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구 위의 모든 나라 2. 사물이나 현상의 일정한 범위나 분야 3. 사상이나 심리적 생활 현상의 한정된 어떤 영역
- 어학 사전 -
그 어떤 삶의 경계
'세계'는 넓은 어떤 개념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상 그 뜻은 매우 한정적입니다.
원뜻을 살펴보면 그 안에 '경계'란 뜻이 있기 때문이죠. 아무리 넓어봤자, '세계'는 어딘가에 끝이 있으며, 한정적인 차원에 갇힌 개념인 겁니다.
그런데, 그 '세계'라는 개념 안에 있는 것들이 흥미롭습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현상과 분야 그리고 사상이나 심리까지 담아내고 있다는 겁니다. 뭉뚱그려 생각해보면 그저 오만가지가 다 있다고 여겨지지만,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무엇으로 차 있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이해되고, 너가 이해됩니다.
크기와 깊이가 다른 두 세계의 만남은, 그 어떤 물리적 화학적 반응을 나타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계와 세계, 경계와 경계의 만남
더불어, 세계는 하나가 아닙니다.
너의 세계. 나의 세계. 그러니까 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세계가 있다는 겁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도 이와 같은 생각을 담은 대사가 나옵니다.
"만약 신이 있다면 너와 내가 아닌, 너와 나의 사이 작은 공간에 존재할 거야"
너와 나의 세계 그 사이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세계의 끝은 '경계'입니다.
경계가 세계를 규정합니다.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결국,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의해 경계가 형성됩니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지문이 같지 않듯 저마다 다릅니다.
물론, 비슷한 부분도 있겠죠.
그것을 우리는 교집합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교집합의 영역은 클 수도, 작을 수도 또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비슷해야 잘 산다, 아니다 달라야 잘 산다 등의 질문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입니다.
교집합의 크기나 여부가 결혼 생활을 보장하지는 않는단 이야기입니다.
너와 나의 세계가 아닌 우리의 세계
두 남녀가 만났습니다.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애할 땐 교집합의 크기가 상당합니다. 마치, 나의 세계를 너에게 바치더라도 후회 없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너만 가질 수 있으면, 내 세계의 존재 여부는 상관없다는 것이죠. 그러나, 사람이 어디 그러합니까. 막상 결혼이 결정되고 나면 나의 세계를 찾아야겠다고 정신을 차립니다. 나의 세계가 없다는 건, 내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자신의 세계를 되찾으려 하는 과정에서, 부부는 흔들립니다.
귀하고 곱게 자란 남녀는 각자의 왕국에서 떨어져 나온 왕자와 공주입니다. 내 돈으로 수건을 하거나, 보일러를 고치거나 밑반찬을 담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합니다. 남자가 하든, 여자가 하든. 사랑할 땐 몰랐던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일들이 몰려옵니다. 나의 세계를 포기하거나 양보하여 그것들을 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 나의 세계만 희생하여야 할까란 억울함이 마음을 뚫고 입으로 나와 행동으로 펼쳐집니다.
결론적으로 '부부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입니다.
'너의 세계', '나의 세계'를 내세울 때 비극은 시작됩니다. 현명한 부부는 '우리'의 세계와 '너'와 '나'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오갑니다.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이유는 때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잘하는 것이고, 또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여 우리의 세계에 시너지를 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에 대해 열렬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각자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오가는지도 함께.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단한 내공도 필요합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봐야 하는 기간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사랑을 넘어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