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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12. 2020

삶이 유난스러울 때가 있다.

결국 흔들리려는 나를 붙잡아야 한다.

- 지랄 -
마구 어수선하게 떠들거나
함부로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


삶이 유난스러울 때가 있다.

유난함(보통과 매우 다름)은 대개 지랄 맞음이 원인이다. 삶이 마구 어수선하게 떠들고, 함부로 분별없이 나를 대하는 그때. 되는 건 하나 없는데 나아지는 건 없고, 세상은 덤비는데 나는 무방비일 때. 그럴 때 삶은 고달프고 버겁다. 그 고달픔과 버거움은 물리적 무게를 뚫고 기어이 마음으로 들어와 영혼으로까지 뻗치는데, 그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해서 내 안의 온 우주를 흔든다.


내 안의 우주는 그렇게 어수선한데, 주변은 고요하다.

나만이 고독한 그 시간은 깨어있음이 서글프다. 차라리 눈을 감고, 모든 것을 잊고 잠들고 싶지만 어쩐지 또렷해지는 정신은 얄궂은 운명이다. 깨어 있어야 할 때 아둔하고, 우둔해야 할 때 또렷함은 누구의 탓이어야 하는가.


개에게 돌을 던지면 돌을 따라가고, 사자에게 돌을 던지면 돌을 던진 상대를 주시한다.

삶은 내게 돌을 던졌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봐야 하는가. 그것은 선택이다. 삶은 언제나 내게 선택이란 돌을 던진다. 던져진 돌을 따라가느냐, 던진 삶을 노려보느냐. 그 사이의 선택은 쉬운 것이 아니어서, 갈팡질팡 하는 나를 보며 삶은 시시덕거린다.


나는 무엇을 선택해도 마음이 개운치 않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후회하는 게 삶이니까. 삶이 던진 돌은 그러니까 곧 함정이다. 돌에 연연하던 나는 둘 중 하나가 아닌, 다른 선택지도 있음을 깨닫는다.


무얼 선택해야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것이 중요하다는 또 다른 선택.

삶과, 삶이 던진 돌 사이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내 마음을 돌아본다.


광활한 우주가 있다.

우주와 내 영혼, 그리고 마음은 연결되어 있고 고달프고 버거운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며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쉰다. 아, 그 무게와 버거움의 크기는 이 정도였구나. 지랄 맞던 유난함에, 나 또한 그러하지 않았는지를 돌아본다. 삶이 내게 그런다고, 나 또한 어수선하게 떠들거나 함부로 분별없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삶이 유난하다고, 나 또한 지랄 맞아버리면 그 둘의 흔들림은 공명이 되고 세상은 요동한다.

그리고, 그 요동함에 있어서 더 흔들리는 건 나 자신이란 걸, 나는 잘 안다.


살아내는 것은.

그러니까 삶이 던진 돌을 정신없이 쫓다가, 던진 삶을 노려보다가 결국 흔들리려는 나를 붙잡는 일의 연속이다.


삶이 지랄 맞아 유난스러울 때마다, 시선을 내 중심으로 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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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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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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