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Jan 31. 2016

네덜란드 '낮은 땅, 높은 키' 이야기

네덜란드 그 낮음과 높음에 대하여

"네덜란드 사람들이 키 큰 이유를 아는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언젠가, 다른 나라에 주재하시는 어르신께서 네덜란드를 방문하여 저녁 식사 때 물어보신 질문.


월급에 의지하는 직장인이기에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주재 생활을 하는 사람이기에 대답을 잘해야 하는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고, 다행히도 주재하는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파고드는 성격에 예전에  찾아본 기억을 더듬어 나름대로 논리 정연하게  말씀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 대답은 식생활, 잠자는 시간, 유전적 요소 그리고  자연선택설까지 끌어들여 장황한 스토리가 되었다. 사실, 어디를 뒤져봐도 명확한 대답은 없었고 학계에서도 현재 계속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등줄기의  식은땀이 허리선에 닿을  그즈음. 어르신께서는 한 마디로 그 이유를 정의하셨다.


"그게 아니지. 땅이 낮아서 다른 동네(나라)는 뭐하나 허리 피고 목을 길게 늘어 뜨려 보느라고 키가 큰 거야."


다행히 그 자리를 구성한 인원들은 나를 포함해서 직장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이라 리액션은 바로 박장대소로 발현되었다. 부장님의 아재 개그였다면 친근한 야유(?)로 정리될 수 있었겠지만, 그 어르신의 말씀은 '부사장 개그(?)'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자동적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생각했다.

정말 왜 그럴까? 다시 한 번 더 알아보자고.


"낮은 땅과 불굴의 의지"


당신이 네덜란드 Schiphol 공항에 도착을 했다면, 당신은 이미  해수면보다 4m 이상 아래에 있게 된다. 영어 발음으로는 '쉽폴'로 읽히는 '스키폴'의 공항 이름은, 물살이 센 강하구였던 그곳에서 많은 배들이 빠졌다(말 그대로 Ship들이 Falling down)는데에서 유래하니 당신이 해수면보다 아래에 있다는 것은 증명이 되는 셈이다.


Netherlands의 나라 이름도 한 번 더 살펴본다.

'Nether'는 영어사전에서 '아래의, 밑의'란 것을 뜻한다.

자, 그런데 뒤에 land는 왜 단수형이 아니고 복수형 일까?


암스테르담 시내에만 있는 운하의 수는 90개로, 길이로치면 100km 이상이 되고 그 운하를 잇는  각양각색의 다리 수는 1,500여 개에 달한다. 이 운하들은 바다와 강을 막은 낮은 땅이 홍수로 범람되지 않도록 물길의 역할을 하는데 운하들이 많다 보니 땅의 모양이 조그만 섬들이 모여 이루는 영토와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섬들이 모인 듯한 암스테르담의 모습


지금이야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얼마나 큰 불굴의 의지로 만들어 낸 것인지는 아래 대조적인 속담을 보면 알 수 있게 된다.


"아이슬란드, 신이 세상을 만들기 전 연습한 곳"


"네덜란드, 신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네덜란드를 만들었다"


정리하면 네덜란드 국토의 약 25%가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그리고 인구의 21%가 그 땅에 살고 있으며, 최저 고도는 해발 -6.76m다.


성형전과 성형후 그 이상. 얼마나 치열하게 땅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네덜란드의 이러한 '정신'을 엿보고자 한다면 북쪽에 위치한 '대제방(Afsluitdijk)'을 추천한다. 북해와 에이셜호를 가르는 32.5km의 길은 지금은 도로지만 돌  하나하나를 쌓아 만든 제방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느낌이 다르다. (참고로 기네스북에 가장 긴 제방으로  기록되었었으나, 2010년 8월을 기해서 33.9km의 새만금 방조제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높은 키와 그 미스터리"


커도 좀 너무 크다. 그래서 난 친구들과 앉아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평균 신장이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네덜란드 사람들을 포함해도 없다.


또 하나, 나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든 것은 여러 박물관을 돌아보며 그 옛날 왕들의 침대를 보면 내가 누워 있기에도 좀 짧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다는 것이었다. 아마, 지금 네덜란드 사람들이 그 침대에 눕는 다면 무릎은 접어 발을 땅에 대고 자야 할 지도.


그 이유를 찾다 보니 갸우뚱한 머리가 점점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원래 컸던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중반 징병 검사 기록에는 성인 남성의 평균 키는 164cm에 불과했다고 한다. (같은 무렵 영국 172cm, 미국 171cm, 스웨덴 168m, 프랑스 165cm, 독일 164cm)


하지만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지금 네덜란드인의 평균 키는 20cm가 커져, 그 평균이 남성 184cm, 여성 170cm에 달한다. 같은 기간 미국은 6cm의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BBC도 궁금해한다. 자연선택설을 설명하였으나 100% 설명이 안된다.


아직까지도 정답은 없고 검색을 해보면 여러 가지 학설이 주를 이루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풍부한 영양 섭취와 식생활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예전 시대보다 확실히 풍부한 영양을 섭취한다는 것. 게다가 네덜란드 사람들은 '유기농'과 '유제품'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곳곳에 보이는 비타민 샵은 건강을 챙기는 그들의 단면이고 우성인자를 만들어간다는 학설이 있다.


둘째, 유전과 생활 습관

대부분 많이 거론되는 학설은 유전적 요소다. 하지만, 이는 150년 전 작은 키에서 왜 급작스럽게 20cm의 평균 키가 커졌는지는 100%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유전과 Heightism (신장주의) 이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쉽게 말해 키가 큰 사람끼리 짝을 이루게 되면서 그 후손이 점점 커졌다는 이야기다.


'키는 권력이다'를 주창한 니콜라 애르팽의 이 이론은 키 큰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를 더 높게 차지하고 수입은 많으며 건강을 유지해 그 권력을 이어간다고 설명한다. 어떻게 보면 마치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 이론을 잘 흡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어렸을 때부터 네덜란드 사람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곤 하는데, 특히 어린이들은 저녁 7시면 꿈나라에 이미 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웃의 경우 집에 놀러 왔다가는 아이를 재우러 가야 한다며 급히 자리를 뜬 그 시각이 저녁 6시여서 놀랐던 적이 있다.


어린 나이부터 주말과 평일을 구분하지 않고 자전거, 러닝, 수영 등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모습을 보면 굳이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들의 키가 왜 커가는지 대략 짐작이 간다.


셋째, 자연선택설까지 거론되는 갖가지 이론

네덜란드 사람들이 왜 키가 큰지에 대한 이론은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 최근엔  이런저런 설명이 안돼서 그런지 자연선택설까지 떠오르게 되었고,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라는 학술지에는 'Tall Dutch men on average have more children than their shorter counterparts'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즉, 생물의 종은  자연선택의 결과 환경에 적합한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가설과 더불어 키 큰 사람들은 더 많은 자녀를 낳고, 더 많은 생존이 되어 그것을 이어 나간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왜 네덜란드 사람들이 지난 150여 년간 20cm의 키가 불쑥 커서 세계에서 가장 큰 사람들이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래서 네덜란드는 참 흥미로운 나라다. 땅은 가장 낮지만, 신장은 가장 높은.

낮은 땅에서는 그들의 불굴의 의지를 볼 수 있고, 높은 키에서는 그들의 생활 습관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서두에서 이야기 한 '부사장님의 개그'는 개그가 아니었을 수 있다. 일종의 자연선택설에 가까운 가설인데, 생각해보니  그때  웃어넘긴 것이 영 맘에 걸린다.


어쩌면 그분은 개그를 한 것이 아니라, 미천한 우리들을 위해 자연선택설을 아주 쉽게 설명하신 것일 수도!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