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의 원조 신타클라스
크리스마스는 그저 공휴일이고,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가는 것은 산타가 아니라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 때쯤 사람들은 어쩌다 어른이 되어간다. 크리스마스는 종교적인 의미를 초월하여 문화적 행사로 발전했다. 또 한 번, 문화적 행사를 넘어서 상업적 행사로도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추운 겨울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좋은 취지는 남아 있다는 것이 조금은 덜 세속적인 의미라고나 할까. 물론, 옆구리가 시린 솔로들에게는 만남이 주선되는 성수기이기도 하다.
솔로들의 건승을 빌며 각설해보면, 크리스마스의 유래는 물론 종교적 의미에 기인한다. 정확한 날짜는 아니지만 예수의 탄생일을 기리는 것을 공통분모로 하여 그것을 축하하는 날. "그리스도"(Christus)와 "모임"(Massa)의 합성어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교회의 전통과 로마제국의 전통이 섞여 발전했음을 알 수 있는데 교회의 전통이 '예수의 탄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로마제국의 전통은 '산타클로스'의 탄생을 이루어냈다. 4세기 동로마 제국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지역의 '성 니콜라우스'가 바로 그 주인공.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굴뚝 속으로 금 주머니를 떨어뜨린 그것이 벽난로에 걸어둔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사건(?)은 전 세계 사람들을 12월의 어느 날,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자도록 만들었다.
네덜란드는 행복지수가 매우 높은 나라다. 행복해서 축제를 많이 하는 건지, 축제를 많이 해서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축제로 승화시킨다. (참고 글: "네덜란드 연간 축제 모음") 그래서 그런 걸까? 네덜란드에서의 첫겨울을 돌이켜보면 크리스마스가 되기도 전에 분주했던 그 분위기가 기억에 선명하다. 분명, 크리스마스는 몇 주가 남았는데 선물이 오가고, '신타클라스'라는 이름의, '산타클로스'를 모방한듯한 사람이 등장했다. 그리고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휴일은 그대로. 한 번으론 모자란다는 듯한 이 네덜란드의 분위기는, 과연 네덜란드스러웠다. 어린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자신의 어린날을 기억하며 설레는 마음과 따뜻한 마음으로 선물과 덕담을 나누는 모습이 그러했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왜 크리스마스가 두 번인 걸까?
크리스마스는 교회의 전통 측면에서 보면 원조를 따지기 어렵다. 예수의 탄생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타클로스는 다르다.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문화'와 '구전'에 의지해 발달해온 성 니콜라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성 니콜라우스', '니콜라오', '니콜라스', '니콜라'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리고 그의 축일은 12월 6일로, 네덜란드에게는 12월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와 같은 날이 된 것. 엄격히 말해서는 크리스마스가 두 번이 아니고 12월 5일은 '신타클라스 데이', 그리고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인 것이다.
산타클로스가 신타클로스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네덜란드의 그 옛날 황금기에 기인한다. 긴 설명 필요 없이, 네덜란드가 뉴욕의 조상이었다는 것을 상기시켜보면 쉽다. (참고 글: "네덜란드를 알면 뉴욕이 보인다") 즉, 미국 땅을 개척한 네덜란드 사람들에 의해 전해진 '신타클라스'가 '산타클로스'가 되어 전 세계를 누비게 된 것이다.
과연 축제를 즐기는 네덜란드 사람들답게 신타클라스 데이는 우리가 아는 크리스마스와 같이 하루에 끝나지 않는다. 포문은 11월 11일 이후 첫 번째 토요일. 올해는 그래서 11월 12일. 신터클라스는 그 날 배를 타고 들어온다. 스페인에서 오는 그 배는 요란한 음악과 함께 등장하며, 그 배가 도착하는 도시는 축제 분위기로 휩싸인다. 시장이 나와 영접을 준비하고, 도시의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껏 기대에 찬 모습으로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하다. 실제 그 사이에 있어보면 그 열기는 기대 이상이다. 키가 2미터 넘는 어른이나, 나이가 지긋해 신타클라스와 동년배 또는 그 이상인 노인들도 기대의 미소가 한가득이다. 아마도 어릴 적 부모님 손을 잡거나 무등을 타고 보았던 그것을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한다는 기쁨의 표현이자 추억에 대한 오마주일 것이다. 단 몇 년을 살았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의 그러한 정서가 피부 깊숙이 느껴져 왔다.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들어오는 '신타클라스'와 '검은피터'
신타클라스의 축일은 12월 6일이지만 선물을 나눠주는 밤은 크리스마스이브와 같이 그 전날인 5일이다. 11월 초중순에 도착한 신타클라스는 그의 조력자 '피터'와 네덜란드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착한 아이들에게는 선물을 주고 나쁜 아이들에게는 벌을 주러 다닌다. 위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피터'는 신타클라스가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갚기 위해 함께 다니는 조력자인데 정확한 이름은 "Zwarte Piet"로 '검은 피터'로 불려진다. 스페인 무어족의 유래 때문에 '흑인'을 조수처럼 부리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발로 인종차별의 논란이 해마다 불거지곤 한다. 실제로 2014년 신타클라스가 암스테르담 운하에 도착했을 때 90명이 체포될 정도의 규모로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피터들이 '흑인'이라고 설명하지 않고, 굴뚝을 오가다 얼굴이 검게 된 것이라 설명해주고 있다.
신타클라스의 날에 맞추어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을 초콜릿으로 전한다. 우리의 빼빼로데이나 밸런타인데이처럼 수많은 초콜릿이 오간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전체 선물로 돌릴 정도다. 공식 통계로는 약 2천3백만 개의 초콜릿이 판매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초콜릿은 일반 초콜릿이 아닌 알파벳 이니셜을 딴 것으로, 선물 받는 사람의 이름에 맞게 준비한다. 기본적으로 "S"는 신타클라스의 그것을 나타낸다.
[신타클라스 초콜릿 선물. 각자의 이름 이니셜에 따른 알파벳 초콜릿을 선물한다. 이미지 출처: lanalanalana.tumblr.com/ festivalchocolate]
언젠가, 이렇게 나누어주는 초콜릿 알파벳이 상업적으로 느껴지고 피터의 피부가 굴뚝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쯤 네덜란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물론, 어른이 된 어린 마음의 그것을 간직한 2미터 키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신타클라스 데이를 설명할 것이다. 유럽의 매력은 이런데 있다. 조금은 촌스러울지 모르고, 유치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헤리티지'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보전해가는 것. 11월부터 이어지는, 아니 연초부터 계속되어 12월에 마무리되는 네덜란드의 축제는 그래서 현재 진행형이다. 축제를 해서 행복한 건지, 행복해서 축제를 하는 건지 물음에 대한 답을 굳이 알아낼 필요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