 사람들이 농구공을 주고받고 있었고, 실험자는 피실험자에게 동영상을 주의해서 보고 공중으로 넘긴 패스와 바운드 패스 횟수를 세라고 했다. 동영상 중간에는 고릴라 의상을 입은 여학생이 약 9초에 걸쳐 무대 중앙으로 걸어와 선수들 가운데 멈춰서 카메라를 향해 가슴을 치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패스 횟수를 묻는 질문에는 맞는 답이든 틀린 답이든 모두 대답하던 사람들이, 고릴라가 봤냐는 질문엔 절반밖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절반은 아예 고릴라의 존재를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이러한 인지 오류를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 하는데, 기대하지 못한 사물에 대한 주의력 부족을 말한다. 실험 대상자들은 패스 횟수를 세는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 특이한 의상과 맥락에 맞지 않는 움직임에는 눈이 먼 것이다.
예전엔 이와 같은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한 적도 있다.
내비게이션 기술이 초기였을 때였는데, 한 번은 내비게이션이 이상한 길을 알려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는 맹신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정말 가파른 계단이 있는 곳으로 추락할 뻔한 적이 있다. 분명 내가 설정한 목적지와는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고, 차가 지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길이 연속해 나왔었는데도 그 길안내가 맞을 거라며 의심을 저버린 것이다.
나는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는가?
나는 나를 믿을 수 있는가?
나는 의대가 아니라 심리학 공부를 하러 왔는데, 눈의 구조에 대해 달달달 외운 적이 있다.
'지각심리학' 시간이었다. '지각심리'는 사람이 감각 기관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는 작용에 대해 연구한다. 그렇게 받아들인 정보를 주관적 측면을 고려하여 어떻게 해석을 해내고 반응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인지심리학'이 담당한다. 학부생일 때는 그 둘의 관계를 잘 몰랐고, 그저 감각기관의 명칭을 암기하는 것이 곤욕스러웠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인이 되어 나이를 먹어가니 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우리네 존재는 감각기관을 통해 얻은 정보를 순식간에 자동적으로 해석하여 인지하고 반응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란 말은, 이런 '지각심리'와 '인지심리'의 관계를 간결하게 설명해주는 속담이다. 즉, 눈으로 솥뚜껑을 보고는 예전에 자라를 보고 놀랐던 경험을 끄집어내어 자동적으로 반응한 것. 종내에는 자신을 지키려는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무주의 맹시' 즉, 주의력 착각은 우리가 흔히 겪고 있는 일이다.
이런 우리를 스스로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보는 것들이 과연 사실일까? 나는 모든 것을 인지하고 있고, 놓치는 것이 없으며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네온사인은 전구의 합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서 메시지를 읽는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물 흐르듯이 흐르는 그 글자들은 착각일지 모른다. 전구 하나하나의 켜짐과 꺼짐의 반복일 뿐인데, 우리는 기어이 무언가를 읽어 낸다.
주의력 착각은 우리가 모든 것을 실제로 보고 있다는 착각을 줄여야 한다는 걸 알려 준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좀 더 넓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느 한 번은 시간을 내어 잠시 그저 흘러가는 일상을 잠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좋다. 내가 본 것이 맞는지, 나는 다 봤는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내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인지, 알고 있는 지식이 그 어떤 상황에도 통용되는지, 원인을 넘겨짚지는 않았는지, 뭉뜬 긍정감으로 미래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낙관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닌지 등.
영화 메트릭스의 앤더슨(키아누 리브스)은 자신이 네오(메시아)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마침내 앤더슨이 네오로 거듭날 때를 돌이켜보면, 그것은 그가 '관점'을 바꿀 때 일어난 일이다. 즉, 현실이 가상이란 것을 깨닫고는 그곳에서 날아올랐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만든 세상은 우리의 사고의 과정이다. 생각을 바꾸지 않고는 바꿀 수 없다."라고 말했다.
현실과 세상 그리고 우리 주위의 모든 상황은,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필터에 따라 왜곡되거나 재해석된다. 우리의 기억, 경험, 기분, 감정, 심리 등.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먼저 해석해야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할지를 알 수 있다. 주관적 관점에 머물러서는 나를 지킬 정확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세상과 타인을 보는 방법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황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재빨리 알아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관점을 (지겹도록)바꿔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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