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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05. 2020

곧 시들어버릴 것들에 대하여

마음의 경박함이 한없이 개탄스럽다.

만개한 꽃을 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동네의 가로수에서였다. 그것은 사람들의 걸음을 멈춘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연인들은 그 아래에서 기어이 포개어진다. 남녀노소는 카메라 버튼을 누른다. 행동은 마음의 결과물 아니던가. 꽃을 보고 사람들의 마음은 요동한 것이다. 


어수선한 시절에 시위하듯 피어난 꽃들은 더 아름답다. 

용을 쓰며 지나치게 빛나고 있는 꽃을 보고 있자니, 갑작스레 조급함이 밀려온다.


"꽃이 금방 지겠네."


아름다움은 잠시, 어느새 난 시들어버릴 것에 대해 생각하고 만다.


중천에 떠오른 해는 곧 시들어 밤이 된다.

인생의 황금기를 지난 우리는 노쇠한다. 맛있는 것을 처음 입에 물었을 때 행복감은 치솟고, 어느 지점에서 그것은 시들어 과하게 배부른 불쾌감으로 변질된다. 어떠한 일을 처음 할 때의 열정은 피어오르고, 반복되는 시점에 그것은 매너리즘으로 시들어버린다. 사랑의 초기는 브레이크 없는 진군이지만, 이내 곧 만개한 꽃과 같이 시들어 흐트러진다.


시든다는 건 처절한 일이다.

물기가 없고 기운이 없다. 약해지고 초라해지는 과정이다. 혹자는 말한다. 그것은 다시 시작하기 위한 시듦이라고. 만개한 순간, 무언가의 절정은 짧기에 소중하고 더 아름답다고. 의미 있는 말이자, 습관적 합리화다. 그저 계속 빛나고, 그저 계속 아름다울 순 없을까.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섭리에 동의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내년에도 어김없이 꽃은 다시 만개할 것이다.

그 아래에서 연인들은 다시 포개어질 것이고, 나를 포함한 남녀노소는 또 주섬주섬 휴대폰 카메라를 켤 것이다. 그것 하나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처럼. 시들어 버리는 것에 불만은 애초부터 없던 것처럼.


마음의 경박함이 한없이 개탄스럽다.

그러나, 우리를 설계한 그 어떤 존재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도, 불평도, 의문도 이내 곧 시들어 버릴 것이란 걸. 


꽃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 섭리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단 걸.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선택!)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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