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맥락을 만들면 의미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무한한 시간을 쪼개어 1년을 만든 것. 그래서 '12월 31'일과 '1월 1'일은 그냥 똑같은 어제와 오늘인데 마치 새로 태어난 것과 같이 마음을 다시 다잡는 것. 만난 지 100일이다 1,000일이다를 세어가며 기념을 하고, 다시금 미래를 다짐하는 것까지.
그 어떤 맥락을 만들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인 것이다.
그렇다면 브런치 글 1,000개는 나에게 어떤 맥락이며 의미인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약 5년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글 1,000개가 모였다. 굳이 따지면 하루에 글 1.74개를 써온 것이다.
맥락을 살펴보면 나는 글쓰기를 지속해왔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하나 꾸준하게 하지 못했던 내가 그것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그 어떠한 하나의 큰 의미다. 어쩌면 글쓰기는 끝이 없는 것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끝이 있었다면, 그 어느 지점에서 포기했을지도.
내가 가장 잘한 것들.
'책쓰기'를 하지 않고, '글쓰기'를 했다는 것.
그리고 글쓰기의 시작에서 '목표'를 두지 않았다는 것.
'책쓰기'라는 단기적 '목표'를 향해 달렸다면 내 글은 반짝이며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운이 좋아 책이 출판되었더라면 그 한 권으로 모든 것이 고갈되고 소멸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저 글쓰기를 이어갔더니 어느새 5권의 책과 수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서두르지 않는다. 나는 그저 쓴다.
글쓰기의 매력은 서두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의 지난날은 조급함의 연속이었고, 조급함은 많은 것을 그르쳤다. 성격 급함의 정도는 한국인의 평균을 뛰어넘는 나지만, 글을 쓰며 삶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글쓰기는 그 자체가 서두를 수 없다.
서둘러 소재를 찾을 수도, 서둘러 그것을 풀어낼 수도, 서둘러 글의 모수를 늘릴 수도 없다. 그저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지 않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 인고의 과정이다. 아, '인고'라. 나는 영 '인고'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았으나, 결국 글쓰기가 나에게 '인고'라는 선물을 안겨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쓴다.
쓰는 시간에 나는 고요하게 머물러 있지만 시간은 쏜살같다. 나는 그것이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 수 있는 일이 인생에 몇 개나 될까. 반면, 좀 더 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는 건 동시에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글의 개수는 매우 중요하다.
나는 글쓰기 강의를 할 때 글의 모수를 늘리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면 그 안에서 어떤 '패턴'을 찾을 수 있고, 나의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다. 내 글 하나하나가 네온사인의 전구라면, 그것들이 모여 큰 전광판을 만들고 그 '패턴'과 '세계관'을 반짝반짝 비출 것이다.
세상은 그 빛을 볼 것이고, 나에겐 수많은 또 다른 기회가 올 것이다.
그저 툭 던지는 말이 아니라, 이미 내가 겪고 있고 증명해낸 것이니 믿어도 좋다. 나는 1,000개의 전구로 세상과 교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글 1,000개는 과정일 뿐, 많음도 적음도 아닌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브런치 글 1,000개는, 나에게 다시 시작하라는 '맥락'이자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