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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16. 2020

'세대차이'가 아니라 '시대차이'다.

나는 진정한 '온고지신'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


"어디에 갔다 왔느냐?"

"아무 데도 안 갔습니다."

"도대체 왜 학교를 안 가고 빈둥거리고 있느냐? 제발 철 좀 들어라. 왜 그렇게 버릇이 없느냐? 너의 선생님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항상 인사를 드려라. 왜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오지 않고 밖을 배회하느냐?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오너라.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땔감을 잘라오게 하였느냐?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쟁기질을 하게 하고 나를 부양하라고 하였느냐? 도대체 왜 글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냐? 자식이 아비의 직업을 물려받는 것은 엔릴 신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운명이다. 글을 열심히 배워야 서기관의 직업을 물려받을 수 있다. 모름지기 모든 기예 중 최고의 기예는 글을 아는 것이다. 글을 알아야만 지식을 받고 지식을 전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너의 형을 본받고 너의 동생을 본받아라."

- 출처: 244p, The sumerians, Their history, culture, and character by Samuel Noah Kramer i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그러나 지금과도 다를 바 없이 너무나 생생한 이와 같은 잔소리는 기원전 5,500년 ~ 4,000년 사이의 수메르 문명에서 발견된 문자다.

이러한 잔소리를 퍼붓거나 퍼듣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볼 때,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인류의 역사를 관통해 반복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우리는 세대와 세대 간 갈등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꼰대가 많이 양산되는 이유.

바로, 세대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역(逆)꼰대'의 역습!


그렇다면 '꼰대'를 양산해내는 것은 누구일까?

나는 '꼰대'가 스스로를 양산하기도 하지만, '역꼰대'가 없던 '꼰대'를 양산해낸다고도 생각한다.


아래 그림을 보면 그 둘의 관계를 좀 더 명확히 할 수 있다.

출처: 스테르담 강의록

즉, '권위주의'와 '배려 없는 잔소리'로 꼰대는 스스로를 양산한다.

답을 정해놓거나, 까라면 까라는 주의. 내가 해봐서 안다라던가 무조건 네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넘어 표출하지 말아야 할 분노를 내던지는 사람도 있다. '야!'라고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것 또한 꼰대로 가는 급행열차에 올라탄 것과 같다.


그러나, 꼰대만을 탓해야 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수메르 문명에서 발견된 잔소리를 볼 수 있듯이, 나 또한 윗 세대와 아래 세대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다. 혹시라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준 상대를 무조건 꼰대라 규정한 적은 없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그러니까,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도 듣지 않으려 하거나, 필요한 말을 해주는 상대의 말을 듣기 싫어 꼰대라 손가락질 하진 않았는지. 그래서 꼰대를 양산해낸 건 아닌지. 

출처: 스테르담 강의록


우리는 누구나 꼰대가 된다.

내가 되고 싶지 않아도 된다. 그 이야기는 시간을 흘러가며 나의 위치도 바뀐다는 것이다. 90년 생을 바라보는 시야에 색안경이 써져 있다면, 수메르 문명에 살던 사람들은 우리를 바라볼 때 어떤 안경을 쓰고 볼까? 그리 멀리 가지 않아도, 나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잔소리나 조언을 할 것이고, 나 또한 그들의 말 하나하나에 거부감을 표하며 그들을 꼰대로 규정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꼰대는 어쩔 수 없이 생겨나지만 '역꼰대의 역습' 또한 꼰대를 양산하는 큰 원인이라 볼 수 있다.


내가 아닌 세대와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은 '나'가 아닌 것과 구별 지으려 하는 묘한 습성이 있다.

그 이야기는 세상의 중심이 '나'라는 방증인데, 우리가 사용하는 '신세대'와 '구세대'가 대표적인 예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구세대', 적으면 '신세대'라고 규정하고 거리를 두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표현을 빌려 보면, 그 의미가 더 절실히 와 닿을 것이다.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알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 조지 오웰 -
출처: 스테르담 강의록


그래서일까.

우리는 수평적 관계에서의 차이를 '성격'에서 찾는 반면, 수직적 관계에서의 다름은 '세대'로 결론짓는다. 즉, '성격차이'와 '세대차이' 그 둘이 세상과 사회, 그리고 내 주변을 격자무늬로 가르고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 어떤 차이가 나거나, 나와 다른 모든 사람과 순간을 쉽게 그 둘로 결론 지어 버리는 것이다. 더 무서운 건,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한다는 것인데 이는 수평적 관계인 세대차이에서 더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세대갈등'이란 말이 부각되는 이유다.


과연, '세대'의 문제일까?


출처: 스테르담 강의록


우리는 어떠한 답을 찾을 때, 그 답에 집착하지 말고 질문을 달리해봐야 한다.

영화 '올드보이'에서는 이러한 내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를 마주했을 때, 난 소름이 돋았다. 막연하게 머리에 떠돌던 그 어떤 관념을 명확하게 표현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맞이한 '세대갈등'이라는 것.

'갈등'의 모든 원인을 '세대'로 돌리는, '인지적 구두쇠'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네의 생각법이다. 즉, 다양한 원인을 고민하기보단 어느 한 문제로 통칭하여 결론짓는 것. 


마크 트웨인과 캐플런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망치의 법칙'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가진 것이 망치뿐이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 마크 트웨인, 에이브러험 캐플런 -
출처: 스테르담 강의록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다!
즉, 각자의 생존 방식이 다르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달리 해야 하고, 혹시라도 망치를 들고 튀어나온 못만을 찾아 헤맨 건 아닌지를 점검해야 한다.


질문을 달리해보고 손에 있는 망치를 내려놓으며, 나는 '세대'가 아닌 '시대'의 차이를 보게 된다.

그러니까, 나와 다른 세대가 하는 이상한(?) 행동이나 말은 다른 시대를 살아온 결과물이며, 각자의 생존 방식이 결정한 모습과 모양임을 부정해선 안된다. '생존'이라는 말 앞에 모든 인류는 진화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살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스테르담 강의록


그래서 우리는, 우리 윗 세대와 아래 세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봐야 한다.

즉, 시대의 군상을 봐야 하고 그 시대의 문화와 특징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관찰과 고찰이 없으면, 다른 것을 틀리다고 규정하게 되고 스스로 꼰대가 되거나 상대방을 꼰대로 양산하는 결과를 맞이 하는 것이다.


아래의 시대별 특징을 한 번 보자.

X세대는 베이비부머와 386세대의 자녀로 문화적 부흥기를 경험했다. 지금 내가 그렇다. 위로는 전쟁과 배고픔의 시대를 겪은 구세대가, 아래로는 자유분방함을 가진 신세대가 있다. 말 그대로 '낀 세대'라 볼 수 있는데, 앞서 설명한 대로 나는 '배고픔'과 '자유분방함'을 모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상사의 일방적 지시를 이해하면서도, 후배들에게 그것을 그대로 전할지 고민한다.

절약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이 있지만, 때로는 욜로의 사상으로 원하는 것은 플렉스 해야 직성이 풀린다. 경제발전의 열매를 따먹은 구세대의 끝물에서 단맛을 조금 보기도 했고, 성장 정체의 시대에 이르러 일자리가 줄어든 시대의 아픔을 경험하기도, 목격하기도 한다.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라는 말도 이해하고, '일 할 곳이 없는데 왜 자꾸 눈높이만 낮추라고 하냐'는 항변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이 '갈등'과 '세대의 생존법'은 아래의 '경제성장률' 그래프와 함께 이해해야 한다. GDP는 올라가지만, 경제 성장률에 따라 시대의 생존법은 달라지는 것. 


생존법을 달리하는 것은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인 것이다.

출처: 스테르담 강의록, 성장률에 따라 시대의 특징을 살펴야 한다. 그것은 곧 '생존법'이다.


서로의 생존 방식과 욕구를 이해할 때
세대는 시너지를 낼 것이다!


'온고지신'이란 말이 있다.

'옛것을 읽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앎'이란 말이다. 나는 이 말과 뜻이 참으로 아름답다 생각한다. 옛것이 있어야 지금 것이 있고, 지금 것이 결국 더 나은 것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등'이 개입되는 순간. 더더군다나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는 정서를 들이대는 순간 '온고지신'은 사라진다. 오히려, 옛것이 발목을 잡고, 새것이 옛것을 부정하며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쟤네, 정말 왜 저래?", "저 꼰대 또 시작이네!"라고 하기 전에.

그들의 '시대'를 이해해보자. 먹는 것이 넘쳐 나는 시대에 배고픔을 이야기하는 이를 '꼰대'라 규정하기 전에, 정말로 내가 배고팠던 순간을 떠올려 보고. 배고프면 빵이라도 먹지 그랬냐고 생각 없이 말을 던지기 전에, 전쟁으로 황폐한 그 순간을 4D로 떠올려 보는 것이다.

반대로, 티끌 모아 티끌인 시대. 은행 금리가 25%였던 그때 그 생각으로, 요즘 애들은 절약을 모르고 돈을 펑펑 쓴다고 이야기하지 말고.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가지고도 일 할 곳이 없는 상황을, 숨만 쉬고 월급을 쌓아 몇십 년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더 될 것이다.


또 하나.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의 '욕구'는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를 현재 우리의 모습으로 해석해보면 아래와 같다.


전제는, 사람이라면 '욕구'는 똑같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구세대든, 신세대는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설에 반응하고 행동한다는 것엔 변함이 없다. 다만, 시대가 다르니 그 욕구를 성취해 나가는 방법이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먹고살아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동일하지만, 많이 일하고 많이 벌어야 한다는 구세대와는 달리 신세대는 적게 일하고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성장의 시대와 정체의 시대. 각자의 생존법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더불어, 어딘가에 소속되어 얻는 안정감은 이전 회사나 가족이라는 집단에서, 나를 인정해주는 곳이라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상관없는 시대가 되었다. 행복에 있어서도, 행복과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것에는 동일하지만 지금 세대는 확실한 비전과 꿈은 없어도 지금 이 순간은 행복하고 싶다는 정서가 가득하다. 무언가 확실한 삶의 목적이 없으면, 행복을 거머쥘 수 없다는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모양새다.

출처: 스테르담 강의록, 각 세대의 욕구를 잘 이해해야 한다.




사람은 결국, '욕구'를 따르는 동물이다.

그리고 그 욕구를 어떻게 채워가느냐에 따라 생존의 방식이 결정되고, 각 개인의 기질을 완성한다.


사실, '갈등'은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는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우리는 간단하게 정의하고 처리하려는데, 수직적 관계의 '세대갈등'은 그래서 우리를 더 아둔하게 한다. 서로의 '욕구'를, '생존법'을 보지 못하게 하는 색안경. 그래서 남는 건, 다툼과 아픔만이 있을 뿐이다.


소위 말해 X, Y, Z는 요즘 세대의 표본이자 갈등의 중심이다.

다른 모양과 발음을 가진 문자로 보면 갈등이 증폭되겠지만, 모두 알파벳에 속해 있다고 보면 동질성을 확보할 수 있다. 각 문자는 저마다의 역할이 있어 그 역할대로 모양을 이루고, 발음을 내게 한다.


그러니까 X, Y, Z는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다양한 말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인 것이다.

그리고 문자열의 끝에서, 알파벳을 완성하는 의미 있는 문자 들이다.


서로의 모양과 발음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배려할 때.

서로의 시대와 생존법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들의 행동과 언어를 받아들일 때.


나는 진정한 '온고지신'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것은 곧,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생존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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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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