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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03. 2020

일요일 오후 5시의 애매함

원래 삶은 그 자체로 애매함이 아닐까.

일요일 오후 5시.

시계가 정각을 가리키면 나는 여지없이 애매함에 빠져 든다. 직장인에게 그 시간은 오갈 데 없는 흔들림이다. 낮잠을 자기에도 그렇고, 영화를 보자니 마음의 여유가 없다. 책을 집어 들어도 집중이 되지 않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자니 남은 주말을 그럭저럭 보내는 내가 밉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

일요일 오후 5시다.


문제는 일요일 오후 5시가 너무나도 빨리, 훅 하고 다가온다는 것이다.

직장인에게 허락된 몇 안 되는 사치가 주말 아침의 늦잠일 텐데, 그 단잠에서 깨어나면 어느새 해는 중천이고 이미 많은 다짐은 허물어진 뒤다. 정신을 차려 끼니를 챙기고 나면 해는 이미 내리막을 걷고 있는 게 느껴진다.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과, 했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후회가 덕지덕지 붙어 따라다닌다.


"(일요일 오후) 네가 5시에 온다면, 나는 4시부터 애매해지기 시작할 거야."

어린 왕자의 독백마저 영 애매하게 다가올 정도다.


애매함은 무언가가 나를 밀어내는 힘으로부터 성립된다.

달리 말해, 등 떠밀려 가야 하는 곳이 있을 때 애매함은 생겨나는 것이다. 월요일 아침이라는 상징적인 시간은 '시작'이라는 출발선이고, 아직 출발 준비가 되지 않은 자들의 비명은 일요일 오후부터 시작된다.


돌이켜보면, 사회생활 그 자체가 준비 안된 출발이었다.

준비운동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지금도 그저 뛰고 있지 않은가. 먹고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은 반론의 여지가 없으므로, 저도 모르게 어른이 된 우리는 멈추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그래서일까.

때론, 오후 5시의 애매함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모습이 투정을 부리는 아이와 같다. 아직, 내 마음속에 미미하게나마 살아 있는 아이와 같은 마음이 툴툴대며 작동하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 감사함이자 삶의 무게라는 삶의 아이러니를 이해하지 않는 마음. 


좋은 건 좋다, 싫은 건 싫다 말할 줄 아는 순수함.

일요일 오후 5시의 애매함이 그리 싫지만도 않다는 생각이다.


원래 삶은 그 자체로 애매함이 아닐까.

어차피 영원한 잠을 청할 때, 우리는 하지 못한 것과 했어야 하는 걸 떠올리며 눈을 감을 테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우리네 인생의 시간이, 어쩌면 일요일 오후 5시에 멈춰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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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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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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