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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29. 2019

잃어버린 온기를 찾아서

사물의 활력: 국밥의 따스함

국밥에는 따스함이 있어요


온 국민을 감동시킨 한 마디.

일명 인천 장발장 사건으로 불리는, 부자(父子)가 마트에서 생필품을 훔치려다 걸린 사건을 맡았던 경찰관의 한 마디가 전파를 탔다. 전파를 탄 것은 그의 말뿐이 아니었다. 그 마음과 말 자체에 담긴 온도도 함께였다. 사람들은 그 방송을 보며 따스함을 느꼈다. 요즘 세상에도 밥을 굶는 사람이 있느냐며 말끝을 흐리고는 눈물을 훔치는 그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뭉클하게 했다. 극악무도한 뉴스들 틈에서 피어오른, 작은 희망이자 감동이었다.


경찰관은 부자를 훈방 조치하고는 바로 국밥을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년 형사 생활에서 얻은 교훈 때문. 국밥에는 '따스함'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1999년 수사 특채 경장으로 경찰에 입문한 그는 선배들과 먹었던 국밥, 수사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범인들에게 국밥을 사주며 다독이며 보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국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면 범인들도 속에 있는 것들을 다 털어놓는 것을 보며 깨달은 것도 많다고 했다.


잃어버린 온기


사람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는 물심양면 후원을 했다.

더불어, 아직은 인정이 있고 세상 살만하다는 반응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한 편으로 나는, 사라져 가는 '온기'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 부자는 잃어버린 온기 사이를 비집고 나온 하나의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일이 없었다면 그 누구도 그 부자의, 온기가 없는 추운 삶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빈부격차와 소외, 그리고 복지의 사각지대라는 현상들로 이미 낮아진 그 냉골 바닥을.


체온이 1도 낮아지면 면역력은 30% 감소한다.

추위에 장시간 노출되거나, 극도의 긴장을 하면 체온이 낮아질 수 있다. 이러한 온기를 잃어가는 과정을 겪으면 누구든 약해지기 마련이다. 더불어 그것은 큰 두려움이 된다. 생물학적 온기가 삶과 생명에 중요하듯, 사회학적 온기도 중요하다. 세상의 '온기'가 없어지는 이유다. 삶이 팍팍하고,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으니, 제 '온기'를 먼저 챙겨야 하는 세상. 나누어줄 온기가 없는, 여유 없이 돌아가는 우리네 삶이 가장 큰 원인인 시대다.


온기를 떠올리게 하는 국밥


그런 의미에서 나는 국밥에게 경의를 표한다.

자꾸만 잃어가는 우리네의 온기를 떠올리라고 일깨우기 때문이다. 보글보글한 국밥 그릇은 보기만 해도 정겹다. 국밥 앞에 앉은 사람은 겸허해진다. 몸과 마음이 따뜻해질 채비를 하는 것이다. 허기진 속은 물론이고, 무언가 답답하게 얹혔던 것들이 뜨거운 국물과 함께 내려가는, 역설적으로 시원한 쾌감은 삶의 낙이다. 고개를 들고나면 송골송골 맺히는 땀은 이제껏 우리가 얼마나 힘겹게 달려왔는가를 알아주는 위로의 표상이다.


국밥은 태생 자체가 많은 사람을 위한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고기를,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한 데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밥은 어쩌면 인내의 결과물이다. 작은 것을 장시간 고아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으니까. 더불어 국밥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서민들의 애환을 담았으니, 진입장벽이 낮다. 후딱 먹고 다시 일터로 향해야 하는 서민들에게는 최적의 음식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밥은 우리의 체온을 높인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날, 꼭 겨울이 아니더라도 감기로 몸을 움츠리거나 심지어는 마음이 추울 때에도 우리는 국물을 떠올린다. 체온이 1도 낮아지면 면역력은 30% 감소한다고 했으나, 반대로 체온이 1도 높아지면 면역력은 500%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의학 학술지 랜싯은 13개국 7,400만 명의 사망 원인을 분석하여 더위로 인한 사망률(0.42%)보다 추위로 인한 사망률(7.29%)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우리에겐 따스함과 온기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국밥의 매력은 '생물학적 온기'와 '사회학적 온기'를 모두 충족한다는데 있다.

국물과 함께 따뜻해지고, 밥과 함께 든든해진 몸은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온기를 가진 마음을 가능하게 한다. 이미 따뜻한 마음을 가진 경찰관이 떠올린 국밥은, 어쩌면 당연한 '온기의 산출물'이 아닐까란 생각이다. 우리는 '온기'의 존재와 중요성을 자주 잊는다. 차갑고 메마른 세상에 익숙한 우리는 그래서 항상 몸과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우리는 항온 동물이다.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면 죽는다.


그러니 혹시라도 몸과 마음이 춥다면, 내가 너무 냉철해진 것 같다면,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하고 싶다면.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한 숟갈 떠보면 어떨까....라고 삶에 지쳐 어리석은, 온기를 잃어 차가워진 우리에게 국밥은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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