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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27. 2016

네덜란드 '왕의 날'과 그들 이야기

온 나라가 오렌지색 클럽과 벼룩시장으로 변하는 그 날



네덜란드 왕실을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은 매년 약 4천만 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560억 원이 소요된다. 

이 돈은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고, 물론 국민들의 세금에서 나온다. 이 중 국왕의 연봉은 약 83만 유로, 우리 돈 약 12억 원으로 연봉만으로 보면 미국 대통령의 두 배이자 자국 총리의 5배 정도 수준이다. 비교적 높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2011년부터 의회에서 왕정 분리가 결정되고 국정에 관여하지 않게 되면서,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네덜란드 정치 단체인 '신공화협회'는 국왕 봉급 삭감 청원 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이를 의식한 국왕은 2013년 즉위식 비용을 700만 유로에서 500만 유로로 깎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상상하기, 아니 생각하기 쉽지 않은 말 그대로 그러한 '시추에이션'이다.


그럼에도 네덜란드는 살아있는 왕과 왕비를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한 곳이며, 왕실은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 사절로서 대외 활동은 물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은 대체로 호의적이며 이를 바탕으로 현 국왕에 대한 신뢰도는 지난 4년 전보다 20% 이상 높아져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젊고 멋진 두 사람(국왕 부부)이 네덜란드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대단한 행복입니다. 외교적으로도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이 시대에 맞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YTN 뉴스 인터뷰 [아이런 밀레느, 민영 방송사 리포터]


국민들이 주는 세금을 의미 있게 쓰기 위해, 낮은 자세로 그리고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왕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 결실을 계속해서 맺어온 결과다.




참고로, 네덜란드 정부 또한 국민들의 신뢰를 많이 받고 있는데, 의원 사무실은 우리나라 국회의원 사무실의 절반도 채 되지 않고 많은 국회의원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직접 차를 몰고 출퇴근을 한다. 

국제투명성기구 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공공과 정치에 대한 부패인식 지수는 177개국 중 8위로 46위인 한국과 비교하면 '투명하다'라는 말을 써도 과언이 아닌 정도다. 네덜란드 사회의 최대 부패 스캔들은 2002년 내무장관이 로테르담 시장으로 재임하던 16년 동안 판공비 400여 만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이라는 것이 그 수준(?)을 짐작케 한다. 국민들이 세금을 많이 내도 큰 불평 없이 국가를 믿고 내는 이유이자 국가가 돌아가는 원동력이다.


올해는 왕실이 돈을 얼마나, 어디에 썼을까?

www.koninklijkhuis.nl 상세 경비소요 내역을 볼 수 있다


"여왕의 날 → 왕의 날 → 여왕의 날?!"


네덜란드 '여왕의 날' 축제의 시작은 1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상 처음으로 즉위한 '빌헬미나 여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당시에는 8월에 축제 날이 거행되었지만 그 뒤를 잇는 여왕들을 거치며 날짜는 변경되었다. 4월 30일이 바로 그 '여왕의 날'이었는데, 사실 이 날이 '베아트릭스 여왕'의 생일은 아니었다. 이는 어머니인 율리아나의 생일로, 어머니에 대한 존경을 포함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베아트릭스 여왕'의 생일이 1월 31일로 추운 겨울이라 국민들이 축제를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한 배려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33년간 이어진 '베아트릭스 여왕'으로부터 왕위를 승계받은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이 그 역할을 하게 되어 축제의 명칭은 '왕의 날'이 되었다. 

123년 간의 '여왕의 시대'는 이렇게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축제의 날짜도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의 생일에 따라 4월 27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돌고 돌게 마련.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음 왕위는 국왕의 장녀인 12살 카탈리나-아밀리아 공주가 계승하게 되고, '왕의 날'은 '여왕의 날'로 다시 바뀌게 된다. 현재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과 그 부인인 '막시마 여왕'의 슬하에는 왕자 없이 공주만 3명이기 때문이다.


Princess Beatrix, King Willem-Alexander, Queen Maxima, Princesses (Oranje, Alexia, Ariane)


"만인의 연인, 내 사랑 막시마"


여기 한 여인이 있다. 

여러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나라의 왕자와 결혼을 하는 큰 결단을 한 여인. 그녀의 결혼식 날. 아르헨티나의 전통 악기인 반도네온(Bandoneon)으로 연주되는 '안녕 아빠'라는 탱고 음악이 그 여인의 아버지 자리를 대신했고 그 여인은 한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지금의 '막시마 여왕'으로 네덜란드 사람이 아닌 아르헨티나 출신이며, 그녀의 아버지는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 장관을 했다는 이력으로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막시마 여왕'의 인기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작년 네덜란드 왕과 왕비가 한국 경복궁을 방문한 바 있어서, 거래선 손님들을 데리고 경복궁을 방문하다 바로 이곳이 알렉산더르 국왕이 왔던 곳이라고 이야기하면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아... 그러니까 막시마 여왕이 왔었다는 곳인 거죠?"라며 함께 웃는다.


다른 나라 사람을 왕의 아내로 맞이하는 것에 대한 관대함은 네덜란드 사람들의 성격을 볼 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막시마 여왕의 이미지와 노력도 큰 몫을 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과 같은 인기는 그녀의 소탈함과 어떠한 일에도 열심인 진정성이 만들어낸 결과다. 결혼식날 울었던 인간적인 모습은 지금도 네덜란드 TV에 소개될 정도이고, 외국인 신분으로 일반 사람들과 다름없이 이민 신청을 하고 시민화 시험을 치렀다. 이러한 모습이 방송에 그대로 공개되면서 진실성이 전해졌고 이주민들에게 큰 롤모델이 되었다. 행사 중 실수라도 하면 미안하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솔직하게 내뱉고, 세계평화와 환경 그리고 장애인들을 위한 행사에서 맹활약하며 네덜란드 사람들의 호감과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의회는 막시마의 칭호를 '왕비'가 아닌 '여왕'으로 사용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더 놀라운 건 이때가 바로 의회가 왕권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제정한 그때와 맞물린다는 것이다. 왕과 왕비를 통해 외교 활동을 더욱 활발히 하고 전 세계에 네덜란드를 더욱더 알려달라는 기대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했을 것이다.



"오렌지 클럽? 오렌지 벼룩시장?"


네덜란드 '왕의 날'하면 '오렌지 물결'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온 나라가 오렌지색 물결이 되는 때는 바로 이 '왕의 날'과 오렌지 군단인 축구팀이 'A 매치'를 할 때다. 왜 이러한 날에 '오렌지 물결'이 넘실 거리는 지는 예전 설명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네덜란드는 왜 '오렌지' 군단인가?" 참조)


2014년 부임하여 처음 맞이한 왕의 날에 느낌은 딱 두 가지로 요약이 될 수 있다. 

온 나라가 클럽 파티장으로 변한 것 같은 들썩였던 기억. 그리고 온 거리가 벼룩시장으로 뒤덮였던 모습. 물론, 오렌지 물결은 기본이었다. 실제로 각 도시의 주요 광장에서는 DJ를 초청하여 무대를 설치한 후 맥주와 음악, 그리고 춤을 자유로이 즐기며 그 날을 만끽한다. 더불어, 각자 집에서 가져나온 물품들을 싼 가격에 내다 파는 벼룩시장이 온 동네 길거리나 광장에서 열린다. 좋은 자리는 그 전날부터 나와 돗자리를 까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가족 단위로 나와 아이들에게 '장사'를 해보게 함으로써 경제적인 교육을 병행하기도 한다. 때로는 아이들이 바이올린을 켜거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집객'을 하고 부모들은 이를 대견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전형적인 네덜란드 '왕의 날' 풍경. 오렌지 물결과 함께 들썩이는 클럽, 그리고 벼룩시장 (이미지 출처: Holland.com & 구글 이미지)


마지막으로 'iamsterdam.com'에서 발췌한 '왕의 날'에 대한 몇 가지 fact들에 대해 안내하고자 한다.

(괄호 안의 문구는 작가의 코멘트!)


1. '왕의 날'은 네덜란드 왕의 진짜 생일이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큰 생일 파티가 아닐까? 4월 27일은 빌럼 알렉산더르의 실제 생일이며 공휴일로 지정이 되어 있다. 만약 그의 생일이 일요일일 경우 하루 전날인 토요일로 대체된다. (토요일도 휴일인데...)


2. 원래 '여왕의 날'이었다.

(이건 앞에서 설명했으므로 패스!)


3. 모든 사람들이 오렌지색 옷을 입는다!

(왕족인 Orange-Nassa를 기념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이미 설명이 되었다.) 옷은 물론 가발과 신발, 온몸의 액세서리들을 오렌지 색으로 도배하는데 우스꽝스러울수록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다. 참고로, 왕의 날에는 한 사람당 평균 26유로를 오렌지색 아이템에 소비한다고 한다.
나도 입었는데... (출처: iamsterdam.com)


4. 하루 종일 왕처럼 먹을 수 있다.

각 거리거리와 골목에 다양한 애피타이저나 디저트가 제공된다. 크림을 얹은 패스트리 조각 케이크 (Tombouce)가 대부분인데 사람들의 입가엔 크림이 항상 묻어 있을 정도. 평소 대비 왕의 날에는 600% 이상 더 팔린다고 한다. (대부분 공짜는 아니다. 그런데 왜 이걸 굳이 왕처럼 맘껏 먹을 수 있다고 올렸을까...)


5. 왕의 날 축제는 전 날부터 시작된다.


(크리스마스도 그렇고 축제를 앞둔 전 날이 더 설레기 마련. 긴 말 필요 없고 어떤 전야 축제가 있는지는 '이곳'을 클릭해서 확인!)
참고로, 알렉산더르 왕은 123년 만에 최초의 '(남자) 왕'이다.


6. 심호흡 한 번 하고 흐름을 따라 걷자.

커다란 축제답게 60만 명에서 100만 명의 사람들이 암스테르담에 운집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평소 유동 인구의 2배 수치다. 사람 많다고 놀라지 말고, 서둘러 걸어가지 말고 그냥 그저 그대로 그 흐름에 따를 것을 추천. 매년 약 25만 명의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한다는 사실.


7. 암스테르담과 각 도시의 길거리는 거대한 시장으로 변신!

'One man's trash is another's treasure', and King's Day is certainly a day for treasure hunting!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템을 팔거나 살 수 있다. '왕의 날' 평균 판매자의 수입은 90유로 수준이다. (생각보다 많이 번다...! 간혹 장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특히, 4~5년 전만 해도 도난하기 쉬운 폭스바겐 파사트의 내비게이션은 '왕의 날'의 단골 아이템이었다는...)


8. 운하는 파티 보트로 만원!

암스테르담의 운하는 '오렌지 바다'가 된다. 오렌지색으로 장식된 블링 블링 한 보트들이 운하를 뒤덮고 그 길을 흘러 다닌다. 배를 타지 않더라도 각각의 다리에서 보는 보트 행렬을 볼만하다. 각 보트들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신호가 오면 '화장실 배'를 찾아야 한다. (화장실이 없다니 보트가 없어도 덜 부러워지기는 한다. 물론, 길거리에 있다 하더라도 화장실 찾기는 그리 쉽지 않다.)


9. 박물관은 여전히 오픈!

왕의 날이라도 주요 박물관은 개장을 한다. 오렌지색 가발이나 튀는 옷을 입고 있더라도 출입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반 고흐 미술관, 국립중앙 박물관, 안네 프랑크 하우스 등이 왕의 날에도 개장을 한다.


10. 최고의 댄스 축제, 'King's Day party!'

대형 야외공연부터 작은 카페에서 이루어지는 댄스 축제! 당일 티켓 구매는 어려우니 미리미리 준비해야 참석할 수 있다. 가장 큰 공연은 암스테르담 시내 중심에서 열린다. 2015년에 약 14만 여장의 공연 티켓이 판매되었다. ('공연 및 티켓 정보' 클릭!)


King's Day Amsterdam Infographic!

출처: iamster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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