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원동력이자 생존을 위한 에너지
뭔가를 도둑맞았다.
바로 어제 3월의 마지막 일요일.
쥐도 새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집에 멍하니 앉아있다 당했다.
물론, 주로 알고도 당한다.
도둑맞은 그것은 '한 시간'이다.
유럽의 서머타임 (일광절약 시간제 Daylight Saving Time)이 시작된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귀한, 아주 귀한 햇살"
도둑맞았다는 표현을 했지만, 햇살이 내리쬐는 기분 좋은 시간을 한 시간 더 갖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더 기뻐해야 할 일이다. 더불어 서머타임이 끝날 때 '한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는 건 (한 시간을 더 잘 수 있다는...), 어쩌면 오래전 벗어둔 옷 주머니 안에서 얼마의 돈을 발견하게 되는 그러한 기쁨과도 같다.
네덜란드는 햇살이 귀하다.
서머타임이 여름의 낮 시간을 좀 더 활용하자는 실용적인 취지도 있지만, 서유럽이라 쓰고 북유럽이라 읽히는 네덜란드 사람들에겐 햇살을 조금이라도 더 즐길 수 있게 하는 목적도 분명하다.
아래 표를 보면 좀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영국과 독일을 한 국가로보면,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그다음이다. 위도 상으로 더 위에 있는 핀란드 헬싱키, 덴마크 코펜하겐이 암스테르담보다 햇살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이 흥미롭다.
참고로 한국의 연간 Sunshine Hours는 2428시간이다.
네덜란드의 면적은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은 면적에도 햇살의 양을 세세히 구분하는 걸 보면, 햇살에 대한 집착(?!) 정도를 엿볼 수 있다.
연간 햇살을 받는 Portion이 가장 높은 수치는 39%로 주로 서부 도시에 밀집해 있고, 가장 낮은 곳은 동쪽 독일 내륙지역 국경에서 가까운 Arnhem이라는 도시가 차지했다.
Days는 하루에 아주 잠시라도 햇살이 비취는 날 수를 측정한 것이다. 반대로, 하루라도 조금이라도 비가 내리는 연간 강수 일수도 300일에 달하니, 네덜란드 날씨의 변덕을 짐작할 수 있다.
("네덜란드 날씨 이야기" 참조)
네덜란드 지역/ 도시별 연간 Sunshine 수치 (출처: currentresults.com)
"네덜란드는 언제나 고프다.
비타민 D에"
그래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햇살 즐기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아니, 즐겨야만 한다.
그들의 집 창문이 큰 통 유리로 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노천에 널린 카페의 테이블이 그렇다. 햇살이 비췰 때는 카페 앞 테이블은 바글바글 하지만 실내는 텅텅 비어 있을 정도다.
채광을 위한 커다란 창문. 그리고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 Google 이미지)
네덜란드에서 여름에 운전을 하게 되면, 어디 놀러 가지 않아도 얼굴과 팔이 까맣게 탈 정도다.
선팅이 불법이기 때문인데 왜 선팅이 불법인지, 하면 안 되는지 더치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정색하면서 되묻는다.
햇살은 조금이라도 더 누려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이다.
사실, 날씨 좋고 햇살 가득한 그 시간을 누군들 싫어할까. 그럼에도 이토록 햇살에 그 이상으로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생존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이 곳 네덜란드로 부임을 한 지 한 달 만에 가족이 도착했는데 네덜란드 보건 당국에서 직접 집으로 방문해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이 바로 비타민D 설문이었다. 즉, 햇볕은 충분히 많이 보았는지, 비타민D 결핍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과 검사였다.
비타민D는 어린이, 노약자, 유색인종 및 과도한 비만인 사람들에게 필요한데 이는 각종 질병과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반대로, 비타민D가 결핍되면 갖가지 질병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햇살이 귀한 네덜란드 사람들은 각별히 햇살을 관리하고 누리려 하는 것이다.
네덜란드 주재 가이드에 나와 있는 'How to maintain Vitamin D levels'를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있어 간단히 공유하고자 한다.
선크림 로션 SPF 8 수준은 자외선뿐만 아니라 비타민D 95% 흡수를 방해한다고 한다. 'Vitamin D Council'에 따르면 우리들 몸의 40% 이상이 햇살에 노출되어야 충분한 비타민D를 얻게 된다고 하는데, 특히 몸통, 팔, 다리, 손 순서로 비타민D를 잘 흡수한다고 한다. 그래서 햇살이 나면 'Shirts off!!!'라고 안내가 되어 있다.
국립중앙 박물관 잔디밭은 일광욕을 하기에 아주 좋다. 햇살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렇다.
(이미지 출처: Google 이미지)
'The Natural Society'에 따르면 일광욕 후 48시간 내에 비누로 샤워를 하면 비타민D의 흡수율이 줄어든다고 한다. 우리 피부는 햇살을 받아 비타민D를 생성하여 혈류를 통해 몸으로 비타민D를 흡수한다고 하는데 비누로 온 몸을 샤워할 경우 그 흡수율이 떨어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굳이 샤워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비누를 사용하지 말고 물로만 대충(?) 씻어내는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비타민D는 유리를 잘 뚫지 못하고 한다. 햇살이 가득한 날, 투명한 창문 아래에 있다고 안심하지 말고 10~15분, 일주일에 3일은 밖으로 나가 햇살을 온몸에 받으라고 권장한다.
고지방의 생선, 즉 참치나 연어 고등어에 비타민D가 있다. 북반구 지역에서 이러한 생선을 많이 먹는 것은 그러니 우연이 아니다. 더불어 소의 간, 치즈나 계란 노른자도 소량의 비타민D를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음식으로 얻을 수 있는 비타민D는 한계가 있으니 결국 웃옷을 벗고 햇살을 온몸으로 즐기라는 것!
햇살이 가득한 날.
우리 직원들은 식당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를 사서 밖으로 나가기 바쁘다.
하루라도 햇살이 아주 맑게 내리쬔다면 누구라도 그렇다.
겨울엔 없던 우울증이 생길 정도지만, 햇살이 가득한 날은 없던 우울증도 치료될 정도다.
어쩌면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햇살이란 이렇게 삶의 즐거움이자 생존의 에너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햇살이 가득할 때 마음껏 누리고, 그것을 몸에 머리에 마음에 정서에 가득히 담아, 비 오고 바람 부는 겨울을 내내 이겨내는 것.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고 묵묵히 폭풍우 속에서도 한 발 한 발 자전거를 밀어내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쩐지 여름의 그 밝았던 햇살이 보이는 듯하다.
'누구에게나' 내리쬐는 햇살이, '누구에게는' 이토록 감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