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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11. 2020

글쓰기는 '에피소드'보다 '메시지'다.

'에피소드'를 쓰려하지 말고, '메시지'를 써 내려가야 한다.

"튜터님, 전 에피소드가 많은데
그걸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글쓰기 클래스에서 간혹 받는 질문.

이 질문을 받을 때면, 글쓰기 초기에 비슷한 고민을 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스스로를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소재라도 특별해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있었던 것. 그러나, 어렵게 맞이한 특별한 에피소드들을 두고도 나는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한 적이 부지기수다. 이 기회를 빌어, 피어나지도 못하고 사그라든 지난날 나의 글들에 애도를 보낸다.


그러나, 쉽지 않은 건 쉽지 않은 것이다.

뭔가 좋은 이벤트나 에피소드, 그러니까 특별한 소재를 만났을 때 쓰고 싶은 욕구는 발동하게 되는데, 과연 손가락 끝이 간질간질한 그 느낌은 글쓰기에 빠져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전율이지만 동시에 더없이 큰 고통이다.


에피소드가 많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별한 에피소드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마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보편적이지만 나에겐 특별한 일
둘째, 보편적이지 않아 나에게 특별한 일
셋째, 그냥 내가 특별하다고 선언하는 일


첫째의 경우엔 처음 부모가 되었거나, 성년식을 맞이하거나, 키우던 강아지를 떠나보내는 일 등이 해당될 것이다. 

탄생이나 죽음, 나이가 들어가며 맞이하는 일들인데 이는 사람이라면 보편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경험이자 정서다. 그러나 그 '보편성'은 '나'라는 주체에 이르러 '특수성'으로 돌변한다. 다들 나이 들면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게 당연해 보이는 일이었겠지만, 막상 그때가 되면 오묘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기분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표현하고 전달하고 싶어 진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누구보다 특별한 에피소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은 일들이 나에게 일어난 경우다.

가뜩이나 약속에 늦었는데 내가 기다리던 정류장을 그냥 지나치는 버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거나, 남들은 별문제 없이 통과하는 시험에 나만 떨어진 경우가 그렇다. 지나가다 새똥을 맞았거나, 남들은 가지 않는 여행지를 다녀온 것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특별한 일을 규정하거나 선언하는 일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지 않기 위해, 결혼을 안 한다거나 취업을 하지 않는 것. 또는 아이를 갖지 않거나 졸혼을 하는 경우가 그렇다.


위 경우들에 해당한다면, 앞서 말한 대로 그 경험과 에피소드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매우 클 것이다.


사실, '에피소드'보다 '메시지'!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이러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왜 글쓰기가 잘 이어지지 않는 걸까?

머리로 떠올리면 재미있고 특별한 소재일 것 같은데, 그래서 써 내려가면 술술 써질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막히거나, 써 내려가는 와중에 대체 끝을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은 글쓰기의 가장 무서운 적이다.


그러나, 내가 깨달은 바는 시작의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답을 모를 땐 질문을 바꿔보면 된다. 또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질문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그러니까,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글이 안 써지는 이유를 물어야 하는 게 아니다.


바로, '내가 말하려는, 전하려는 메시지는 뭘까?'가 제대로 된 질문인 것이다.


대개, 소재가 있어야 글을 쓴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나 이것은 소재를 '소비'하는 과정이다. 소재가 더 특별해야 한다고 자신을 옭아매는 결과로 귀결되기 쉽다. 이 모든 건, '에피소드'에 집중할 때 발생한다.


그러나 질문과 생각을 바꾸어 '메시지'에 집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메시지'에 집중하면 오히려 에피소드가 떠오르고, 떠오른 에피소드는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효과적이고 매력 있게 뒷받침한다. 일상도 특별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것에서도 말하고 싶은 바를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핵심'은 '메시지'여야지, '에피소드'가 되어선 안된다.

말 그대로 주객이 전도된, 본질과 수단이 뒤바뀐 글쓰기로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을 멈춰야 한다.


'메시지'를 정하고 '에피소드'를 떠올리거나,
'에피소드'를 떠올리고 '메시지'를 뽑아내거나!


예를 들어, '나의 열정이 남에게 피해를 줘선 안된다'란 메시지를 전하고 싶을 때.

난 직장에서 누군가의 열정에 데었거나, 또는 내 열정이 남을 데게 한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반대로, 자장면을 먹고 다음날까지도 속이 더부룩했던 에피소드를 떠올리고는, '나이가 들면 내가 무엇을 먹었나 돌아봐야 하고, 꼭 음식이 아니더라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헛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겠다'란 메시지를 뽑아낸다. 


한번 더.

'에피소드'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수단이다. 전반에 걸쳐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글이더라도, '메시지'라는 핵심이 없으면 그건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가 아닐뿐더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과 위로를 얻게 하기 힘들다. 아마, 글이 끝맺음이 안되기도 하거니와,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글을 쓰고 있는지 스스로도 헷갈려할 가능성이 높다.




글쓰기는 우리의 본능이며, 무언가를 '기록'하고 '표현'하고 '전달'하려는 것이 글쓰기라 했다.

'기록'과 '표현'은 '에피소드'의 영역이다. 거기서 끝난다면 혼자 보는 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면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메시지'가 곧 핵심이며, '메시지'가 빠진 '에피소드'는 단순 서사에 불과하다.

결국, '메시지'를 잘 뽑아내기 위해선 일상도 달리 볼 줄 아는 '통찰'이 필요하며, 이 '통찰'은 '왜?'라는 질문에서 온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 우리는 '에피소드'를 쓰려하지 말고, '메시지'를 써 내려가야 한다.

이것이, 지금 이제 글쓰기를 다짐한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나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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