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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19. 2016

꽃바보 네덜란드

욕심 많은 플로라에게 바치는 바보들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출간 정보

교보문고Yes24알라딘인터파크



영국에서 온 식물 애호가가 네덜란드의 친구 집을 찾아갔다. 그 애호가는 보기 드문 양파 같은 것을 발견하고 그 껍질을 벗겨 속을 열어 보았다. 친구가 돌아오자 "이것이 무슨 양파입니까"라고 물었다. "데르 아이크 제독이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애호가는 노트에 적으면서 계속 질문했다. "이것은 네덜란드에서 흔한 유형입니까?" 그러자 친구는 애호가의 목덜미를 잡고 "함께 행정관에게 가보면 압니다"라고 대답했다. 애호가는 금화 2000개의 배상금을 지불할 때까지 채무자의 감옥에 감금되었다.

- Wikipedia 튤립 파동 中 -


튤립으로 단기간에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사람들에게 퍼진 그때는, 네덜란드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그때였다. 16세기 중반, 네덜란드의 황금시대.


돈의 흐름이 활발해지고, 너나 할 것 없이 부가 쌓이다 보면 거품은 생기게 마련. 한 때 주식 호황을 누리던 미국의 월스트리트 앞 점심 한 끼 햄버거의 값이 100달러를 호가했던 그것의 원조가 바로 '튤립 파동'이다.


이 '튤립 파동'은 1720년 영국의 남해회사 (The South Sea Company)의 투기 과열이 불러온 '남해 거품 사건 (South Sea Bubble), 18세기 초 프랑스 식민 자본의 실적 부풀리기 '미시시피 계획' (Compagnie du Mississippi)과 함께 근대 유럽의 삼대 버블로 기억되고 있다. 이중에서도 시간순으로 보면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이니, '원조'를 넘어 '시조'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튤립의 희소성"


네덜란드 꽃시장을 방문해보면 동글한 조약돌 모양의 구근이 잘 포장되어 있는데, 이를 흙에 심으면 꽃이 금세 피어 꽃망울을 터뜨린다. 구근이 아닌 종자는 꽃이 피는데 가지 약 6년 ~ 7년이 걸리고, 혹이라도 배수가 잘 되지 않으면 뿌리는 금방 썩어나간다. 더불어 건조하거나 토양이 비옥하지 않으면 생육이 잘 안되며 온갖 병충해에 약하여 꽃을 보는 데까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바로, 튤립이다.


16세기~17세기에 이러한 상황 속에서, 튤립의 구근은 더욱더 희소성을 띄게 되었고 남아도는 부와, 또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 이들의 광기가 더해져 튤립의 값어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랐다.


튤립의 원산지는 터키와 중앙아시아, 중국의 신장위구르에 위치한 천산산맥 주변지역으로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영토확장 중 발견되어 궁전에 심긴 후 옷의 문양이나 그림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6세기에 이르러 상인들에 의해 유럽 각지에 튤립이 전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네덜란드의 국화인 '튤립'은, 사실 네덜란드의 것이 아니었다. 터키의 국화도 '튤립'인 것은 그 역사에 기반한다. (풍차와 튤립이 네덜란드 것이 아니라고요? 글 참조)


"튤립 파동의 끝"


튤립 파동의 정점은 1637년 2월이었다. 당시 능숙한 장인이 한 해동안 열심히 일하여 버는 돈의 10배를 호가하는 튤립 구근 하나의 값은, 그 시대의 부와 광기의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이 거대한 경제 거품은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켰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꽃이 피지도 않았는데 미래 어느 시점을 정해 특정한 가격에 매매한다는 계약을 사고파는 '선물거래'까지 만들어내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다.


정식 증권 거래소가 아닌 술집에서 열린 이러한 거래는, 간단한 계약서와 경미한 중도금으로 통용이 되었다. 이성이 마비되니 돈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촌극이라 할 수 있었겠다. 중도금 또한 돈이 될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가능했으니, 요즘 세상의 개미투자자와 같은 서민들이 너도나도 생필품이나 돈이 될만한 그것들을 들고 일확천금을 꿈꿨다.


아름다운 비눗방울도 결국엔 터지기 마련. 튤립에 의한 거대한 거품은 마침내 터져 팔겠다는 사람만 남게 되었고, 사는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많은 상인들과 귀족들은 돈과 땅을 잃게 되었다.


이러한 튤립 파동은 역사적으로 네덜란드에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먼저, 이 사건이 영국에게 경제 대국 자리를 넘겨주었던 하나의 큰 요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절제와 금욕을 취지로 하는 칼빈주의 성향의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사건이었다는 것. 덕분에 칼빈주의적 미덕관이 다시금 부활이 되긴 하였으나, "욕심 많은 플로라에게 바치는 바보들"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순 없었다.


"튤립, 튤립, 튤립!"


리프킨 제독(Admiral Liefken)
폰 데르 아이크 제독(Admiral Von der Eyk)
피세로이(부왕, Viceroy)
제네라리시모(장군, Generalissimo)


원예 애호가들에 의해 품종개량 및 재배된 다양한 이름의 튤립은 사람들을 광기하게 하는데 한 몫했다. 아름다움은 곳 돈으로 환산되었으며, 그 희소성과 독특한 문양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가장 인기 있었던 품종은 브레이킹을 일으킨 보라색과 흰색 줄무늬의 [센 페이 아우구스투스; 영원한 황제, Semper Augustus]였다. 


맨 왼쪽이 Semper Augustus, 가운데 '부자 왕'이란 별명의 튤립 (1637년 네덜란드 도록), 튤립 버블을 비판한 소책자 ('욕심 많은 플로라에게 바치는 바보들')


"네덜란드 생활 속 꽃"


네덜란드 슈퍼마켓을 가거나, 거리의 곳곳에도. 주말마다 서는 장에도.

꽃을 팔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실내, 실외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Flower Shop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꽃은 삶의 일부이자 즐거움이고, 또 집을 방문하거나 생일을 맞이한 사람에게는 의무이지 않나 싶을 정도로 필수적이게 꽃은 등장한다. 그만큼 사람들의 손에는 언제나 꽃이 들려져 있고, 또 전달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알다시피, 네덜란드는 원예농업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쯤 되면 궁금하다.


"꽃이 좋아서 원예 농업을 발전시킨 것일까?
아니면 원예 농업을 발전시키다 보니 꽃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여기서 잠시 살다 보니 느낄 수 있는 건, 두 가지 다 맞는 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는, 어렵게 개간한 땅을 그저 곡식으로 채우기보다 돈이 되는 것에 더 투자한 결과이자, 자신의 앞마당을 꽃과 함께 소중히 가꾸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꽃에 대한 사랑과 근면 성실함이 공존하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본격화한 네덜란드의 시설원예 사업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네덜란드의 최근 원예작물 생산액은 86억 유로, 원예산물 수출량은 중개 수출 포함하여 162억 유로 수준이다. 원예산물 생산액은 전체 농업 생산액의 39%, 네덜란드 총 수출액의 4%, 농식품 수출액의 34%를 차지한다.


아름다움은 덤이면서, 돈이 되는 산업.

줄여서 '네덜란드의 아름다운 산업'.


"유럽의 앞마당에 온 봄"


융프라우가 유럽의 지붕이라면, 큐켄호프(Keukenhof)는 유럽의 정원이라 불린다. 유럽의 정원에 튤립이 피면, 마침내 유럽에 봄이 왔다고들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3월 24일부터 5월 16일까지 이어지는 이 기간은, 어김없이 찾아온 봄을 상징한다. 올해의 테마는 "The Golden Age"로, 어쩌면 튤립 파동이 일어난 그즈음을 지칭하는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튤립의 향연. 유럽의 앞마당에 핀 형형색색의 존재들




꽃 하나로 온 나라가 들썩였던 튤립 파동. 그로 인해 경제 패권까지 다른 나라에게 양보해야 했던 아픔.

생활 곳곳에 뿌리 깊이 자리한 꽃 문화. 그리고 소중히 가꾸어나가며 피어나는 꽃 봉오리에 감동하는 사람들. 아름다움은 덤이자, 산업 체계를 만들어 세계의 원예 농업과 종자 산업을 이끄는 선봉장.


이쯤 되면 '꽃바보'란 말이 크게 엇나가는 표현은 아니란 생각.

아니, 오히려 '꽃바보'란 말이 참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다.


천상 꽃바보.

네덜란드.



참고문헌

- Wikipedia

- 네덜란드 시설원예산업 동향 (이지원/ 농촌진흥청 연구운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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