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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03. 2019

'다름'과 '틀림'

나도 누군가에겐 '다름'이고 '틀림'이란다.

'다름'과 '틀림'에 대하여


아빠는 상대방이 말할 때,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여 사용하는지 유심히 보는 편이야.

그것들을 적절하게 사용하는지에 관심이 많아. '다름'과 '틀림'은 그 뜻이 확연히 같지 않은데, '틀림'으로 통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 사과와 배는 '틀리다'로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 사과와 배는 '다른 것'이거든. 그 둘은 틀리고 말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란다. 한두 번 실수는 아빠도 가끔 하지만, 그것을 '틀리다'로 말하는 사람들은 꽤 꾸준하곤 해.


우리 사회는 '다름'을 용인하는데 인색한 문화야.

물론, 시대가 변하고 세대와 문화가 많이 바뀌면서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집단 무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아. 예로부터 침략에 노출된 우리나라의 운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결집'하게 했고, 그것은 '집단주의'를 이루게 되는 원인이 되었어. 외세에 집단으로 대항하며 살아남았고, 품앗이를 하며 서로 도왔단다. 그러면서 '개인주의'는 상대적으로 악(惡)이 되었어. 남들과 다르면 이상한 것, 무례한 것, 틀린 것이 된 거야.


지금 시대는 과도기인 것 같아.

'집단주의'라는 피를 안고 태어났지만, '개인주의' 시대가 열렸는데 그 둘이 어설프게 얽히고설켜 사회는 물론 세대적인 충돌도 많이 만들어 내고 있거든.


어찌 되었건, '다름'과 '틀림'을 적절하게 사용하는지 주의를 기울이고 유심히 봐야 하는 이유는, 두 단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른 것'을 '틀리게'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야.


다른 것을 틀리게 보기 시작하면 갈등은 증폭돼.

너희는 자라면서 점점 '집단'에 속하게 될 거야. 싫든 좋든 말이야.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거든. 일을 할 수도 없고. 그럼에도 각 개인을 존중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지내야 한단다. 이런 특수한 상황 속에서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면 주위는 힘들고 혼란스럽게 돼. 물론, 아빠는 너희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거고.


나와 다르다고 남을 틀리다고 규정하는 사람은,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모르는 거야.

아빠의 생각엔 대부분은 그것을 '모르는 쪽'이 많은 것 같아. '부정하는 사람'이라면,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알면서도 일부러 '틀리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일 거고. 이런 사람이라면 나쁜 사람이지만,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란다. 스스로 알지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다른 것은 틀리다고 말하며, 상대를 그렇게 규정해버린다고 생각하면 무시무시하기도 해. 그 어떤 설명이나 논리도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문득, 아빠 또한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않는 사람들을 '틀리다'라고 규정짓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들은 나와 표현을 달리 한 것뿐인데, 나조차도 무조건 그들은 틀렸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야. 또한, 때로는 정말 달라서 틀린 경우도 있어. 다르다는 것이 '개성'을 표방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그 '다름'도 틀린 것이 될 수 있으니까.


당장, 사용하는 단어를 가지고 누군가를 재단하기보단 스스로 '다름'과 '틀림'을 잘 구분하고 있는지 돌아봤으면 해. 


나는 누군가에게 다를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으니.

꼭 명심하렴.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거나, 다른 사람들을 쉽사리 판단하는 오만을 범하지 않도록. 


그래서, 너희의 삶에 대한 시선이 좀 더 지혜로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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