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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16. 2017

네덜란드 사람들은 뭘 먹고살까?

삶과 함께 버무려진 네덜란드 사람들의 먹거리 이야기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출간 정보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인터파크



먹고사는 것은 인류 최대의 숙제다.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에 대한 담론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먹고사는 것에 대한 고단함'은 그렇게 인류의 숙명이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것은 어쩐지 우리네 삶을 애처롭게 만들고 말지만, 그래도 먹는 것이 주는 즐거움은 그 애처로운 삶에 대한 상이자 원동력이기도 하다. 더불어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그 나라의 민족이 살아온 이야기와 정서가 그것에 버무려져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먹고사는 데에 대한 고단함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이러한 삶은 더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네덜란드 음식에 대하여.

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네덜란드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는지? 장담하건대 거의 없을 것이다. 굳이 나왔다고 한다면 감자나 치즈 정도가 나지막이 입술을 움직이게 했을 것이다. 스페인의 빠에야, 이태리의 피자나 파스타, 프랑스의 거위 간 요리나 크레페, 독일의 슈바이 학센 등이 떠오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이러한 데자뷰(?)는 어디에서 본듯해 낯설지 않다. 그렇다. 이러한 질문에 말문을 막히게 하는 또 하나의 나라는 바로 영국이다. 네덜란드와 영국은 역사적으로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그네들의 음식이 그리 유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 악명은 영국이 한 수 위이지만 네덜란드도 그에 못지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16~17세기 걸쳐 해상을 장악하고 식민지를 놓고 다툰 두 나라의 명성이 이렇게 훗날 자신들의 음식을 개발하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더불어, 그 특유의 실용성과 청렴함 그리고 수평적 문화에 기인하여 거대하고 화려한 밥상을 만들지 않았다. 게다가 물과 싸워온 그들에게 오랜 시간을 요리와 상을 차리는데 투자하는 것은 낭비 중의 낭비였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검소하고 청렴한 이유 참고 글: "더치와 콜라병")


미술을 통해 그들의 과거를 엿보면 더욱더 분명해진다. 반 고흐의 유명한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면 서민들의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말해 준다. 반 고흐는 이 그림의 습작을 그려내면서 정직한 사람들의 '손'과 '먹거리'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감자를 일구기 위해 뼈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난 거친 손마디가 감자의 의미를 한껏 숭고하게 한다. 더불어 귀족들을 대상으로 한 초상화나 정물화를 보아도 음식이 그리 화려하진 않다. 그저 빵과 파이, 그리고 굴과 같은 해산물 정도다.

반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반고흐 미술관
Pieter Claesz 'Still Life with a Turkey Pie' 네덜란드 국립중앙 박물관


하지만 네덜란드에 이제 몇 년을 주재하다 보니, 그들만의 음식이 아주 없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팬케이크나 청어 절임, 애플 볼렌, Fresh 민트 티, 해산물 플레이트, 키블링, 스트룹 와플, 올리볼렌 등은 기대하지 않은 내게 큰 선물과도 같은 만남이었다. 아, 물론 감자튀김의 감동도 여전한 것은 사실이다. (정말 확실히 다르다. 감자라고 같은 감자가 아니다.)


특히 팬케이크는 네덜란드가 원조였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맛 본, 150년 전통의 어느 숲 안의 팬케이크 집에서 만난 그 맛은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그리워할 맛이다. '하링'이라고 알려진 청어 절임은 특유의 비릿함과 양파와의 조화, 그리고 피클로 다져진 또 다른 종류의 그것이 우리 입맛에 안성맞춤이다. 애플볼렌이나 올리볼렌과 같은 지극히 고칼로리를 지향하는 간식은 입이 심심할 때를 위해 항상 대기한다. 달콤한 것을 이야기할 때 스트룹 와플을 빼놓으면 또 섭섭할 것이다. 더불어, 바다와 인접한 축복은 내륙 유럽에서는 엄두도 못 낼 싱싱한 해산물과 키블링 (대구 튀김)등을 맛볼 수 있게 한다. 개인적으론 네덜란드에서 맛 본 가장 경이로운 소소함은 바로 Fresh 민트 티다. 민트 잎을 따다 뜨거운 물에 투척하여 서서히 올라오는 민트의 향은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 주는 자연의 약이자 위로다.

(네덜란드 감자튀김의 유래 참고 글: "감자튀김은 사랑입니다.")

(참고 글: "나만 알고 싶은 더치 팬케이크")

(참고 글: "포토스토리 Apple Bollen")


네덜란드 전통 팬케이크, 피클에 절인 비리지 않은 시큼한 하링, 사과 하나가 통째로 애플 볼렌
해산물 플레이트. 지역별 굴과 싱싱한 해산물의 향연. 바다와 인접한 축복의 산물.
한 겨울 먹게 되는 기름기 많은 올리볼렌. 더치 스트룹 와플. 대구 튀김의 일종인 키블링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감자튀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Fresh 민트 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음식 중에 그리 유명한 것이 없다는 것은 여전한 사실이다. 어쩌면 그네들의 삶과 같이 실용적이고 화려하지 않아, 이와는 대조적인 다른 나라들의 음식들이 사람들을 더욱더 강렬하게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 가서 뭐 먹어봤어? 그거 먹으러 거기 가야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한 방'이 없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네들의 삶이다. 맛집이나 먹거리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삶을 엿보고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유명한 먹거리가 없는 것과 같이 이 친구들의 식사 습관을 보면 그리 화려하지 않다. 아니, '화려하지 않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간단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의 식사를 보면 그저 간단한 샌드위치가 대부분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나라라면 뭐 얼마나 아끼려고 도시락을 싸오냐는 소리를 듣거나, 없어 보인다는 소리를 들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유럽 친구들이 하는 것은 어쩐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사대주의는 아니다. 문화의 차이라고 해두자. 그리고 민족성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하튼, 싸오는 도시락도 주로 샐러드나 으깬 감자, 또는 샌드위치 안에 넣어먹을 것들을 가져와 빵만 사서 간단히 해결한다.


대신, 음식에 대한 수용성은 매우 높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과 손님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하면, 처음 가는 사람들도 거의 못 먹는 음식이 없다. 날것부터 매운 것까지. 어느 하나 거부감이 없다. 입에 맛고 안 맞고를 떠나 일단 맛부터 보는 이 친구들은, 도통 못 먹겠다는 소리를 하질 않는다. 물론, 네덜란드 친구들의 수용성과 열린 마음은 음식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교역과 무역으로 먹고살아야 했던 그네들의 정서에 깊이 박혀있다.




네덜란드의 마트를 가면 그들의 먹거리와 삶이 보인다.

요즘은 마트가 대형화되고, 획일화되어서 사실 어느 나라를 가든 비슷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나라 또한 프랜차이즈화 된 대형 마트 내에서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인해 고만고만한 상품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만약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분명 차이는 보일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네덜란드 외식 물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인건비가 비싼 이곳의 외식 가격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하지만 마트를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외식 물가에 비해 시장바구니 물가는 한국보다 싸다고 느낄 정도다. 묵직한 삼겹살 3~4 덩이가 2~3유로밖에 안 하고, 과연 하이네켄의 나라답게 맥주 한 캔은 우리나라 돈 1천 원을 왔다 갔다 한다. 세일이라도 하면 단 몇 백 원에 맥주 한 캔을 살 수 있다. 국민소득 5만 불의 나라 물가로 치면 이는 더더욱 싸게 느껴진다.


나 또한 이방인의 눈으로 그들의 마트를, 아니 먹거리와 삶을 들여다본다. 그러면 보이는 것들이 못내 흥미롭다.


시간적 여유와 함께 채소는 Daily로


삶의 습관이나 패턴은 먹거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바쁜 삶을 살고 있어, 주말에 장을 듬뿍 보고 냉장고에 일주일치 이상을 보관한다. 네덜란드는 이와 다르다. 매일매일이 시간의 여유가 있다. 해서 한 번에 큰 장을 보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다. 채소는 그때 그때 사 먹는다. 그래서 키가 2미터인 이 사람들의 집에 200~500리터 급 냉장고를 쓰는 경우가 많다. 채소야 바로 사 먹으면 그만이고, 빵이나 치즈 등은 굳이 냉장고에 넣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작은 아파트에서 800~900리터 냉장고를 사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전제품을 팔아야 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데, 이런 내게는 시장 매력도가 한참 떨어지는 곳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너무 힘들다...)

다양한 채소와 과일들. 시간적 여유와 함께 매일매일의 신선함이 그들을 맞이한다.


다양한 고기와 생선


네덜란드 사람들은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즐긴다. 더불어 연어나 청어, 기타 다른 종류의 생선도 다양하게 먹는다. 음식에 대한 수용도가 높고, 바다에 인접해있다 보니 육류나 생선류가 다양하다. 특히 한국과 같은 삼겹살을 많이 즐기는터라 한국 음식을 그리워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소나 돼지의 내장이나 양/ 대창/ 막창 등은 즐기지 않는다. 이태리나 스페인의 경우는 마트에 가보면 막창이나 곱창을 파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시중에 유통이 안되어서 그렇지 네덜란드 친구들을 데리고 한국 식당에 가서 곱창을 시켜 놓으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주 맛있게 먹는다. 청어의 경우는 피클에 절이거나 진공 포장이 된 보통의 것을 내어 놓는다.


네덜란드 키의 원동력, 유제품과 치즈


왜 네덜란드 사람들이 가장 큰 신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어렸을 때부터 다리를 쭉쭉 뻗어 타는 자전거와, 어렸을 때 12시간을 넘게 자는 잠. 그리고 이와 더불어 낙농 국가답게 유제품을 많이 섭취한다는 것이 그저 또 하나의 이유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마트에 가면 이러한 것을 대변해주듯이 수많은 Dairy 제품이 가득하다. 우유만 해도 그 종류가 기대 이상이고 치즈는 말할 것도 없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키에 대한 이야기 참고 글: "네덜란드 낮은 땅, 높은 키 이야기")


다양한 종류의 우유와 요거트
말발굽 모양의 다양한 치즈
Old와 Young한 치즈의 조화


맥주와 와인의 향연


네덜란드는 맥주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이네켄으로 유명한 이 나라는 어렸을 때부터 맥주로 단련(?)된 대단한 체질을 가지고 있다. 고유의 맥주 브랜드는 물론, 바로 아랫 나라 벨기에의 수백 가지 맥주 종류와 함께 어우러져 다양한 맥주를 진열한다. 개인적으로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 탓에 그리 즐기지는 않지만, 만약 내가 술을 좋아했다면 저렴한 맥주값과 다양한 그 종류에 이끌려 술꾼이 되었을지 모른다. 특이한 점은 그래도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나 임산부를 배려한 0% 알코올의 종류가 많다는 것이다. 그저 음료수와 같이 분위기를 즐기고, 술을 강요하지 않는 그들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

하이네켄 맥주. 세일이라도 하면 한 캔에 몇 백원이면 살 수 있다.
0%도수의 다양한 맛 맥주들.
와인은 기본.


그 외 다양한 네덜란드 마트의 특징들


네덜란드 사람들은 꽃을 사랑한다. 한 때 꽃으로 흥망을 함께 겪었던 이 나라 사람들은 트라우마가 있을 법도한데, 여전히 꽃을 좋아한다. 집에 초대를 받아 방문할 때 꽃 선물은 기본 중의 기본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일까. 거의 모든 마트에서 꽃을 판다. 입구에 진열된 꽃들은 들어가는 이로 하여금 기분을 좋게 한다. 꽃이 가진 매력이자 힘이다.

(꽃으로 흥망을 겪었던 네덜란드 이야기 참고 글: "꽃바보 네덜란드")


한쪽 코너에는 향신료가 한가득하다. 16~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동인도 회사가 부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동양에서 온 이 향신료 들이었다. 지금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 향신료들이 그때는 네덜란드 해상무역을 통해서만 유럽에 판매될 수 있었다. 그저 가지런히 놓여 있는 이것들의 역사적인 가볍지 않은 이야기가 잔잔하게 몰려오는 것이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운동에 열광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주말이면 달리기, 사이클, 수영, 하키, 축구 등. 그럼에도 아이러니한 것은 참으로 스위트한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디저트는 정말 달고 달아서, 어떻게 이런 것을 먹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우스갯소리로 네덜란드 사람들은 3,000칼로리를 먹고 4,000칼로리를 운동하며 태운다고 할 정도다. 먹을 땐 먹고, 운동할 땐 운동하는 이 친구들의 화끈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네덜란드 사람은 매우 검소하다. 그래서 스스로를 잘 알아 마트에서도 세일이나 디스카운트 등의 메시지를 흔히 볼 수 있다. 와이프의 경우도 마트에 가면 주로 할인하는 품목만을 사 오는 경우가 많다. 'Actie'는 영어로 'Action'을, 'Korting'은 'Discount'를 뜻하다. 'Gratis'는 'Free'를 뜻하여 몇 개 사면 몇 개는 무료라는 행사다. 우리가 흔히 아는 1+1이나 2+1 되겠다. 이런 행사나 단어가 하루라도 끊일 일이 없다는 것은 이 친구들의 소비 패턴을 잘 설명해주는 단면이다.

마트 입구에서 만나는 꽃은 언제나 기분 좋다.
이 작은 병 안에 향신료들이 세계의 지도와 움직임을 바꿨다는 것이 새롭다.
달고 달아서, 너무 달은 네덜란드 디저트들.
하루라도 Actie나 Korting이나 Gratis 행사를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민트는 직접 집에서 키우며 그 잎을 따먹을 수 있다. (좀 미안하지만.)


다시,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지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의 대답은 영 쉽지가 않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보면 어느 정도 그네들의 삶을 엿볼 수는 있다. 먹고 살기 위한 고단함은 어느 누구나 같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차이는 분명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먹고사는 것에 대한 고단함과 즐거움, 그리고 그 안에 녹여진 이야기들이 나에겐 이처럼 흥미롭다. 그리 유명하지 않은 음식과, 다른 나라 음식에 대한 수용성, 그리고 실용적이고 검소한 그들의 국민성이 은은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어째, 오늘은 빵 한 조각에 치즈를 얹어 절여진 청어와 맥주를 한 모금해봐야겠다. 마무리는 차분하게 민트 잎 몇 개를 꺾어 뜨거운 물에 넣고, 올라오는 향을 맡으면서. 그러면 조금은 더 이해되고 느껴질 네덜란드라는 이곳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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