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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05. 2020

자장면 한 그릇의 기쁨과 슬픔

자장면 한 그릇으로 모자라던 그때가 나는 그립다.

자장면만큼 공통의 기억과 감정을 가진 음식이 또 있을까.

모두가 똑같이 알고 있는 그 맛. 자고로 해외 여행지에서 음식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햄버거를 골라야 하는 것처럼, 국내 어디서든 실패하지 않으려면 자장면을 먹어야 한다. 어디에서 먹든 그 맛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사하는 날은 자장면을 먹어야 한다는 정서가 우리의 머리와 몸 그리고 입에 고스란히 인박여 있다.


자장면 비비는 소리를 떠올려 본다.

오묘하게 끈적한 소리가 몇 번 지나고 나면, 노릇한 면발은 이미 검은 옷을 입는다. 그래서 휘휘 돌려 면을 감아 크게 한 입 먹는 자장면의 첫맛은 기쁨이다. 단짠의 진수를 전하는 춘장 소스와 어우러진 면과 양파. 그리고 쫄깃하게 씹히는 고기의 담백함까지. 언젠가, 먹는 약이 있어 면은 피해야 한다고 했던 선배가, 어느새 자장면을 먹는 옆 동료에게 제발 한 젓가락만 달라고 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 입으로 천국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장면의 한 입은 라면의 그것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그러나 나는 이제 자장면 한 그릇에 서글픔을 느낀다.

어제 먹은 자장면 한 그릇에 오늘 하루 온종일 속이 더부룩해서다. 이 말을 했더니 같이 먹은 동료들이 저도 그렇단다.


이젠, 자장면 한 그릇을 다 먹으면 속이 불편한 나이가 되었다.

첫 한 입은 기쁨이지만, 그 한 그릇을 다 먹는 건 슬픔인 것이다.


세월이 야속할 뿐.

제대로 챙겨 먹지 않으면 골골대고, 그래서 마음먹고 챙겨 먹으면 속이 부대끼는 처지가 되었다. 아침은 왕처럼, 점심은 보통 사람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으라는 말이 있다. 그것을 인생에 빗대어보면, 내 나이는 이제 저녁에 다다른 것이다. 적게 먹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어릴 땐 많이 먹어야 살지만, 지금은 그 반대의 운명인 것이다.


자장면의 그 맛은 여전히 기쁨이지만, 한 그릇을 비운 후의 부대낌은 그렇게 슬픔이다.

이제는 세월을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젊을 때를 떠올리거나, 지금의 나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먹으면 탈이 날 게 뻔하다.


어쩌면 이것이, 나이가 들수록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놓을 건 놓으라는 신호일지 모른다.

그걸 잊고 살까 봐 조금이라도 많이 먹으면 이리도 속이 부대끼도록 우리는 설계된 것이 분명하다.


삶은 언제나 기쁨과 슬픔의 반복이다.

어느 하나만 계속된다면 그건 삶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자장면 한 그릇으로 모자라던 그때가 나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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