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고 싶은 이야기, 알고 갔으면 하는 것들
일이나 개인적인 일로 네덜란드를 찾는 분들이 많다.
나에겐 주로 본사에서 출장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가끔은 지인들이 거쳐가기도 한다. 이제 주재원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나는 그들에게 해 줄 말들이 많다. 사실, 높은 분들이 방문하셨을 때, "저건 뭔가", "네덜란드는 왜 이러지?"에 대한 준비된 답변을 준비하느라 습득한 지식들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주재하는 나라에 대해, 사람에 대해, 문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라 생각했다. 서로 간의 예의 일수도 있겠다. 더불어,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 의도도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공부하고, 설명하고, 적다 보니 이젠 책 한 권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지난 글들을 돌아보니, 많은 글이 있지만 아직 무언가 가득 채워진 느낌은 아니다.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기를 표방했다.
여기서 살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돌아갈 사람. 여행하는 사람의 그저 좋은 것만 보려는 환상, 사는 사람의 고루한 시선의 중간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라는 질문을 하며, 좀 더 세세히 들여다볼 수가 있다. 그래서 좋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그것들을 조율하며 느낄 수 있는 입장이 말이다.
방문을 하신 손님들에게, 혹시 이곳이 처음이냐고 물어 그분들이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무엇을 설명하고, 어디를 데려가야 할지를 가늠한다.
수많은 손님들을, 그것도 직급이 높으신 분부터, 동료, 후배,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만나다 보니 척하면 딱이다. 네덜란드가 처음이 아닌 분들도, 사실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네덜란드를 파고든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은 좋은 점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듣는 사람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쫑긋하는 귀의 움직임을 보는 것은,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즐거움이다. 설명하는 사람을 고무시킨다. 무거운 업무를 잠시 뒤로하고, 새로운 것에 심취한 서로의 교감이 업무 능력을 좀 더 높인다고나 할까. 여하튼, 서로에게 좋은 시간이란 말이다.
그래서 이제껏 쓴 글을 토대로 정리를 한 번 해보려 한다.
네덜란드를 처음 방문한 분들에게 이야기해주었을 때 흥미를 끌었던 이야기들. 새롭게 알아 그분들이 즐겁게 알고 돌아간 것들. 사실, 내가 궁금해서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한 것들. 그리고 풀어야 할 오해들 또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바로 "네덜란드 사람들은 정말 더치페이를 하나? 데이트할 때도?"다. 이 오해 아닌 오해는 내가 가장 먼저 풀어주고 설명해주는 것이다. 특히, 네덜란드를 처음 오신 분들에게는.
[참고 글: "네덜란드 사람들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참고 글: 포토스토리 "Dutch Treat"]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나는 그들을 최소한 암스테르담 시내는 모시고 간다. 암스테르담이야 말로,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곳이고 또 많은 것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올드타운과 홍등가, 그리고 삐뚤빼뚤한 집들. 그 안에 홍등가가 있다고 하면 거길 왜 가냐며 손사래 치는 분들, 심지어 여자분들까지 그곳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그리고 기울어진 집을 보면 열에 아홉은 지반이 약해서 집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라 걱정을 한다. 그래서 왜 기울어지고 집이 삐뚤빼뚤한지를 설명해주면 새삼 놀란다. 무너지는 집에 대한 걱정에서, 암스테르담의 개성을 완성하는 집들을 다시 보며, 손님들은 새로운 시선으로 그것을 사진에 담는다.
손님들이 오셨을 때 기본적으로 모시고 가는 코스. 짧지만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
[참고 글: "암스테르담으로 마실 가실래요?"]
그리고 홍등가에 대한 이야기.
[참고 글: "암스테르담 홍등가의 밤은 어느 누구의 낮보다 아름답다"]
가장 흥미 있어 하는 이야기는 바로 암스테르담의 상징, 좁고 높은 데다가 삐뚤빼뚤 기울어진 집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무너져가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참고 글: "암스테르담 집들은 왜 기울어져 있을까?"]
암스테르담 거리를 거닐다 보면 만나는 XXX 표시. 눈썰미가 있는 분들은 어김없이 질문한다. 다행히 내가 먼저 궁금했던 터라 바로 설명을 해주곤 한다. 더불어 "IamSterdam"의 유래까지. 총 세 개의 "IamSterdam" letter가 있는데, 그것이 어디 어디에 있는지는 참고 글에.
[참고 글: "암스테르담 XXX 이야기"]
[참고 글: "Iamsterdam (아이엠스테르담)"]
암스테르담은 자유의 도시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그래서 마음을 담아 나름 암스테르담을 위해 시를 지어 보냈다.
[참고 글: "암스테르담 詩"]
또 하나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바로, 네덜란드 친구들의 유창한 영어다. 네덜란드는 어디서나 영어가 통한다. 그렇다고 조기교육을 우리와 같이 혹독하게 받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생존논리로 풀이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 더, 네덜란드를 오가며 볼 수 있는 친숙한 도시의 이름들이 뉴욕의 그것과 같은데 결국 뉴욕의 조상이 더치였다는 것을 알면 그저 당연한 듯 생각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참고 글: "영어야 반갑다 너, 네덜란드에서!"]
[참고 글: "네덜란드를 알면 뉴욕이 보인다?!"]
오렌지 주요 생산국 중에, 네덜란드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면 왜?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질문을 받게 되고 아래와 연관된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참고 글: "네덜란드는 왜 '오렌지' 군단인가?"]
[참고 글: "네덜란드 '왕의 날'과 그들 이야기"]
업무와 연관하여 생각을 좀 해보면, 결국 네덜란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마케팅을 펼쳐야 하는데 이게 여간 쉽지가 않다. 나라가 작은데도 온갖 기업의 지역본부가 위치해 있고, 또 테스트 마켓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볼 때, 여기서 성공하면 다른 곳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깔려 있는 것 같다. 대체 네덜란드 사람들은 왜 이리 검소하고 깐깐할까? 키는 가장 크면서 말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검소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이유
[참고 글: "더치와 콜라병"]
네덜란드 사람들의 민낯. 좋은 점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고.
[참고 글: "네덜란드의 민낯"]
자주 나오는 질문 중 하나. 네덜란드 사람들은 왜 이리 키가 클까?
[참고 글: "네덜란드 '낮은 땅, 높은 키' 이야기"]
네덜란드는 16세기에 세계의 무역을 재편하고 가장 많은 부를 쌓아 올린 나라다. 해상무역으로 세계를 호령한 그들에게 그 황금기에 대한 추억은 아직도 남아 있다. 작지만 강한 나라. 그것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그리 길진 않았지만, 여전히 그들이 강하게 남아 있는 이유. 때로는 그것에 취해 겪었던 아픔까지.
[참고 글: "네덜란드 최고의 자부심 'Sail Amsterdam'"]
[참고 글: "꽃바보 네덜란드"]
그리고 그 시대를 풍미했던 렘브란트. 안타깝게 갈수록 초라해진 그의 초상화가, 네덜란드의 황금기와 매우 닮았다.
[참고 글: "'렘브란트'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날씨가 좋은 여름에 출장 오시는 분들은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참 미안하다. 내가 날씨를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날씨는 그렇게 변화무쌍하다. 변덕스럽다. 그래서 날씨 이야기로, 날씨가 좋지 않을 때 온 분들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그저 신기하게 들어주는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
[참고 글: "네덜란드 날씨 이야기"]
[참고 글: "네덜란드에게 햇살이란?"]
거스 히딩크가 당긴 한국과의 인연에 대한 불씨는 사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많이들 아는 '하멜 표류기'의 그것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하멜이 오기 전에 또 다른 네덜란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심지어 그들은 서로 만나기도 했다. 한 명은 한국에 적응을 잘해서 개명을 하고 자손까지 가지게 되었고, 다른 한 명은 탈출하듯 한국을 떠났다. 당연히 후자가 하멜이다. 그가 쓴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에 대한 궁금증에 출발한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 사람의 지독한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는 이유. 아래 글에서 확인해보면 흥미롭다.
[참고 글: "박연이 하멜을 만났을 때"]
좀 더 여유 있게 오신 분들은 풍차마을로 모신다. 네덜란드의 명물이자 상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유명한 풍차와 튤립이 네덜란드 것이 아니었다면? 다들 의아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리고 시작되는 설명. 네덜란드에 대해 다시금, 새롭게 알게 되는 이야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친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참고 글: "풍차와 튤립이 네덜란드 것이 아니라고요?"]
네덜란드 날씨만큼이나 악명 아닌 악명이 높은 건, 바로 음식이다. 식민지 개척에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영국과 아웅다웅한 네덜란드는, 영국과 함께 음식이 다양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영국은 맛없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네덜란드는 식민지 개척에 따른 것뿐만 아니라, 검소한 문화와 물과 싸우느라 실용적이었던 식단으로 인해 그리 유명한 음식이 없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매력적이고 맛있는 음식들이 참 많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경험을 해보게 하면 하나같이 만족하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만족도가 가장 높은 네덜란드 팬케이크
[참고 글: "나만 알고 싶은 "더치 팬케이크"]
감자튀김. 참 맛있다. 왜 더 맛있을까? 유래는 뭘까?
[참고 글: "감자튀김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뭘 먹고살까?
[참고 글: "네덜란드 사람들은 뭘 먹고살까?"]
아직 알아가려면 한참 멀었다.
몇몇 글을 썼다고, 유래를 살펴봤다고 그들을 다 알 순 없다. 다만, 이러한 노력을 네덜란드 친구들도 가상히 여긴다. 참 고맙다. 알아갈수록 그들의 민낯을 보며 실망하는 부분도 있고, 우리와 영 맞지 않는 부분도 발견하고 겪게 된다. 그럼에도 이 나라와, 이 친구들의 매력은 당최 거부할 수가 없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다.
'옷깃'은 '저고리나 옷 따위의 목에 둘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도록 된 부분'이다. 그러니 '옷깃'이 닿으려면 생각보다는 더 가까이해야 한다. 즉,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쉽게 이루어지는 인연이 아닌 것이다. 수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옷깃'이 닿으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 더 다가가야 한다.
다행히 이 친구들과 '옷깃'이 닿기엔 조금은 더 용이하다.
남들 한 번 하는 (인사) 키스가 무려 세 번이다. 정이 참 많다. 그래서 우리네와 잘 통하는지도 모르겠다. 인연이다. 네덜란드는. 그렇게 내게.
[참고 글: "네덜란드 첫 키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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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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