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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15. 2016

네덜란드는 왜 '오렌지' 군단인가?

네덜란드 슈퍼히어로가 모든 사람들을 오렌지 색에 열광하게 만든  이야기

네덜란드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풍차와 튤립, 그리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히딩크일 것이다. 다시 히딩크와 맞물려보면 네덜란드는 축구 잘하는 유럽 중에서도 축구 강국으로 꼽힌다.


그리고  또다시 떠 오른 친숙한 단어.


네덜란드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는 오렌지로 유명하지 않다."


오렌지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브라질로 그 생산량이 연간 6000톤에 달하고, 우리가 잘 아는 미국 캘리포니아가 그 뒤를 잇는다. 네덜란드는 오렌지를 재배하기에는 적합한 기후의 곳이 아니다. 그러니, 네덜란드 사람들이 오렌지를 많이 생산하거나 까먹는 걸 좋아해서 오렌지 군단으로 불린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만약 한 외국인이 한국은 왜 '붉은 악마'야? 왜  붉은색을 그리 좋아해?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검색을 해보면, 전 세계적으로 붉은색 유니폼이 상대방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승률도 좋다는 뜻에 따라 입게 되었다는 설명과,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4강에 오른 신화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을 때의 유니폼이 붉은색이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더불어, 그 당시 세계 언론이 '붉은 악령'으로 놀라움을 표현하면서 오늘의 '붉은 악마'의 초석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네덜란드도 이와 같다면, 승률을 위해 또는 상대방의 기를 누르기 위해 오렌지 색을 입는 걸까?

그런데 그렇기에는 승률에 대한 아무 근거도 없고, 또한 오렌지 색으로 압도당할 상대팀이 있기는 한 걸까?


"오렌지색에 대한 집착? 열광?"


축구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사람들의 오렌지 색에 대한 사랑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오렌지 색을 생각보다는 그리 많이 볼 수 있지는 않다.


곳곳에  살짝살짝 보이는 오렌지색의 힌트가, 분명 이 나라의 대표 '색'이라는 걸 뜨문뜨문  상기시키는 정도다.


Amstelveen 시청 앞 분수. 오렌지 색 물줄기가 항상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 간 축구 경기가 있거나 '왕의 날'이 되면 이야기는 다르다.

곳곳에 살짝 보이던 오렌지색은 사람들의  온몸과 온 도시를 뒤덮고, 이제는 오렌지 색이 아닌 것을 구분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그들의 바지, 치마, 옷, 헤어, 자전거, 자동차, 얼굴, 음식까지 오렌지 색은 온 나라를 장악한다.

자, 네덜란드 사람들이 오렌지 맛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설명이 되었고, 중요한 날에만 오렌지 색이 온 나라를  뒤덮는다는 것은 또한 오렌지 색(그 자체)에 미쳐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즉, 뭔가를 기리거나 기념하기 위해 오렌지 색을 즐긴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오렌지 색을 기념하고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지 출처

amsterdamtourist.info/ stuffdutchpeoplelike.com/ iamsterdam.com/ tomvoage.com


"네덜란드 슈퍼 히어로"


여기 한 사내가 있다.

그는 동생과 많은 친구를 잃은 데다 아들까지 빼앗겼다. 자신의 토지와 관직도 잃었으며, 재정적 곤란과 함께 아내마저 변덕스러운 행동으로 그를 괴롭히고 결국 이혼에까지 이른다.


1582년 3월, 한 에스파냐 출신의 사람이 현상금을 노리고 그를 총으로 쏜다.

그는 간신히 살아남는다.


그로부터 2년 후, 1584년 7월 그의 자택이 있는 델프트에서 그는  또다시 암살범에 의해 총을 맞고 눈을 감는다. 죽어가던 그의 마지막 유언은 다음과 같았다.


"신이여 내 영혼을 가엾게 여기소서. 신이여 이 불쌍한 이들을 가엾게 여기소서!"


마지막까지도 리더의 향기를 뿜으며,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긍휼히 여긴 이 대단한 네덜란드 슈퍼 히어로의 이름은 바로 오라녜 공작 '빌럼 1세'였고, 이 모든 것이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을 당시의 네덜란드를 독립시키기 위해 그가 마주한 일들이었다.


Willem Van Oranje (isgeschiedenis.nl)



"네덜란드 독립전쟁, 승리 그리고 Oranje-Nassau 가문"


16세기에는 네덜란드가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프랑스 북부까지 포함한 나라였고 에스파냐(지금의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시대였다. 에스파냐 펠리페 2세의 강력한 가톨릭 정책이 네덜란드 북부 칼뱅 신교자들의 탄압을 넘어 학살에까지 이르자 독립에 대한 갈망은 더 커져만 갔다.


더 이상 종교의 자유가 아닌, 정치를 포함한 그 이상의 자유를 외치며 싸웠던 그 중심에 바로 '빌럼 1세'가 있었고 그의 가문 이름이 바로 'Oranje-Nassau'였던 것이다. 그리고 쉽게 생각할 수 있듯이 Oranje는 영어로 Orange를 뜻한다.


길고 긴 전쟁 후에 1579년 북부 7개 주가 위트레흐트 동맹을 결성, 1581년 7월 마침내 독립이  선언되었다.

이후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격퇴되며 세력이 약해지고, 반대로 네덜란드는 해상 강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네덜란드는 왕정으로 정치 형태를 바꾸었고, 그 왕위는 오라녜 가문이 계속해서 왕위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를 종교 탄압과 학살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준 슈퍼히어로이자, 독립투사인 빌럼 1세의 가문이 그 왕위를 계승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대할 여지가 없었다.


반대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가문의 이름은 네덜란드 사람 모두를 오렌지 색에 열광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네덜란드는 '오렌지' 군단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P.S


빌럼의 시신은 델프트 신교회에 매장되었다. 이전까지 나사우 가문의 묘는 브레다에 있었으나 당시 브레다가 스페인에 점령되어 있었으므로 자택이 있던 델프트에 매장된 것이다. 이후 오라녜 사우 왕가의 왕족은 델프트 신교회에 묻히게 되었다.

제라르의 암살 배후에는 예수회가 있었다. 예수회의 역사적 암살사건을 기록한 에릭 펠프스의 <바티칸 암살단>에는 빌럼의 암살 배후에 예수회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John Lothrop Motley의 <The Rise of the Dutch Republic>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분명하게, 예수회는 오렌지공 윌리암(빌럼)을 너무도 증오했다. 그들은 당시  한 명의 로마 가톨릭교도로 양육받고 있던 그의 장남을 유괴했고, 그 상심한 아버지는 결코 아들을 다시 보지 못했다. 윌리암을 암살하려는 몇 차례 시도 후에, 1584년 어느 슬픈 날 그들은 마침내 성공을 거뒀다. 그들의 도구는 발타자르 제라르(Balthazar Gerard)였고, 그는 다시 한번 예수회의 서약을 이행한 것이다.

네덜란드 공화국의 아버지를 피스톨로 3번 쏘고, 총알의 독이 혈관을 통해 퍼지는 동안, 윌리암은 마지막으로 말했다."오, 나의 하나님 이 불쌍한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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