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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7. 2016

[너를 만난 그곳] #25. 푸른 심장 Part 2.

아직 내 품 속에 그 아이의 향기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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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안긴 채 그대로였다. 그 아이의 두 팔이 내 옆구리를 휘감고 있었고 얼굴은 내 가슴에 파묻혀 있었다.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를 기어이 두 팔로 감싼 모양새였다. 내 두 팔은 어찌할 줄 몰라 그 아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벌렸던 그 자세 그대로 엉거주춤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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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내 몸을 안은 채로 그 아이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올려다보는 똘망한 눈망울이 귀여웠다. 눈이 마주쳐 주춤했다. 그래도 그 아이는 내 몸을 안은 두 팔을 놓지 않았다. 들어 올린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담아 말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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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어때 내 선물?


그.. 그러니까, 지금 이게 뭐지? 아... 이게 그 선물이라는 거구나.


잘 찾아오면 선물 준다고 했잖아. 잘했어.


근데, 이거 놓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 숨을 못 쉬겠네.


싫어. 안 놓을 거야. 선물이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어, 그래 참 마음에 든다. 정말이야. 그러니 이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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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자기처럼 예쁜 여자가 무작정 안아주는데 이보다 더 한 선물이 어디 있냐며 자신만만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서 저쪽으로 가자며 고갯짓을 했다. 저 근자감은 어디서 오는 건지. 살짝 기가 차기도 했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난 그 아이를 따랐다. 아직 내 품 속에 그 아이의 향기가 남아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니 그 향기는 내 온몸으로 퍼졌다. 상쾌한 향이었다. 기분은 좋았다. 나를 올려다보던 그 깊은 눈망울도 눈 앞에 아른거렸다. 갑작스러운 선물(?)로 몹시 당황한 나는, 영혼은 잠시 푸른 심장 앞에 놓아두고는 좀비처럼 걸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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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내가 그리로 알아서 찾아와 준 것이 고맙다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단다. 그 힌트만으로 찾아온다면 아재는 아니구나. 어느 정도 센스는 있구나. 그래서 예뻐해 줘야겠구나. 간단한 인연은 아니겠구나 라고. 그래서 더욱더 반가워 그렇게 세게 안아준 거라 말했다. 이렇게 황송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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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심장을 지나자 커다란 광장이 앞에 펼쳐졌다. 그 아이는 저기 맞은편 특이한 건물이 시청사이고 마주 보고 있는 교회는 새로 지어진 것이라 했다. 나 때문에 조금 미리 먼저 알아봤다고 한 그 아이는 나머지는 모르니 더 이상 묻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그래 네가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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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높았다. 파란색이었다. 구름들이 바람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저 높은 교회 첨탑을 보며 서 있자니, 교회 건물과 발을 디디고 있는 나의 몸이 하나가 되어 천천히 움직이는듯했다. 저기 저 위 탑을 보던 그 아이가 저기 사람이 있다고 외쳤다. 그러더니 내 팔을 끌어당겨 올라가 보자고 보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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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길은 험난했다. 돈을 주고 올라가기에는 조금 억울할 정도로. 좁디좁은 회전식 계단은 차오르는 숨을 더 가쁘게 몰아세웠다.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뒤엉켜 시간은 더 걸렸다. 그 아이는 힘들다며 미간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줄 알았단다. 그래도 귀여움은 떠나질 않았다. 이마를 보니 땀이 송골송골했다. 손을 내밀어 그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이끌고 이끌어 꼭대기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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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델프트의 정수리가 보였다. 알록달록한 주황색 물결이 수를 놓았다. 네덜란드 특유의 세모꼴 모양인 박공지붕들이 자태를 뽐냈다. 난간에 매달린 그 아이는 연신 탄성을 자아냈다. 바람이 조금은 세게 불었지만 시원하고도 남았다. 올라올 때 올라온 열을 식히기에. 그 아이의 조금은 긴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떨어질까 조금은 위험해 보였지만 그대로 두었다. 나름의 자유를 느끼는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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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아저씨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있어?

난간에 매달려 바람을 충분히 쐰 그 아이가 갑자기 돌아보며 말했다.


글쎄... 근데 분명한 건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을 더 많이 하면서 사는 것 같아.


에이. 그럼 재미없겠다. 난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어. 사실, 나 지금 도피성 유학이야. 원래는 한국에서 뭘 좀 했었는데, 그게 내 일인가 싶기도 하고. 또 작은 사고도 좀 쳤고.

무언가를 회상하듯 그 아이는 저 혼잣말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내려가자고 했다. 난, 아직 덜 봤는데. 역시나 그 아이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벌써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하여튼... 너란 아이.




Place Information


델프트 광장. 독특한 모양의 시청사와 높은 첨탑의 신교회가 마주 보고 있는 곳.

- Markt 61, 2611, Delft, Nethe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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