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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4. 2015

풍차와 튤립이 네덜란드 것이 아니라고요?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원조'하면 떠오르는 것?


원조... 하면 족발이 먼저 떠오른다는데, 나는 '닭 한 마리'가 떠오른다.

(사실, 지금 여기 네덜란드에서 먹고 싶다...)

동대문에 가면 많은 '닭 한 마리'집이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바로...'원조'도 아닌 '시조'점이다.
이렇듯,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우리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화두다.




네덜란드 하면 풍차가 떠오르고, 풍차 하면 네덜란드가...
튤립 하면 네덜란드가, 네덜란드 하면 풍차가...
이렇게 네덜란드, 풍차, 튤립은 불가분의 관계로 우리 머릿속에 박혀 있다.

네덜란드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난 밖에 나가면 많은 풍차들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튤립 꽃밭을 거닐면서. 좀 과한 생각이긴 했지만, 막상 나와보니 그 두 가지를 볼 수 없어도 이렇게 못 볼 수 있을까.


그 많다던 풍차와 튤립은 어디 있을까?


바꿔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아마 많은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공항에 도착하면, 한옥 정도는 그래도 많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한옥을 보려면 한옥 마을에 가야 한다.

그럼 네덜란드에서 우리는? 그렇다.
풍차마을에 가야 한다.

우리가 관광지로 많이 알고 있는 풍차 마을은 "Zaanse Schans"라 불리는 곳으로, 작은 치즈 공장과, 나막신으로 알려진 '클롬펀(Klompen)' 박물관이 함께 있어 볼거리가 많다.

출장자 손님이 많아, 원하지 않아도 많이 가보게 되는 곳 중 하나인데 암스테르담에서도 30분 거리로 구경 가기 부담이 없고 앞서 이야기 한대로, 치즈나 클롬펀을 직접 살 수 있는 (치즈도 배불리? 먹으면서) 점이 장점이다. 요즘은 중국 관광객들도 많이 오는 곳 중 하나다.

또 하나의 풍차마을은 암스테르담에서 1시간이 조금 넘는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이름은 Kinderdijk로 한국 말로는 "킨더 다이크" 정도 되겠다.

관광객들에게는 오히려 Zaanse Schans가 널리 알려졌지만, Kinderdijk는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록된,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유명한 곳이다. Zaanse Schans는 걸어 다니면서 풍차를 볼 수 있지만, Kinderdijk는 배를 타야 전경을 다 둘러볼 수 있는 차이점이 있다.

참고로, 정확한 수치가 있는 것은 아니나 95년 전만 해도 네덜란드에는 1만 개 넘는 풍차가 있었다고 하고, 현재는 전국에 약 1천 개 정도 남았다고 한다.

네덜란드에 오면 풍차보다 많이 보이는 거대한 바람개비 형상의 풍력 발전기가 돌며 풍차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튤립을 보려면?


잘 알다시피 유럽의 정원으로 알려진 "Keukenhof"를 찾아가면 된다. 4~5월이 성수기인데, 5월 중반만 넘어가도 꽃이 많이 시든다. 4월 말이 절정이라고 보면 된다. 이곳이 너무 멀고 시기를 못 맞춘다면, 암스테르담 근처 꽃시장을 방문하면 된다. 수많은 튤립의 종류는 물론, 씨앗 (구근)까지 살 수 있으니 위로가 된다.



"기껏 설명한 풍차와 튤립이 네덜란드 것이 아니라고?"


아쉽게도 풍차는 기원 후 7세기 페르시아 제국 지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이란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튤립도 마찬가지. 이름의 유래부터 회교도들이 머리에 두르는 'Turban'에서 왔고, 파미르 고원에서 야생으로 자라던 꽃은 터키를 지나 16세기 한 식물학자에 의해 네덜란드로 전해졌다고 한다. 

(터키의 나라 꽃도 튤립이라는 사실!)

이후, 네덜란드는 어렵사리 간척한 땅에 쌀과 밀보다는, 돈이 더 될 것이라 생각한 튤립을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량을 거쳐 다양한 색깔/ 무늬의 꽃, 각양각색의 모양을 만들면서 값을 올려 받기 시작했다.

17세기에 이르러, 황금의 시대를 맞이한 네덜란드에서는 당시 튤립의 구근이 '교양과 부'의 상징이 되면서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집 한 채 이상의 값어치를 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주식'의 개념을 가장 먼저 만든 네덜란드에서, 튤립의 구근은 돈과 함께 주식으로도 사용되어 동인도 회사의 배를 띄우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자, 그럼 네덜란드의 원조인 줄 알았던 풍차와 튤립이 다른 곳에서 왔다고 하니 우리는 실망을 해야 할까?
나는, 오히려 네덜란드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풍차를 받아들여 발전시키고, 자연을 극복하며 땅을 개간한 대단한 사람들. 게다가 네덜란드 풍차는 풍향에 따라 풍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튤립 또한 어렵게 개간한 땅에 심어, 가치를 창출한 예라고 볼 수 있다.

기원과 유래는 아니라도, 지금은 누구도 풍차와 튤립이 네덜란드 것이 아니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실용적인 면만 있다면 약삭빠른 사람들로 남겠지만, 이렇듯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고 받아들인 것을 강력한 전통으로 만드는 것.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잊지 마시라.
앞서 썼던 글처럼 네덜란드는 뉴욕의 원조, 아니 '시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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