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맛있는 음식이 감자라니 허무하나 그래도 맛있다!
'라면이나 자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 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자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김훈 '라면을 끓이며' 중에서-
한국 출장을 잠시 온 틈을 타, 내가 달려간 곳은 서점이다.
그 곳에서 만난 김훈 선생님의 신간 '라면을 끓이며' 글귀를 보고 있노라니 내 머리 속에 스친 두 가지는, 범접할 수 없는 그분의 글쓰기 능력에 대한 존경심과 네덜란드의 감자튀김이었다.
그분에 대한 존경심은 당연한 것이겠고,
그럼 왜 감자튀김이 생각났을까?
긴 설명 필요 없고, 왜 감자튀김인지 네덜란드에 사는 'Jan Van KH'작가의 인용글을 보도록 하자.
'감자튀김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 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맛 없게 튀겨진 감자튀김처럼 질척하거나, 잘 튀겨졌어도 그저 가벼운 존재일 뿐이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Jan '감자를 튀기며' 중에서
"라면과 감자튀김이라는 가볍지만 어쩔 수 없는 존재의 동질성"
눈치챘겠지만 'Jan Van KH'는 급조한 가상의 인물이며, 그가 쓴 글은 김훈 선생님의 고귀한 글귀에 감자튀김을 잠시 넣어봤을 뿐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어색하지가 않다는 그 것이 나로 하여금 그 글을 읽었을 때 감자튀김을 떠올리게 했다.
누구나 먹을 수 있으며, 식사를 대용할 수도 있고, 배불러도 또 먹을 수 있으며, 옆에서 누가 먹으면 한 젓가락/ 한 조각 먹고 싶은, 그리고 가난한 자와 여행하는 자의 영혼의 공허함과 육체적 허기를 함께 달래 줄 수 있는 가볍지만 어쩔 수 없이 찾게 되는 그 두 존재의 놀라우리만큼 같게 느껴지는 동질성.
"감자튀김의 유래"
감자튀김은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공통으로 많이 즐기는 음식이다. 우리나라가 쌀을 통해 탄수화물을 섭취하듯이, 유럽 사람들은 빵과 감자를 통해 그것을 섭취해왔다.
네덜란드에서 감자튀김은 '프리츠(Frites)'라고 부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렌치 프라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사실, 우리가 아는 '프렌치 프라이'는 미국으로 건너 간 벨기에 이민자들을 통해 전해졌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다만, 벨기에는 북쪽(플란더스) 더치권과 남쪽(왈로니아) 불어권으로 나뉘는데 불어를 쓰는 왈로니아 사람들로 인해 '프렌치 프라이'가 탄생된 것으로 보인다.
이 유력한 가설에 의하면, 벨기에 뮤즈 계곡의 주민들이 작은 물고기를 튀겨먹다 물이 얼어 물고기를 잡지 못하자 감자를 물고기 크기로 잘라서 튀겨먹은 것이 감자튀김의 유래라 한다.
"네덜란드 감자는 왜 맛있을까?"
그렇다면 결국 네덜란드의 감자튀김은 벨기에에서 온 것이 된다. 물론, 벨기에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것이니 전혀 연관이 없는 나라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네덜란드 안에서도 가장 유명한 감자튀김 체인점 이름이 "마네킨 피스"로, "마네킨 피스"는 벨기에에서 유명한 오줌싸개 동상을 가리킨다.
먹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네덜란드 감자는 정말 맛있다. 우리가 아는 패스트 푸드점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6mm에서 15mm까지 이르는 두툼한 두께와, 바삭한 겉 안에는 솜털 같이 부드러운 감자의 속살이 숨어 있다.
길쭉한 모양으로 썰기 좋은 '빈쪄(Bintje)'라는 감자를 사용하는 것이 네덜란드 감자가 맛있는 이유중 하나이지만, 프렌치프라이와는 달리, 160도의 기름에서 살짝 익혀주고 조금 식힌 뒤 180도의 고온에서 한 번 더 튀기는 그 과정이 네덜란드 감자의 맛을 완성하는 비결로 보인다.
그리고, 그 화룡정점은 마요네즈와 함께 완성되는데, 생각만 하면 느끼하고 맛이 없을 것 같지만, 한 번 빠져들면 토마토 케첩은 잊힐 정도다. 물론, 프리츠에 뿌려지는 마요네즈는 일반의 그것과는 달리 좀 더 달고 고소한 맛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마요네즈, 케첩, 양파, 갈릭소스, 카레소스, 타르타소스 등 기호에 맞는 토핑들이 그 맛의 다양함을 가능하게 한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박인 감자튀김이라는 '인'"
유럽 여행은 걷기로 시작해서 걷기로 완성된다. 한 없이 걷다 보면 중세시대와 현재를 오가고, 아름다운 자연과 하나됨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엄습하는 허기는 영혼과 육체로부터 오는 그것으로, 깔데기에 받아 든 감자튀김을 얼른 집어 들어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은 물론 몸 전체에 퍼지는 위로가 일품이다.
그래서 난 감히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감자튀김이라는 '인'이 박였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가 라면을 먹듯이, 식사 대용으로 많이 먹는 모습을 당연하게 볼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 감자라니, 네덜란드 음식 문화가 그리 화려하지 않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겠지만, 그럼에도 감자튀김이 정말 맛있긴 하니 뭐라 다른 음식을 찾아 말하기가 쉽지 않다.
간단하고 소박하지만, 곁에서 우리 속을 완벽히 달래 주는 라면과 감자튀김이야 말로, '사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