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파고든 비운의 슬픔
네덜란드에서 주재를 하고 있지만, 정확히는 베네룩스 시장을 담당하고 있다.
즉,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 룩셈부르크가 내 관할 지역이다.
벨기에는 일주일에 한 번 차로 방문을 한다.
암스테르담에서 지사 사무실이 있는 안트워프는 차로 1시간 40분 거리다.
플란다스의 개로 유명한 안트워프에서 브뤼셀은 다시 50분 정도가 걸린다.
"갑자기 전해 들은 소식, 믿을 수 없는"
3월 22일 오전 네덜란드 오피스.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느라 바쁜 와중에 한 동료가 와서 나에게 메모를 전해주고 갔다.
읽어보니 공항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전화 통화 중이어서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데, 전화를 끊고 검색을 했다.
난 당연히 네덜란드 Schiphol 공항을 검색했다.
"Schiphol Explosion"으로 검색하니 몇 가지 뉴스가 나왔다.
패스트푸드점에서 가스가 폭발해서 수 백 명 사람들이 피신했다는 것을 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날짜를 보니 오늘도 아니고 최근도 아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찰나.
주위 동료들이 다시 한 번 더 수근 거렸다.
공항에 이어 기차역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다는.
그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리 동료들이 거래선을 상대로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다.
설마 테러일까라고 생각했던, 그 '설마'는 사람을 잡고 말았다.
"남과 북이 갈린 벨기에"
일을 하다 보면 벨기에는 항상 골칫거리였다.
제품에 POP (Point of Purchase)를 붙이거나 매뉴얼을 만들어 넣어야 하는데, 이 작은 나라가 남과 북이 언어로 갈려 있어 항상 손이 한 번은 더 갔다. 심지어는 제품 패널의 언어를 더치어와 프렌치로 이중 표기를 하고 있을 정도다. (예를 들어, 세탁기 패널에 한글과 한자 또는 다른 나라 말이 병기되어 있는 상황.)
네덜란드에서 독립한 벨기에는 북쪽 더치어를 사용하는 '플란더스', 남쪽 프렌치를 사용하는 '왈로니아'지역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계가 되는 곳이 바로 '브뤼셀'이다.
즉, 브뤼셀은 두 가지 언어가 맞닿는 곳이며 역설적으로 언어 단절이 일어나는 곳이다.
브뤼셀을 중심으로 한 특별지역에 속하는 19개 시의 시장이 각각 소속 정당과 언어가 다르고, 6개의 경찰서가 치안을 맡고 있어 인구와 정치구조가 복잡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에, 많은 이민자들과 IS조직이 이 허점을 파고들었고 브뤼셀 부근 몰렌베이크 지역은 50년 전부터 터키와 모로코 출신 이민자들이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파리 테러 주범 9명 중 4명이 벨기에 출신이고, 이로 인해 몰렌베이크 지역에 국제사회의 우려가 집중된 바 있다. 이민자들은 철저히 소외되었고, 빈부격차가 낳은 불균형은 40%의 실업률을 만들어냈다.
좌절과 불만은 끝내 극단주의로 변질되고 말았다.
인구 100만 명당 지하드(이슬람 성전) 참전 비율이 가장 높은 40명인 벨기에. 작금의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500명가량의 벨기에 국적자가 IS의 본거지로 들어가, 이 가운데 100명가량이 다시 벨기에로 돌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 유럽의 심장을 조준하다."
이번 테러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 IS의 본거지로 불리는 브뤼셀을 공격했다는 것은, 그들의 입지가 줄어들 것임을 알고도 자행한 매우 의도적인 행동이라 해석이 된다.
용의자 체포와 총격에 대한 복수는 저변의 것이라 쳐도,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 대한 공격은 유럽 전체에 대한 경고와도 같다.
예전에, 중동 아프리카 시장을 담당하며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까지 출장을 다녀봤지만 그때의 불안감은 지금의 그것보다 크지 않았다. 즉, 지금의 불안감이 더 하다.
유럽의 심장을 건드린 그들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슬픔, 그리고 우리의 슬픔"
벨기에는 슬픔을 위로받기는커녕, 초동대처나 테러에 대한 경고에도 미흡했던 보안체제로 지적을 받고 있다. 말마따나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벨기에를 걱정했고, 또 경고를 주기도 했었다.
그들의 슬픔은 이미 예견이 되었던 것이지만, 끝내 벨기에는 슬픔을 막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위로해야 한다.
하이네켄 맥주를 마시는 우리를 향해 물을 마시고 있냐며 유쾌한 농담을 건네는 그 친구들. 유럽 사람들 중 한국인과 정서가 가장 비슷하다는 그들. 우리와 함께 '붉은 악마'를 외치는 그들. 네덜란드와 프랑스 사이에서 약간은 주눅든 정서를 가지고 있으나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들.
이 모든 것을 떠나.
사람의 생명은 고귀하고, 또 테러로 빼앗긴 그 생명, 사람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가족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벨기에의 슬픔은 우리의 슬픔이 된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유럽은 더 이상 예전의 유럽이 아니게 되었다.
어쩌면 그 옛날 식민지를 통해 쌓아온 부가, 착취한 그 무엇들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남겨진 가족들의 아픔이 지워지진 않겠지만, 그들이 너무 많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여기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정말 안타깝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