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운전하기
아침 7시 30분.
8시 정각까지 호텔에 계신 VIP를 모시러 가야 한다.
예의를 차리기 위해 7시 50분 도착을 목표로 한다.
난 성실한 직원이니까.
집에서 호텔까지 거리는 약 5km.
15분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이른 아침에 큰 변수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출발은 상쾌하다.
그래, 역시 네덜란드는 도심지가 아닌 이상 차도 없고 트래픽도 없고.
그러나 오마이 가쉬.
호텔을 약 300미터 앞두고 내 눈 앞에는 아래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
임기를 이제 막 반을 넘긴 내가 차로 이동한 거리는 대략 1년 기준 약 5만 킬로에 조금 못 미친다.
한국에서 온 손님 케어, 바이어 상담을 위한 이동, 벨기에 지사/주변국 및 매장 방문 그리고 연말에 행해지는 약 4천 킬로의 가족 유럽투어까지. 즉, 대중교통보다는 차를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1년에 1만 킬로 이상 운전하는 것은 조금 특별한 경우였다. 자동차 보험의 경우도 1만 킬로 이하로 운행하면 차후에 할인해줄 정도.
그렇게 유럽 각국을 다니고, 또 네덜란드에서 운전을 많이 하다 보니 보이지 않던 많은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하나하나 발견하며 가는 그 길이 날마다 새록하다.
운전을 많이 해도 힘들기보단 날마다 새롭고 즐거운 이유다.
"네덜란드에서 운전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운전을 하다 보면 네덜란드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흥미롭다.
절대적이진 않지만 네덜란드의 색(色)이라 분명 말할 수 있는 정도다.
먼저는 위에 언급한 '개방형 다리'다. 암스테르담에만 90여 개의 운하와 1,500개 이상의 다리가 있는데 사이사이를 지나가야 하는 배들로 인해 다리는 천차만별로 '개방'을 하게 된다. ("낮은 땅 높은 키" 글 참조)
열리는 형태는 물론 한정적이지만, 우리 생각 이상의 것으로 열리는 모습이 '천차만별'이란 말과 꽤 잘 어울린다.
출처: 구글 이미지 (들어올리기, 접기, 회전식 등의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다음으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고 네덜란드를 구석구석 다니기에 즐거움이 가득하게 하는 것은, 바로 넓게 펼쳐진 목초지와 지평선 그리고 운하가 어우르는 자연 친화적인 모습들이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고, 또 개간이 되어 그곳에 빌딩을 세우고 산업화를 가속화 하기보다는 자연 그대로 활용을 하고 있다. 때문에 암스테르담만 벗어나면 그곳이 딱히 시골이라서가 아니라 어느 도시 어느 마을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지평선까지 넓게 펼쳐진 목초지와 운하, 그리고 아침이면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우리가 마치 반 고흐의 그림 안에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할 정도다. 그의 색채와 붓터치로 그려진 것을 실제로 본다고 생각하면 운전의 피로는 그리 큰 것이 아니게 된다.
가끔은 통풍구 사이로 들어오는 상쾌한 잔디와 목초지 향을 맡고는, 사이렌의 그것보다 더 강한 이끌림으로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눈을 감아 바람 소리를 느낀다.
뭐 이리 각박하게 살까...라는 생각을 잠시 하고는 다시 현실로.
휴대폰 카메라로도 그저 그림이 된다.
운전 중 하늘을 올려다보면 넓은 하늘과 함께 가로등에 올라앉은 새들을 볼 수 있다.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좀 더 다른 모습이 있다면 비둘기뿐만 아니라 갖가지 새들이 그 크기를 불문하고 올라 있다는 것.
또한 해라도 나면, 네덜란드 사람들과 같이 그들도 날개를 양쪽으로 맘껏 펼치고 일광욕을 즐긴다.
가끔 보면 살아 있는 새인지, 아니면 장식용인지 갸우뚱할 정도다.
출처: 구글 이미지. 안전 운전을 위해 눈으로만 담고 이미지는 검색으로.
메인 이미지에 있는 내비게이션 수치들을 살펴보면 유독 마이너스인 숫자가 있다.
예상한 대로 어디를 가든 볼 수 있는 해수면보다 낮다는 표시.
보통 마이너스 5 ~ 10 정도로 표시되는데, GPS 오차로 인한 약간의 오류다.
네덜란드에서의 최저 고도는 해발 마이너스 6.76m다.
참고로, 스키폴 공항에 처음 도착한 그 순간 우리는 해수면보다 4미터 아래 있게 된다.
1995년 델프트 공대와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이동 수단으로 고안된 'Canta'는, 1.1미터의 폭과 함께 합법적으로 자전거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작은 자동차이다.
앙증맞은 이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 눈길이 자연스레 갈 수밖에 없고, 길거리에 주차라도 되어 있다면 관광객의 사진 세례를 피하기 어렵다.
작다고 무시(?)하면 섭섭할 정도로 가격이 싸지는 않다. 11,500 ~ 17,000유로로 가격이 형성되어 있고 굳이 한화로 알고 싶다면 오늘자 기준 환율로 구글에 검색해 보시길.
Canta에 대한 정보 몇 가지 더.
운전면허가 필요 없다.
자전거 도로를 합법적으로 달릴 수 있다. (제조사는 쇼핑센터까지 달릴 수 있다고 '주장' 함.)
160~200cc 혼다 엔진을 사용하며 4가지 트림이 있다.
주문 고객의 요구를 받아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특히, 휠체어 버전이 가장 비싸고 뒤로 휠체어 그대로 올라타 운전을 한다.
더치 버전은 시속 50킬로, 영국 버전은 시속 70킬로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그 외 또 몇 가지.
가끔 자전거를 먼저 지나가라고 서행하거나 멈추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 남녀노소 불문하고 엄지를 척 들어준다. (물론 다는 아니다.)
네덜란드는 선팅이 불법이다. 원할 경우 뒷좌석 양측 창문만 가능하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옆, 뒤, 앞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운전한다.
브루클린, 하를렘, 월스트릿과 같은 친근한 이정표를 보게 된다. 미국을 따라한 게 아니라, 네덜란드의 지명이 미국으로 넘어간 경우다. ('네덜란드를 알면 뉴욕이 보인다' 글 참조)
과속 카메라는 앞에서 말고 뒤에서 찍는다. 속도 제한을 어기면 어김없이 뒷 간담이 서늘할 정도의 반짝 거림이 느껴진다. 간담이 서늘할 정도라는 것은 그 페널티 금액에 의거한다. 100~200유로는 기본이고, 나의 경우는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신호위반으로 뒷모습이 찍혀 237유로 고지서를 받았다.
참고로 과속 카메라는 네덜란드 사람이 최초로 만들었다. ('네덜란드가 최초인 것들' 글 참조)
"네덜란드 사람들의 운전 습관
그리고 운전할 때 필요한 몇 가지 팁"
네덜란드에서 운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국제 면허증이 있으면 별도 교육 없이 바로 운전할 수 있고, 거주증을 받았다면 손쉽게 시청에 가서 절차를 밟은 후 운전면허를 교환할 수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운전 습관도 비교적 매너가 좋은 편이다.
독일만 해도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에, 바로 뒤까지 쫓아와 닦달하는 모양새가 한국과 거의 비슷하지만 네덜란드는 최고 속도가 130킬로이고, 고속도로는 보통 100킬로로 제한되어 있다. 웬만한 시내는 50킬로로 제한되어 있어 한국에서 온 몇 날은 당최 적응이 쉽지 않았다.
앞에서 누구라도 주차로 고생을 하고 있다면 끝까지 기다려 주고, 오히려 응원을 해주고 가는 경우도 있다.
정신을 팔다 신호를 보지 못해 출발을 안 하고 있더라도 어떤 경우는 신호가 바뀔 때까지 경적을 울리지 않기도 한다. 만약에 울리더라도 우리나라와 같이 기분 나쁘게 길게 경고하는 소리보다는, 짧게 한 번 주의를 환기 시켜주는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실험한 경우, 앞 차가 출발하지 않았을 때 경차는 평균 2초, 대형차나 외제차는 9초라는 시간이 걸린 것에 비하며 분명 다른 부분이다.
다만, 이러한 것도 암스테르담 시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사람은 다 똑같다.
더불어 마무리로 몇 가지 운전 팁 투척.
당신은 좌회전 신호에 걸려있다. 신호가 풀려 한국에서 하던 그 반경 그대로 좌회전을 하게 되면, 당신은 전차길로 접어들거나 역주행을 하거나 자전거 도로로 들어가게 될 거라고 더치 팬케이크 한 판을 걸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때,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이 파란색 바탕에 흰 색 화살표이니 이것만 잘 보고 가자.
바닥에 나를 향해 길고 짧은 선이 있거나, 역삼각형이 있다면 긴장해야 한다. 그 선들은 서행을, 역삼각형은 일단정지 또는 나중에 진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운전 매너는 좋은 편이지만 맞는 신호라고 판단되면 앞 뒤 안 보고 달리기 때문에 내가 바닥의 표시를 어기고 가버리면 사고 날 확률이 매우 높다.
특히 그러한 표시는 자전거 도로 앞에 많이 있게 되는데 여기 네덜란드는 자동차보다는 사람이, 사람보다는 자전거가 우선인 나라이니 주의가 필수다.
소와 양이 노니는 운하 옆의 목초지를 유유하게 운전하다 암스테르담 시내에 들어왔다면, 조금은 더 긴장하고 핸들도 가능한 두 손으로 잡길 추천한다. 암스테르담 시내는 수많은 관광객과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지나가는 전차와 초행길의 운전자들이 만들어 내는 하모니가 강렬하다. 거기에 비좁은 주차구역, 일방통행의 향연이 한국에서의 운전 실력을 비웃는다. 물론, 익숙해지면 괜찮다. 처음엔 조심.
한국에서 내가 좌/우측 방향 지시등을 킨다면, 그 방향에 있던 뒷 차는 득달 같이 달려올 것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방향 지시등을 킨 차가 우선이다. 어떤 경우는 내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안 하고 방향 지시등을 키고는 그대로 들어온다. 길이 합류되는 지점에서 방향 지시등을 킨 차들이 들어오면 뒤에 오던 차들이 차선을 바꾸어 자리를 비켜주는 정도다.
또 하나. 좁은 도로에서 마주쳤을 때 앞 차가 상향등을 킨다고 욱하고 내려서 상대 운전자의 멱살을 절대 잡지 말아야 한다. 놀랍게도 이때 상향등의 의미는 '양보'다. 먼저 가라는 이야기다. 나중에 버릇 들어 한국 가면 고생 좀 할 것 같다.
1차선이 추월 차선인 것은 거의 만국 공통일 테지만, 2차선과 3차선도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1차 선만 비켜준다고 끝날 것이 아니라 2차 선을 달리는데도 나보다 빠른 차가 오면 3차선으로, 3차선에서도 그런다면 4차선으로 비켜 정속 주행하는 것이 예의다. 매너가 좋은 네덜란드 사람들도 1차선과 2차선에서 느리게 달리는 차는 그냥 두지 않는다. 뒤에 바로 따라붙어 꼬리물기를 하는 위험천만함을 연출한다. (역시 사람들은 다 똑같아.)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역마다 특색 있는 신호등과 체계가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의 경우 바닥에 센서가 내장되어 있어 차량 흐름을 읽고 자동으로 빨간 불과 초록 불을 컨트롤한다. 예를 들어, 주위에 차가 없다면 나는 신호에 걸리지 않고 계속해서 갈 수 있다. 마치 VVIP가 되어 경찰이 앞을 터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물론, 가끔 그 타이밍이 맞지 않아 브레이크를 밝고 몇 초 안돼 다시 출발해야 하는 꿀렁거림을 받아들여야 할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신호등은 운전자에게 남은 시간을 막대그래프로 보여주기도 한다.
일반 자동차 지붕 위에 파란색 바탕에 흰 글자로 'L'이 쓰여 있다면 피해가거나 뒤에 바짝 따라붙어가지 않아야 한다. 운전 실습 중인 자동차다.
라운드어바웃 (우리나라 로터리) 앞에는 앞서 이야기한 역삼각형이 항상 있고, 이 곳은 진입하여 돌고 있는 자동차가 무조건 우선이다.
버스를 보면 사람을 태우기 위해 사람 쪽으로 기운다. 노약자와 어린이를 위한 배려다.
운전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주위를 둘러보면 이렇게 아직도 발견할 것도, 볼 것도, 느낄 것도 많다.
이렇게 살다가 느끼고, 느끼고 바라보고.
그렇게 살아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